다윈(C. Darwin) 이후 세계에서
불교적(Buddhistic)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과 인간인식에 관한 이해
 
THE UNDERSTANDING OF HUMAN BEING AND HUMAN PERCEPTION:
on the viewpoint of the Buddhistic perception in the age of POST-DARWIN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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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고 하고,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고 말한다면,
그는 머리가 터져 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깟싸빠여,
나는 알기 때문에 '나는 안다'고 말하며
보기 때문에 '나는 본다'고 말한다."

<상윳타_니까야>

​들어가며

여기서 말하는,

다윈(Charles Darwin) 이후의 세계란 가치관 문명, 사회, 국가 그리고 종교, 철학, 심리와 같은 인간 문명의 성과들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대(세계)를 말한다. 자연계 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의 모든 것들은 정보의 빈도 차이를 다양성이라는 모습으로 표출한다. ‘유전’과 ‘유전자의 빈도 변화’이며, 여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분화(分化)를 의미한다. 내가 진화(進化)라는 표현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화론’이라는 표현 자체가 ‘진화론’을 왜곡하는 요인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진화(進化, evolution)’란 유전자를 이어받는 다음 개체의 유전자 빈도가 이전 개체와 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불교적(Buddhistic) 관점이란 어떠한 사태, 사건, 대상을 바라볼 때 원인-결과적 도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아니라 ‘A가 있을 때 B가 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A는 B의 단일 원인이 될 수 없으며, B는 A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A와 B는 상호관계에 놓인다. 나는 작품의 구상과정 속에 나타나는 생각을 통해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예측하고,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의 실체와 그 문제를 보여줄 것이다.

진화는 물론, 인과론에 있어서도 선형적 이해를 기반으로 바라보면, 당연히 인종우월주의, 가치평가, 각종 혐오와 차별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나의 작품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가 말하는 ’태고의 감각’이라는 거창한 표현은 바로 이러한 편견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는 연습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화'라는 표현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서 말한대로, 진화라는 표현만큼 진화를 왜곡해서 이해하는 표현이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있다, 없다, 긍정 혹은 부정 또한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한다. 각각의 결정은 모두 단견이며 편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大聖說空法 爲離諸見故 若復見有空 諸佛所不化

공성(空性)이란 일체의 견해(見解)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여러 승자(勝者)들에 의해 교시되었다.

그러나 공성(空性)의 견해(見解)를 가진 사람들은 구제불능이라고 말씀하셨다 - 나가르주나

 

실상은 세상을 이루는 방식과 나를 이루는 방식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우리 자신을 매우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나’라는 의식을 강화하고 ‘자아 ego’를 강화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영겁을 회귀하거나 영원한 세상에서 영속할 영혼이 자신 안에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육체와 별개라고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우리가 갈변할 사과조차 존재론적이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그것의 관념을 그리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자신을 이루는 핵심’을 두고 정상적인 관념을 상정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자신이 환경과 구분되는 개체적 의식을 가진 개별적 존재들이라는 점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지배적으로 무게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며,

우리가 어떠한 경향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어떠한 것을 두고 그 실체를 밝힌다는 미명하에 ‘없음(無)’을 강조하는 것은 무지에 빠지는 행동이다. “존재하는 것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有若不成者 無云何有成 因有有法故 有壞名爲無 - 나가르주나).” 대상으로부터 관념의 분리를 강력하게 이끌어내는 인간의 사고구조로 인해 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을 띌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이해의 결과는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가 열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세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이며, 이것은 하늘과 땅이 신(神)이나 초월적 세계가 아닌 그저 하늘과 땅임에 감격할 수 있는 깊이다.

 

나는 왕필이 배휘와 공자와 노자를 논하며 “성인(공자)은 무를 체득하였고 노자는 아직 유(有)에 있는 사람이기에 늘 자신이 부족한 바였던 무에 대해 말한 것(聖人體無, 無又不可以訓, 故不說也; 老子是有者也, 故恒言無所不足)”이라 주장한 맥락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8년 이후 나의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윈과 불교의 초기경전에 관한 것들이다.

근동 혹은 서아시아에서부터 유럽 끝단에 이르는 광대한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종교간의 분쟁이다. 인류의 고대란 무엇일까? 나는 신화적 인식이 주류를 이루는 인류의 역사시대 전반을 고대(古代)라고 볼 것을 제안한다. 프랑스 문헌학자 조르주 뒤메질(George Dumézil)은 "신화, 의식 혹은 상징은 그 어원을 밝히자마자 곧바로 그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한다(<불교와 자이나교>, 김미숙(저)에서 재발췌).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탈신화화(Entmythologisierung)는 신화적 표현의 껍질을 벗겨 그것이 본래 가리키는 방향을 볼 것을 촉구했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과학적 근거로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 듯 보여도 실상은 매우 유사하다. 하나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말해주며, 다른 하나는 감관에 의한 수용물에 관한 내용의 이해는 곧 이론을 수반하는 가설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떠한 신화적 세계 속에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표상(表象)의 방법이 서사적 방식에서 논증과 검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상징체계를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며 실존적으로 그러한 한계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나는 한 명의 사진가(혹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나의 관점을 찰스 다윈의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는 진화인류학적 관점과 불교의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는 상호인과율적 관점 그리고 그것들에 관한 역사적 맥락에서의 나름의 분석을 제시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사진연작 <응시>에 밑바탕을 이루며 작품을 구성하는 개념의 기반이 된다.

 

예술은 예술 자신의 세계 외에는 어떠한 ‘해답’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가볍다. 작가의 문제의식이란 문제에 대한 의문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예술가가 던지는 ‘문제의식’이라는 것이 편견과 과도한 자기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라 생각된다. 예술에게 다양한 역할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 가운데 나는 적어도 ‘균형을 잡고 설 수 있는 기반’의 역할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작품의 표현을 위해 고민한 시간들을 글로 정리하여 남겨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𝐈

인간 지능의 뿌리와 현대인의 의식 그리고 그 미비한 차이에 관하여

** 뿌리의 모양은 단순하지 않다. 매우 복잡한 모양으로 주변 환경과 얽혀야 뿌리다.

현재까지의 인간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신화적 세계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떠한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이 과학적 관측에 근거한 것이든, 어떠한 신앙과 믿음에 의한 것이든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결정에 영향을 준다.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은 "과학혁명을 '개종 conversion'에 비유"했다(<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저)에서 발췌). 관측과 논리, 수학과 검증으로 중무장한 과학의 세계가 어째서 혁명이 필요하며, 그것은 어째서 종교를 바꾸는 '개종'에 비유되는가? 나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종교적 신념'으로 표출되는 유형의 사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사고는 어느 날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볼 수 없다. 나는 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온 ‘깊이’, ‘철학적’, ‘심오함’과 같은 말들로 수식되는 것들 중 상당수가 원숭이가 하루 8시간 동안 식물을 씹는 행동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펴가고자 한다.

 

대형 유인원이 도구를 사용해 인과를 조작하는 능력인 인지 표상 및 추론과 흥미로운 방식으로 결합된다. 시뮬레이션과 추론은 논리적 구조를 갖는다. 이는 형식논리가 아닌 인과 추론에 기반한다. 인과 추론은 조건부 연산의 기본 논리를 가지며 ‘필연적인’ 결과로 이어지는데, 예컨대 A가 일어나면 B도 발생한다 즉, A가 B의 원인이 된다는 구조를 갖는다. 호세 루이스 베르무데스는 이런 형태의 추론을 원형조건부 proto-conditional 추론이라고 부른다. 형식이 아닌 인과 구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만리케(Manrique, 2010)의 실험에서 여러 도구를 시뮬레이션하던 침팬지는 ‘A라는 속성의 도구를 사용하면, B가 발생해야 한다’라고 추론한다(원형 긍정 논법 porto-modus ponens). 이것은 전제에서 결과로 진행하는 전방추론 forward-facing inference 이다. - 마이클 토마셀로

 

최근에는 이것의 역(逆)인 후방추론 backward-facing inference 도 관찰되었다고 한다. 원인을 통해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 결과를 보고 원인을 유추하는 것. 인간 고유한 능력이 아니라 생물종, 특히 신경세포가 상당히 발달한 동물들의 행동에서는 흔히 보여지는 지능이다. 일련의 사태(a state of affairs)와 관련하여 그것을 원인과 결과로 추론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연결시켜보자. “우주 기원, 존재와 현상태에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문장은 이제부터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것은 하나도 심오할 것이 없는,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언어적 구조를 갖춘 ‘후방추론’에 불과하다. 깡통을 흔들어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누군가 안에 먹을만한 것을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마이클 토마셀로는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공동소장을 지내고 20여년의 연구를 집대성에 몇 권의 책을 펴냈다. 그의 2014년 저서는 나에게 굉장히 큰 생각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고등하다고 믿었던 사고들의 구조와 그 발생과정에 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20세기 중반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와 같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사고에 관해 매우 기계적인 측면들을 연구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부적절성 또한 충분히 논의되었다고 생각된다.

** 진화인류학적 접근 Evolutionary Anthropological Approach

"내가 작품과 글에 관해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언급하며 시작한 것은,

결국 찰스 다윈의 패러다임 속에서 지금 제시한 이러한 의문들

- 우리 생각의 깊은 구조와 발생과정들 - 에 관한 실마리가 조금은 풀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모든 심오한 진리는 오늘날의 진화생물학 연구 성과와 더불어 다시 이해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작품과 글에 관해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언급하며 시작한 것은, 결국 찰스 다윈의 패러다임 속에서 지금 제시한 이러한 의문들 - 우리 생각의 깊은 구조와 발생과정들 - 에 관한 실마리가 조금은 풀린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각 작품들을 구상하는 가운데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우리의 생각, 내면, 의식과 같은 것들 또한 안과 밖을 나누어 생각하면 잘못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한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하는 ‘영혼(soul)’과 같은 표현은 전형적인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라고 본다. 즉, 사실이 아닌 개념을 사실로 받아들인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있다’ 혹은 ‘없다’로 단정하지 않는 까닭은 어떤 것과 관련하여 있다 혹은 없다로 단정할 경우 모든 네트워크가 단절될 수 있다는 이해 때문이었다. 혹자는 물리적인 시간은 없으며 있는 것은 엔트로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를 인식하는 가운데 ‘시간’이라는 이해의 틀은 매우 큰 도움을 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물리학적 의미에서 정교한 ‘시간’의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총체적 현상을 단편적으로 분리해 이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오류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없다’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 결론을 도출하고 싶어진다면, 시뮬레이션을 빨리 끝내고 행동과 시행착오를 거쳐 나무 열매를 먹고 싶은, 흔한 영장류의 생물학적 충동일 수 있음을 상기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과 내가 분리되다: 주부-술부, 언어의 탄생

마이클 토마셀로의 연구를 통해 나는 ‘유사명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을 알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정말 대대적인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다. 유사명제에서 명제로의 변화는 지금까지 있었던 나의 수많은 고민들을 풀어주는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앞서서도 전방추론 혹은 후방추론이 논리적 구조와 같은 형식보다는 인과구조적이라는 점을 언급했는데, 이것은 ‘추론’이 성립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형식 즉, 언어적 구조를 제대로 갖추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분기점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것은 행위자로부터 행동의 의미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짐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종의 몸짓언어 body language 를 통해 몸이라는 행위자와 메시지

즉, 서술이 분리됨을 의미하는데 마이클 토마셀로는 여기에서부터

가장 기본적인 주부(subject)와 술부(predicate) 분리의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손으로 동그란 것을 움켜쥐는 듯한 행동의 반복으로 사과(혹은 나무열매)를 묘사한다는 것은 손의 움직임이 손이 아닌 다른 정보를 표현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행위자와 메시지를 분리하는 것이 된다. 언어구조가 주부 - 술부로 아주 극명하게 분리되지 않는 어족은 분명 많이 있으며, 이러한 분리가 가장 극명하게 일어나는 어족은 오늘날의 인도-유럽어족이다. ‘극명한 분리’가 없다고 해서 분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꼬-로만 문명과 인도-아리안 문명을 작품을 설명하는 서사에 활용하는 것은 인도-유럽어족이 이러한 경향을 매우 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며, 이러한 경향은 사용자의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다른 어족의 언어들이 이들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들만큼 극단적인 주부-술부 분리 구조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언어는 기본적으로 주어와 그것을 설명하는 술어들로 이루어진다. 또한 영어와 같은 언어들을 오랜 기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주부-술부의 구조가 내재한다고 해도 구어에서 사용될 때 그것을 구체적으로 분리해서 쓰지 않는 사례는 우리말의 “안녕하세요” 만큼이나 흔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의 “안녕하세요”에는 구조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상대에게 이 말을 전한다는 점에서 이 안에는 인사를 받는 상대가 “주어 subject”가 되는 구조가 내재하고 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사실과 개념, 실재와 관념의 분리를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눈앞에 ‘사과’를 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사과를 탁자 위에 한 달 정도 놔둔다고 가정해보자. 과일 속 퀴닌산은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하여 사과를 갈색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지고, 벌레가 모이고, 사과는 점차 일그러지고 심하면 악취를 내기 시작한다. 여기에 우리는 ‘썩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썩은 사과’가 있다고 말하게 된다. 현실 즉, 상호작용과 반응 그리고 변화라는 기본적인 움직임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는 어떠한 것도 고정불변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관념적 세계만 불변하게 되는 것이다. 즉, 사과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일종의 가합(假合)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관념 속에 있는 ‘사과’라는 대상은 ‘썩은 사과’가 아닌 나무에 달린 사과 혹은 아직은 먹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사과를 의미한다. 오히려 먹기 위해 ‘보기 좋게’ 해체한 사과가 갈변된 사과보다 우리의 생각 속 사과에 가깝다. 우리 생각의 흐름 자체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듯, 대상의 지칭은 어떠한 순수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의 투영이다.

 

이것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오면 우리의 손과 같은 신체 일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손으로 무엇인가를 묘사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손’이 아닌 ‘다른 대상’을 보게 된다. 그림자 놀이처럼 손으로 만든 그림자들을 보며 이야기를 상상한다. 구체적인 대상인 ‘손’으로부터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마이클 토마셀로가 말하는 ‘유사명제’는 이러한 점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집단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은 ‘개들’이 하듯이 짖어서 시선을 돌리고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그런 행동이 아니다. 음성언어가 없는 상태에서도 인간들은 손과 표정을 통해 아주 다채로운 내용을 묘사해 전달한다. 이러한 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인류가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집단을 움직여 개체를 압도하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들)이라는 생물이 가진 가장 강력한 능력이다. 바로 이러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묘사하는 도구 혹은 신체와 내용이 분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리의 심화는 성대의 진동과 혀와 입술의 정교한 움직임을 통해 다양한 발음을 만들어내는 음성언어를 통해 다른 생물들과 격차를 만든다. 이것이 언어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분리’ 혹은 ‘격리’는 ‘추상화’라는 능력으로 발전해나간다. 인간은 돌과 나무를 갂아 상징을 만들고, 시간이 흐르며 거기에 어떠한 ‘초자연적 의미’를 부여했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석굴암 불상은 바위 동굴 속 이상한 바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 문화, 의미와 결합하여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보호해야하는 대상이며, 그 전에는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었고, 민간/토속 신앙과 결합하여 그것은 아이를 낳게 해주고 가정을 지켜주는 신이 된다.

사물과 의미의 분리는 나와 세상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의식을 가져왔다.

 

이것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생물종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동시에 우리 자신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실상 인간 자신은 세상과 격리된 별개의 개체로 활동할 수 있다고 해도 반드시 그렇지는 못하다. 상식적으로 우주 원소의 75%는 수소이며, 지구상 표면적의 70% 가량이 바다다. 그리고 인체의 70% 가량은 물이다. 이러한 원리를 신비적으로 접근하면 끝이 나지 않겠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이루는 환경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은 환경의 일부이며, 개체적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분리’를 더 강하게 경험하게 되는 까닭은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고 정보를 수용하는 인식구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바로 사실과 개념, 대상과 정보, 사물의 지표화 같은 분리 능력이다.

 

소리는 음성신호로 다양한 메시지를 함축할 수 있으며, 글자의 구분 가능한 모양들은 단어, 문자열, 문장, 문단이 되어 많은 정보를 담게 된다. 언어는 사회적 지능의 산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근간에는 어떠한 보편성과 소통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인간은 뾰족한 것을 움직여 사냥을 하는 뇌의 부위를 통해 손으로 글씨를 쓰는 행동을 만들어냈다.

 

손으로 먼 곳을 묘사하고, 사물을 묘사하며 기초적인 의사소통에 성공한 무리는 더 많은 정보를 교환할수록 더 많이 생존하고,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음을 경험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집단을 통해 개체를 압박하는 능력은 인류가 지배적인 생물이 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자연계 대부분의 동물들이 자신보다 신체적 능력이 훨씬 부족한 대상을 사냥하지만 인간만이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강한 생물을 사냥할 수 있다. 이것이 집단이 개체를 압도하는 능력이며, 이것의 근간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인류의 생존률을 높이고 생활을 발전시킨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발달한 집단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한 집단은 상대적으로 도태되고, ‘유사명제’를 통해 의사소통의 장점을 이용할 수 있었던 초기 인류는 점차 그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해가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내 인류의 의식은 언어라는 골조 속에서 아주 극명하게 사실과 개념을 분리하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러한 누적은 세상을 2차원 평면에 묘사하고 자신을 손바닥이라는 지표 index 로 함축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왔다. 결국 예술이란 세상과 나의 분리에서부터 가능하며, 사실과 개념의 분리에서부터 가능하다. 소리는 음악이 되고, 색깔은 미술이 된다. 손바닥은 나를 상징하며, 몇 글자의 ‘이름’은 나를 함축한다.

 

이렇게 세상과 분리된 의식의 세계란 곧 주부(subject)와 술부(predicate)의 분리에서 비롯된 세계다.

과학과 근대세계

우리는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지식을 통해 이제 상황을 꽤나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 시대를 살고 있다. 오히려 반대로 이제는 관측된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술에 압도되고 있는 것은 비단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용자 환경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인류의 기술 자체가 이미 인간의 인식 자체를 넘어가 있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그것들을 분석하고 이해할 이론적 기반이 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접근 자체가 어려운 분야들도 생겨났다.

 

현대 과학이 현시점의 인류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자연은 우리의 직관과는 매우 다른 측면이 있으며, 관측된 사실은 우리의 이해와는 매우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뉴턴이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단순화되고 독립된 점을 이용하여 최대한 단순화된 상황을 상정해 풀어갔다면, 그러한 독자적 운동이 자연을 기술하는데 부적절한 방법일 수 있음을 이해한 현재는 매우 복잡한 계산과 비상식적인 장비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몇 개의 도시를 합친 크기의 실험 장치를 통해 소립자를 엄청난 에너지로 가속/충돌하는 실험이 아니면 더 이상 자연의 근간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을 축적했다. 자연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가 더 이상 아님을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다. 이것은 ‘이것’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이고, 저것은 ‘저것’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확률분포와 불확정성, 거시계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는 자연의 저변을 알게 된 것이다.

 

과학과 근대세계 이후의 인류 문명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문제는 이제 인류의 기술문명이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으며, 일반적인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사태를 연구한다. 자연의 기틀이 우리의 직관과 매우 다르다면 우리는 반대로 우리의 직관, 우리의 이해, 우리의 인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미 19세기의 다윈(C. Darwin)으로부터 이러한 문제에 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연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 선형적 인과(linear causality)를 통해 원인과 결과를 양분하는 것은 이미 자연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발견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행성을 이루는 자연환경과 그 자연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항성계의 환경와 조화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다. 전자(electron)은 입자의 형태로 궤도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궤도 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원자핵 주위에서 전자가 발견될 확률 분포로 나타난다.

우리의 언어는 있다와 없다를 단정하고 결론을 내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것은 앞서서 설명한 전방추론과 후방추론

즉, 시뮬레이션과 결과성취에서 발전한 지능의 특징 때문이며,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상정하며 반대로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하는 지능이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는 인식이 과정적이고 상호적이라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선형적 인식이다.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매우 다르다.

이처럼 논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나 복잡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인식의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류’를 가능하게 한 상태의 분기점들을 짚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오늘날 철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거의 판타지 소설처럼 우주를 묘사한다. 그것만 가지고 일러스트를 해도 훌륭한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 만들어질 정도다. 거기다 근대 철학의 분기점이라 할 만한 중심인물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묘사하는 인간 인식의 프로세스와 그 일러스트를 재해석해서 서사를 만든다면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될 것이다. 송과체(선)(松果腺, pineal gland), 영적 세계와의 와이파이 접속이라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매우 컨템포러리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후대 데카르트 학파 사람들은 뉴턴의 역학을 마술적 중세로의 퇴보라며 깎아 내렸다. 중력의 실체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돌멩이는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 무거운 물체는 왜 떨어지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은 회귀 혹은 구성성분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겨난 곳으로의 회귀가 돌이 땅으로 떨어지도록 만드는 원인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것들은 흙의 원소들이 많이 포함되기에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밀도 높은 금속의 제조 과정을 논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변호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작품의 또 다른 사고기반이 되는 인도 북부의 문화와의 비교를 해보면 더 기묘한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인도 북부 정착민들의 체계는 오랜 세월 철저한 제식을 통해 다듬어졌기에 그 체계성에 있어서는 그리스 철학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이후의 고대 그리스 철학은 사실 판타지 소설이나 다름 없다. 다소 비하하자면 이집트인들이 토지 관리를 위해 도입/ 개발한 기술들을 가져와 우주의 근본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뿐이다. 실상은 고대 베다를 만든 인도 북부 정착민들의 세계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나 판타지적 세계로 치부해도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인데도 그리스의 유산은 ‘철학’으로 인도인들의 유산은 ‘판타지’로 취급한다. 실상은 전형적인 그레꼬-로만 문명과 서구유럽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사고의 깊이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의 문제인 것이다.

나의 언어가 나의 세계를 만든다

인류 문명이 소위 ‘고도화’로 진행해 갈수록 원인과 결과를 따로따로 떼어서 보는 경향은 공통적으로 생겨난다. 인간의 지능이 사회화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인구의 증가와 사회규모의 증대가 언어적 인식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점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언어적 구조를 가진 인간 인식의 근간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과학적 근거로 세상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 듯 보여도 실상은 매우 유사하다. 하나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말해주며, 다른 하나는 감관에 의한 수용물에 관한 내용의 이해는 곧 이론을 수반하는 가설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세상은 더 이상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는 감관 자체가 특정한 상호작용의 누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과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결국 이론 혹은 편견을 통해 수용되는 가설이라는 점에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단 이러한 한계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앞서 이야기한대로 현재 우리의 관점을 만든 주요한 ‘분기점’들을 돌아보는 것이 한계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의 초석이 될 것이다.

 

일찌기 다윈은 사회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분야는

생물학의 분과로 취급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분과주의는 종종 제시하는 개념들을 놓고 사실 혹은 역사적 맥락을 통해 검증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분과적 관점에서 서로 소통되지 않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성과들을 모아 소통이 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까지 아우르는 작업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작품 구상의 근간,
시각화 요소 하나하나까지

그런 의미에서 예술작품의 구상은 수많은 분야들의 테스트 필드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최근까지의 예술계의 경향은 지나칠 정도로 언어적 표현이 부족하다 못해 자칫 ‘여긴어디, 나는 누구?’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나는 되려 사람들이 붙잡을 가이드라인 guideline 이 있는 것이 어떨까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와 그 작품들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작가인 내가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특정한 문명과 언어권의 사고방식을 소재로 잡은 이유, 사용된 장비나 테크닉의 도입 이유, 시각화된 내용들에 관한 모든 것이 작품을 이루고 있다면 그것을 만들고 다듬는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간 지능의 근간, 인류 문명이 갖는 사고와 그 변화 과정의 특징, 표현에 활용된 개념과 오류(혹은 오해)를 수정하지 않고 작품에 반영한 것 등 많은 것들을 고민했다.

 

또한 이러한 목적성과 더불어 나에게 작품을 만드는 것 만큼의 재미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바로 개념을 구성성분까지 쪼개는 과정이기에 그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해보고자 한다. 조각이나 회화에 비교한다면 일반적으로 사진은 작업 과정이 훨씬 덜 노동 집약적이다. 그만큼 작가가 가진 생각의 완성도는 중요하다고 본다.

​𝐈​𝐈

"Nature abhors a pure stand”

- William Hamilton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검증해본다

신화의 세계

"레벤슨 J.D. Levenson 은 문화적 순수성이야 말로 망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 J.D. 레벤슨에 대한 존 H. 월튼의 인용에서 재인용

 

신화의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류의 의식 구조의 상당부분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문헌학자 조르주 뒤메질(George Dumézil)의 주장처럼 신화, 의식, 상징과 관련에 사용되는 언어의 어원들을 세부적으로 이해할수록 그 정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탈신화화(Entmythologisierung)의 문제가 때로는 지나치게 분석적인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어떠한 선포(Kerygma, κῆρυγμα)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으로 나타나듯이 서사가 전적으로 부재한 분석은 오히려 의미의 배열만 남을 뿐 어떠한 역동성도 갖추지 못할 위험이 생긴다.

 

또한 문화적 순수성이란 말 그대로 ‘망상’이다. 우리가 오히려 문화적 순수성에 애착 이상의 집착을 보이는 까닭은 실상 그것이 정말로 있어서가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목적성을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과 문화 그리고 국가의 뿌리를 제시하는 것은 그것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다기 보다는 정치적 목적성과 당위성을 강화할 이유로 제시되는 것이다.

 

나는 근/현대 국가조차도 고대 국가의 왕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떠한 신화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통한 당위성의 입증에 혈안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가 자주 있다. 이것은 또한 각 국가의 개별 구성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온라인 상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국가간 ‘우월감 논쟁’의 저변에는 이러한 신화적 세계를 그렸던 우리 인류의 사고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만년전에 동굴벽화를 그린 인류와 1만년전에 공동체의 성장 초석을 닦은 인류, 5천년전에 국가화를 이룩한 인류 그리고 20세기 현대국가를 이룩한 인류는 사실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보의 누적과 사회적 네트워크의 거대화는 그만큼 정교한 검증 기준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지만,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크게 변화시키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인정하기 싫은 만큼 사실일 수 밖에 없는 것 한 가지는, 인간의 ‘생각’이란 생물학적이라는 것이며, 생물종의 특징이 그만큼 반영되는 것이다. 처음 장황하고 긴 글을 통해 전방추론, 후방추론, 시뮬레이션, 유사명제와 같은 진화인류학 Evolutionary Anthropology 의 연구성과를 늘어놓은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나는 이러한 우리의 한계 상황에 대한 직시(直視)가 우리의 향후 행보에 매우 중요한 태도라 생각한다. 이 ‘직시’ 없이는 어떠한 노력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영적 수행, 종교활동, 과학과 기술의 진보, 사회와 정치에서의 노력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우리가 어떠한 존재론적 착각을 자기 정당화에 끊임없이 반영하는 것을 보며 이러한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 우리는 신진대사를 일으키는 우리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생존을 위해 획득된 ‘지능의 고도화된 상태’를 우리의 근간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어원 연구와 역사적 맥락을 통한 검증을 기반으로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희망적인 측면’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자신이 고결한 정신 혹은 고결한 영혼을 갖고 있기에 중요하다는 주장 자체도 실상은 매우 특정한 가치와 사실 혐오에 빠진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생물학적인 측면인 것처럼,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 또한 생물학적인 측면이다. 맛있는 음식은 대부분 살이 찐다. 높은 열량의 섭취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인간 문명화된 반응을 자신의 기쁨의 근간으로 삼았으니 대부분은 자신의 식탐과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신체를 유지하려는 갈등 사이에서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신진대사를 일으키는 측면을 기본으로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능을 그러한 누적에 주어진 생물의 기능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왜 맛있는 음식과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신체를 유지하려는 갈등을 갖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먹고 배설하는 것과 같은 생물의 특징과 사회화와 소통기술 발달을 통해 지능을 고도화 해 온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갖는 수많은 갈등상황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따로 놓고 생각하지 말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로 본다면 우리는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이상상태와 현재상태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 이러한 사실이 아닌 것 즉, 사실의 구분을 위해 개념화 하는 과정에서 개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결국 관념화 혹은 개념화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인간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 세계의 근거와 문제는 무엇이며,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 왔는지를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 속에 고민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전시 작품 속에서 근간이 되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서사적 요소의 탈각(脫殼)이 이 경우 주된 매체와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 작품 즉, 시각예술 작품을 벽에 걸어두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셈인데, 그렇게 하다보니 결국 가장 주요한 매체는 벽면에 걸린 사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놓고 얼마든지 서사의 껍데기를 벗겨도 부담이 될 일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것을 소위 말하는 ‘진화인류학 evolutionary anthropology’과 역사 어원론의 관점에서 이해해보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의 구상 작업의 제목을 ‘다윈’과 ‘불교적’ 관점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나는 작품을 위해서

(1) 인도-유럽어족 문명권을 중심으로

(2) 언어가 가져다주는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인도-유럽어는 인류의 유사명제 발생 이후 인간 언어 가운데 주부/술부 분할의 특징이 가장 선명한 언어인 동시에 이 어족의 화자는 전세계 인구의 약 46%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인류사의 ‘신화적 세계관’ 자체가 동아시아의 문명에서는 그 실상이 꽤나 흐릿한 측면이 있는 반면에 인도-유럽어의 세계 즉,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일대에 이르는 세계에서는 매우 선명하게 이어져왔다. 동아시아의 신화적 세계를 이루는 근간은 국가 경계나 개념이 모호했던 시대의 산물인 <산해경 (山海經)>을 제외하면 실상은 대부분이 불교수용사에서 비롯되었다.

즉,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는 신화적 서사의 상당부분은 인도-유럽어 문명의 문화원형에 대한 수용과 영향의 결과물이다.

 

신화는 인류가 정치제도를 발전시켜온 과정은 신화라는 내러티브로, 진화인류학적으로 그리고 언어의 변천사를 통해서 매우 흥미롭게 여행할 수 있는 세계다. 또한 인도-유럽어 문명의 신화와 그 세계의 역사 기록은 앞서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폭넓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그동한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을 불러왔던 수많은 생각들이 실상은 실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벌의 문제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며 타인과의 조화 그 자체로부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사피어-워프 가설과 헬레니즘 그리고 인도의 관계

이 가설의 타당성 여부는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해 증명될 수 없다는 특징으로 인해 언어 학계에서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식으로 본다. 그렇다고는 해도 '에드워드 사피어'의 관점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즉, "현실 세계가 상당히 해당 집단의 언어 습관을 기반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헬레니즘이 어떻게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에까지 그토록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리아와 아케메네스 제국의 범위는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로마의 정복으로 그레꼬-로만 문명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을 뿐이다. 즉, 특정한 ‘제국’의 정복 범위는 유럽 지역을 제외한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볼 때 아케메네스(페르시아), 알렉산드리아, 로마 제국의 범위가 거의 유사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더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아케메네스의 페르시아, 고대의 파키스탄 지역, 알렉산드리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이들은 인도-유럽어족 문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케메네스 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페르시아'는 실상 이란인들의 국가로 신타시타 문화 출신자들 이주의 결과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언어적 조상들의 이주 모두 같은 어족의 이주사임에는 틀림 없다. 미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David Anthony)가 2007년에 발표한 저서는 청동기 초기 인도-유럽어 화자들의 이주가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넓은 범위로 파악한 연구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마구(馬具)의 변천사를 통해 인류 최초의 기마(騎馬)의 역사가 연구되어 있는데,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인도-유럽어 화자들이 아시아 대륙과 유럽으로 퍼져나간 동선을 매우 세부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도-유럽조어 화자들은 다수가 유목민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이들은 움직일 수 있는 자산인 ‘가축’을 몰고 먼 거리를 이주했다. 이들의 이주 경로가 천 년도 더 흐른 훗날 중국과 중동 그리고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의 기본이 된다. 또한 특히 먼 거리를 다양하게 이주한 후 인도와 이란으로 정착한 이들의 경우 문화에 유목민 특유의 문화가 그들 문화의 심층구조를 이룬다.

 

이들 모두 인도-유럽어 화자들의 정착 역사가 깊지 않았다면 헬레니즘이 과연 중앙아시아까지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 오늘날 인도-유럽어 문명의 대표선수격인 헬레니즘 문화 즉, 고대 그리스 문명은 동일한 어족 기반으로 넓게 퍼진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빠른 속도로 유럽과 중동 그리고 중앙아시아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르주 뒤메질(George Dumézil)이 어원을 밝히면 신화적 장치들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 좋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해 재미있는 것 하나를 찾아보자. 이것은 바로 유럽과 인도까지 퍼져나가는 문화원형의 교류와 변천이 보이는 것 중에 하나다.

Indo-European_expansions.jpg

Indo-European expansions, based on Anthony (2007), Nordqvist & Heyd (202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ndo-European_expansions.jpg

<금강경> 속 금강의 역사

갑자기 <금강경>을 끼워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금강’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통해 언어와 문화가 넓은 범위로 영향을 주고받은 경로를 아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아시아 대륙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우랄 산맥이 인류의 언어를 나누는데 중요한 지리적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우랄 산맥을 중심으로 각각 동서의 문화가 이후 다시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 ‘금강’이라는 단어에는 인류가 매우 광범위하게 교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신화적 장치들의 실체를 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어원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금강경, Vajrachedika-prajnaparamita-sutra>의 이름은 구마라집의 번역인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密經>을 줄여서 금강경 혹은 금강반야경이라고 부른 것이다.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신라 진흥왕 때로 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신라시대 원효 대사의 저술이 존재하는 것을 통해 이 시점을 근거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한국 불교의 종파적 특성, 조선 시대의 유교의 이념적 경직성에도 불구하고 이 경전이 오늘날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전례될 수 있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는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도올 김용옥).

 

인도-유럽어 문명 하나: 인도-아리안 문명

 

바즈라 - Vajra (वज्र)

영역권에서는 이 표현의 어원을 빌어 금강경 자체를 'Diamond Sutra'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는 과거 도올 김용옥 교수가 대중강연을 통해 이것은 "벼락경"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설명을 한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금강(金剛)이라고 하면 diamond를 생각하게 되지만 어원적으로 본다면 "벼락"에 더 적절한 의미다. 특정한 광물을 가리키는 금강은 인도 내에서도 굉장히 후대에 성립한 표현일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스코 파폴라(Asko Papola) 교수는 매우 구체적으로 데이비드 앤서니와의 견해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힌두이즘의 뿌리를 찾는' 목적성을 가진 저술을 상당히 내놓았기 때문에 그의 연구는 굉장히 흥미롭다. 데이비드 앤서니 교수의 <말, 바퀴, 언어>는 광범위한 PIE 에 관해 다루기 때문에 양도 많고 집중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스코 파폴라는 인드라의 명칭이 원시-우랄어족의 기후의 신으로 천둥과 하늘을 의미하는 *Ilmar/ *Inmar 에서 왔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대 핀족의 서사시에서 전쟁의 주된 영웅들 가운데 한 명인 일마리넨(Ilmarinen) 역시 천국의 돔 천장과 삼포를 만든 대장장이라고 전해진다.

 

핀란드어(Finnish)에서 ilma는 "대기, 날씨"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단어인데, 우드무르트어(Udmurt)를 통해 Inmar > Indra 변화의 과정을 겪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매우 많은 단어가 ra로 끝난다는 사실에서 생겨나는 ar > ra 로의 전환 이후에 비음과 r 사이에 d의 삽입이 요구된다. 이러한 구성은 인드라의 무기를 의미하는 *vaj'ra 에도 적용된다. 원시-서부 우랄어로 "망치", "도끼"를 의미하는 *vaśara는 금속 물체에 대한 외래어이다. 원시-인도-아리아어로 "전쟁신의 무기"를 의미하는 *vaj'ra - 에서 온 것으로 본다. 과거에는 전사들의 도끼나 철퇴를 의미했을 것이지만, 북유럽의 전쟁 신 토르(Thor)로부터 '해머'라는 의미를 획득한 것으로 여겨진다(Asko Papola).

일반적으로 이런 고대 이전 언어들을 연구할 때 * 마크를 사용하는 것은 재구성은 되었으나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구성은 아님을 감안하라는 표기이다. 문자도 없던 시절, 오래전에 사라진 언어를 재구성하는 작업의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구성을 통해 '금강'의 어원과 관련한 정보들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인드라의 명칭은 원시-우랄어족의 기후의 신, 천둥과 하늘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2. 원시-인도-아리아어에서 '전쟁신의 무기'를 의미하는 *vaj'ra는 금속물체를 지칭하는 원시-서부 우랄어 *vaśara와 연결된다.

  3. 이것은 일반적으로 "망치", "도끼"를 의미한다: 금강저는 어원적으로 보면 망치 혹은 도끼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을 따르면 인드라신의 무기는 벼락, 천둥번개라는 형태로 그 힘을 가시화한다.

KEYWORD:

인도-유럽어 Indo-European Language **

 

재미있는 것은 북유럽의 토르(Thor), 그리스의 제우스(Zeus),

인도의, 사실은 ‘시리아’의 인드라(Indra)에 이르기까지 ‘힘’을 상징하는 신들의 손에는

벼락 혹은 벼락을 부르는 도구가 들려있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북유럽의 토르(Thor), 그리스의 제우스(Zeus), 인도의, 사실은 ‘시리아’의 인드라(Indra)에 이르기까지 ‘힘’을 상징하는 신들의 손에는 벼락 혹은 벼락을 부르는 도구가 들려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교류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퍼져 있던 문화에서 퍼져나간 것이 이유일 것이다. 인도-유럽어 범위가 이렇게 넓은 것은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 혹은 콜린 렌프류(Andrew Colin Renfrew)로 대표되는 쿠르간 초원가설 혹은 아나톨리아 가설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현재는 마리야 김부타스로 대표되는 쿠르간 가설이 학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아나톨리아 가설 모르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켄툼(centum)과 사템(satem)으로 양분화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인도-유럽어들을 통해 우리는 유럽 지역은 주로 켄툼어 계열의 언어가, 이란과 인도 등지에서는 사템 계열의 언어가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양분(兩分)은 카스피해-흑해 초원에 살고 있던 유목민들의 언어가 다양한 이주를 거치면서 복잡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남아있는 공통점이다. 인도-유럽어와 관련해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아나톨리아'의 인도-유럽어가 이 이분법(dichotomy)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아나톨리아의 인도-유럽어가 초기에 보이지 않았던 이분화 양상은 히타이트어에서 '켄툼' 계열로 관찰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학자들은 아나톨리아의 인도-유럽어는 켄툼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나톨리아의 인도-유럽어는 그만큼 어느 정도 독자적인 특성 또한 있어 아나톨리아 가설이 역사적으로 타당하지 못하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 연구가치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인도-유럽어 문명 둘 - 고대 그리스

 

나는 고민 끝에 플라톤 다면체(Platonic Solid)를 이번 전시 도입에 놓았다. 2019년에 이화여대에서 이미 한차례 전시했던 작품이기도 한데, 당시에도 이 작품은 인간은 이제 세상을 인식하는 중간 매체(medium)가 없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는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가 인간은 문자를 소유하며 “세계로부터 한 단계 더 소외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그리스 철학의 문제로 작품이 시작되는 것은 인도철학 혹은 이후 인도-유럽어 문명 전반에 관해 이해하기 위해서 그 특징을 찾아가기에 그리스 철학 만큼 적절한 소재가 없다는 생각이 든 탓도 있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이후의 고대 그리스 철학은 사실과 본질을 거의 극단적으로 이분화하는 관점을 취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그 방향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본질의 그림자로 여기는 방향으로 이어져 나간다. 플라톤의 관점은 바로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세계가 본질의 그림자라는 점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방식이 세상을 그렇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생각 할 때도 우리 자신을 정신과 육체 혹은 몸와 영혼으로 양분된 존재로 인식하기 쉽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나는 실상은 ‘영혼’과 같은 개념은 죽음에 대한 일관된 회피 경향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태어나서, 늙고 또한 죽어가는 자신에 대한 부정이다. 때로는 일관되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자신에 대한 부정이다. 즉, 변하지 않고 불멸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상정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사실과 개념을 분리하는 경향을 가진 것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성경의 구약/신약의 접점과 관련해 ‘한국어’ 화자인 우리 교계에서는 불편할 문제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성경의 표면적 문제라면 불교 용어가 너무나 많이 등장한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동아시아 언어의 어휘(vocabulary) 가운데 상당수가 불경 번역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들이라는 점을 먼저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양측을 처음 기록한 언어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의 언어들이라는 점을 또한 떠올려야 하는데, 가장 흔한 문제는 바로 ‘구약’을 기록한 셈어족의 히브리어와 ‘신약’을 기록한 인도-유럽어의 그리스어가 매우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근거로 한국인이 ‘영혼’을 말할 때는 신/구약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 되지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헬라어)의 문제가 되면 이것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조로아스터교가 같은 인도-유럽어 기반의 문명의 산물이라고는 해도 그리스 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인도인들의 아트만(Ātman)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영혼관과 유사한 측면은 있지만 우파니샤드 등에서 등장하는 그들의 사고방식 속 ‘아트만’이 우리가 기본적으로 느끼는, 나의 자아와 거의 동일시되는 영혼의 문제와는 매우 다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구약성서를 기록할 당시의 히브리인들에게는 본질, 영원 같은 관념이 없었다. 따라서 구약 속의 영혼과 생명은 실질적으로 동일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의식과 동일한 어떠한 영속성을 지닌 내 안의 존재를 영혼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개념과 사실을 혼동하는 가장 흔한 모습이다.

 

우리가 기독교를 통해 수용한 ‘영혼’의 의미는 서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이라 해도 무난하다. 그러니 실상은 우리가 기독교의 하나님을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유사하게 시각화해 인식하는 것, 예수님을 푸른 눈을 가진 북방계 코카시언의 모습으로 시각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 또한 편견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주부-술부 분리, 시작과 끝의 상정은 인도-유럽어 문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서도 천 년 묵은, 혹은 오래 산 동물들이 쓸데없는 신비감을 자아내는 것이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세월이 흐르면 반드시 더 나아진다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 오래 산 생물들은 중간에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으면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 소위 ‘상위의 존재’가 된다. 이것은 선형적 인과 linear causality 의 전형이며,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발전사관’ 혹은 ‘진보사관(進歩史観, idea of progress)’이라고 한다. 이는 과거의 역사들이 점진적으로 오늘날 현재의 체제를 정당화 하기 위해 해석되며, 시점을 미래로 바꾸어보면 역사란 과거보다 미래가 더 나아진다고 하는 전형적인 가치평가의 반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문명이 대부분 ‘역사’를 당위성으로 왕조와 정치제도를 옹호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민간에는 천 년 묵은 거북이 같은 관념이 왜 별스러운 것이 아닌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은 바로 인간이라는 ‘생물’이 가진 공통점 즉, 최근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종특(種族特性. racial/ species traits)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뇌발달과 세계관은 직결된다

E. 풀러 토리는 인간의 뇌발달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종교가 인류 문명에 등장하였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정착생활과 농경이 가져오는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우선 조상과의 관계를 내세우는 것은 공동체 속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관한 당위성과 직결되며 이것은 또한 토지에 대한 권리와 직결된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 그의 공적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시작하는데, 여러 세대가 흐르면 돌을 던져 멧돼지를 잡은 이야기는 커다란 바위를 한손으로 들어올려 산속의 괴물을 쳐죽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강화되는 조상들에 관한 '서사'들은 '신화'가 되며, 그 신화들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집트와 수메르의 본격적인 국가시대가 되기 시작하면 신들의 계보와 서열이 분명해지고, 제국 시대가 다가올수록 '지고신' 혹은 '절대신'이 등장하여 인류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E. 풀러 토리(E. Fuller Torrey)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농업혁명과 죽음에 대한 인식 강화

  2. 급속한 인구의 증가와 내세관 정립

  3. 도시 건설과 조상숭배

  4. 위계질서, 권력구조의 등장과 조상간 위계에 관한 계보관념

  5. 왕과 통치기구 등장과 신의 출현

  6. 왕에게 부여된 신권과 신이 세속적 법률에 강제성을 부여

 

“<신에 대한 믿음의 신경심리학적 기초 Neuropsychological Bases of God Beliefs>의 저자인 캐나다 로렌션 대학의 심리학자 마이클 퍼신저 Michael Persinger 도, “‘신 체험 God Experience’은 정상적이고 좀 더 조직적인 패턴의 관자엽 활동”이며 “개인적 스트레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예쌍되는 죽음의 딜레마 등 미묘한 심리적 요인으로 촉발되는” 일종의 소규모 발작이라고 주장한다. 퍼신저는 “신을 체험할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은 생물종의 생존에 결정적이었다. … 관자엽이 다른 식으로 발달했다면 신 체험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E. 풀러 토리, 2017)

 

나는 뇌과학이나 신경관련 전문지식이 없기에 자세한 설명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E. 풀러 토리의 연구는 물론, 수많은 신경, 뇌과학자들의 연구 그리고 진화인류학 연구 등의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이것은 인간의 종특(種族特性. racial/ species traits)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이러한 뇌과학적 관점을 다시 데카르트의 송과체(선)(松果腺, pineal gland)처럼 보기 시작한다면 역시 현상과 본질의 불연속적 이분법에 의한 접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소위 ‘영적 체험’을 데카르트 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로부터 주어진다는 생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데카르트적 접근을 두 가지에서 문제삼고 싶다. 하나는 만일 그러한 세계가 불가지 영역이라면 그 또한 우리의 한계 사태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며,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있다 혹은 없다의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는 것이 과연 맞는가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이것인데, 현상과 본질의 불연속적 이분화는 본질의 세계가 밖에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생각의 극단이 오늘날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같은 입장일 것인데, 이러한 입장의 실상은 개체가 환경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왔다. 우주 안에 있는 하나의 개체가 현재의 모양이기 위해서는 현재 우주 전체라는 조건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는 "개체는 존재하기 위해 전우주를 필요로 한다(It also requires the whole universe in order to be itself)"는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뇌과학적 입장의 이해는 철저히 우리가 환경과 별개의 존재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잘못 생각하면 인간을 무기물의 운좋은 조합물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위험은 항상 수반되지만 - 모든 사고방식에는 위험요소가 있다 - 실상은 그렇게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신비로움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즉, “데카르트의 안테나(松果腺, pineal gland)”는 존재론적으로 인간을 ‘독자적인 존재’로 이해하기에 가능한 접근인 것이다.

 

현실 세계 속에서 독자적 존재

즉, 전능한 악마가 있어 ‘있다’라는 거짓을 속삭이더라도

그것에 속을 ‘나’라는 존재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다른 세계’에 전적으로 기대어야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매우 재미있는 모순이 나타난다. 현실 세계 속에서 독자적 존재 즉, 전능한 악마가 있어 ‘있다’라는 거짓을 속삭이더라도 그것에 속을 ‘나’라는 존재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다른 세계’에 전적으로 기대어야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적 세계와의 링크가 이 세계에서 나의 독자성을 유지시켜주는 설명이 된다. ‘나’의 영속성을 기대하고 있는 것, 이것은 다시 E. 풀러 토리의 가설을 입증한다. 이것은 일관된 ‘죽음에 대한 부정’인 동시에 ‘회피’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적인 나의 본질이란 나의 자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 가치관을 배제한 어떤 이상적 존재이며 그것은 어떤 무시간적 영원을 살아간다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호미닌 즉, 인간의 뇌발달 과정 전반에 관한 연구를 통해 대부분 설명되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뇌발달과 세계관은 직결”된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리게 된다.

 

E. 풀러 토리가 그의 2017년 저서에서 인간의 뇌와 영적체험에 관해 정리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 관자엽 - 누미노제

  • 마루엽 - 유체이탈

  • 아래마루소엽 - 자기를 초월한 듯한 감정

  • 변연계, 해마, 편도 - 종교적 체험에서 공통적으로 해마 위축 확인

  • 이마엽 - 명상 등의 행위를 통해 활성화 - 이때 마루엽 활성도가 떨어져 무시간적 느낌을 받게 됨

 

 

더불어 특정 부위에 의해 관찰되는 현상 뿐만 아니라 뇌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어떠한 결과를 일으킨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사실과 개념의 분리라는 접근을 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무엇인가를 단순히 잘못 보거나,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어떠한 오류에 원하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작품 가운데에도 감관에 의한 수용이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는 우리 감각기관과 우리 두뇌의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이것은 감각기관 자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기에는 적절하지 않는 측면을 꽤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등장했다기 보다는 점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식으로 변화해 온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시각기관인 눈이다: https://www.bhangyoungmoon.com/post/%EC%98%A8%EB%9D%BC%EC%9D%B8-%EB%8F%84%EC%8A%A8%ED%8A%B8-4-%EC%9D%91%EC%8B%9C-1-a-b

 

코끼리나 고래의 뇌가 인간보다 훨씬 큰 뇌 용적을 가지고 있지만 신경세포 밀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것은 코끼리나 고래의 것들을 압도한다. 부위별로 차이가 있지만 인지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다른 동물들보다 최소 5 ~ 10 배 이상의 신경세포 밀도를 가진 것이 인간의 뇌다. 각각의 뇌발달 특성과 뇌 내 네트워크 등 인간이 다른 동물과 격차를 보이는 점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

 

옥스포드 대학의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발달 가설과는 조금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다. 흔히 알려진 것은 ‘영양분 섭취의 변화’가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발달 전반에 관해 설명하기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가 이만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잠시 결론을 맺고, 로빈 던바를 언급한 이유로 돌아간다.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던바의 수(Dunbar’s Number)는 안정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이룰 수 있는 개체수의 크기를 설명한다. 던바의 설명들이 보여주는 중점은 사회활동이 뇌발달을 증진시켜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이론들을 같이 접해보면, 소위 ‘불멍’하는 상황의 뿌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음식을 불에 구웠을 때 소화흡수는 물론 맛이 좋아진다는 것에 관한 경험과 더불어 그런 이유로 불 주변에 모여 앉는 행위가 많아지고 이는 영양섭취 방법과 사회활동의 방법을 크게 바꾸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양한 이론에서 빠질 수 없는 두 가지가 바로 사회활동과 영양분인데 그 중에서도 사회활동은 나의 작업에 매우 중요한 생각을 제시해주었다.

 

인간의 지능이 사회활동 영위를 위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고 본다면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특징은 바로 의사소통을 위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에서부터 음성언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소통방법을 발전시킨 인간은 ‘명제 소통’의 단계에 이른다. 즉, 구조를 갖춘 소통의 탄생이다.

 

‘구조’를 갖춘 소통의 방법이란 소통 가능성을 위한 보편성 즉, 공유가 가능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 지능의 최전선에는 바로 ‘보편성’을 갖춘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우주론적으로 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기본적인 것은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진리의 추구라던가 보편적 질서의 추구를 떠올릴 때 그 근간이 되는 것은 어떠한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우선은 인류라는 종이 가진 사회성이라는 근간이다.

 

이렇게 인간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추고 나서 벌어지는 일은 사물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신상(神像), 부적, 각종 상징물들에 대한 의존도는 현대의 인류 문화에서도 매우 흔한 상황이다. 인류의 주요한 종교 중 비교적 늦게 발달한 ‘이슬람’의 경우 이러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시도를 보였다. 사원에는 그저 글귀들과 패턴 외에 어떠한 형상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적인 세계가 아닌 일종의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인데,

바로 우리의 언어적 인식이 지은 세계다

여기에서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을 거의 반대로 표현해 사용해볼까 한다. 우리는 본질적인 세계가 아닌 일종의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들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언어적 인식이 지은 세계다. 즉, 변화하는 세계라는 본질세계로부터 자꾸만 눈을 돌려, ‘이데아’와 같은 현실의 그림자를 현실의 본성으로 두려고 했다는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서, 늙고, 죽는 것이 인간의 근간을 이룬다. 변하지 않고 영겁의 세월을 떠돌며 살아가는 영혼이란 결국 인간이라는 생물이 가진 지능의 특성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가상세계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나는 ‘없다’라는 말보다는 과거 플라톤이 사용했던 ‘그림자’라던가 ‘가상’이라는 말을 선택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여전히 우리의 인식 속에서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But, instead, we habitually look to something outside ourselves, something “out there” in the world—or even “out there” beyond the world—that will save us, something that will serve as a go-between. This all comes out of our confusion and out of the fear that we’re somehow removed from Truth, that there’s some innate separation in the first place. But there isn’t."

(<Buddhism Is Not What You Think: Finding Freedom Beyond Beliefs> by Steve Hagen)

사물에 부여한 의미가 사물 자체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문명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천조각에 불과한 국기는 땅에 떨어뜨려서는 안되는 것이며, 타인의 초상이라는 정보가 투사된 사진들은 장식장이나 테이블 위에 곱게 장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는 물론 타인과 맺어지는 사회적 규약이며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분석을 계속해 들어가면 종국에는 예술행위와 작품 또한 이러한 범주로 분리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 예술행위와 제식은 결국 다르지 않은 행위이며, 이것은 주술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이다.

 

동굴에 벽화를 남기거나 무른 바위에 암각화를 남기기 이전부터 인류는 어떠한 상징활동을 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보존되는 것, 남아있는 것들이 아닌 다른 것들이 오래 전에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 (Star Trek Into Darkness)>의 초반 장면을 보자. 워프 기술 도입 가능한 정도로 문명이 축적된 행성이 아니면 접촉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어기고 그들은 엔터프라이즈호를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문명 행성인들에게 노출시킨다. 신화적 세계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그들은 엔터프라이즈호의 모양을 땅에 그리고 그것에 절하기 시작한다. 우리 인류 또한 수많은 일러스트를 사방에 남겼을 것이나 남아 있는 것이 몇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몇 만 년 전 인류의 일러스트 행위 속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것 한 가지가 ‘손바닥 자국’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손바닥 자국은 동굴벽화를 그린 사람들의 시그내쳐 즉, 도장이 아닐까 싶은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이것의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우리가 꽤나 확신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앞서서 이야기 했던 분리와 거기에서 비롯된 추상화 가능성으로부터 이어지는 결과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 또한 어떠한 발자국을 통해 그곳의 영역문제나 위험도 혹은 사냥 가능성 여부 등을 평가한다. 처음 이야기 했던 전제에서 결과로 진행하는 전방추론 forward-facing inference 이다. 그러나 하나의 발자국을 놓고 그것에 어떠한 독자적 정체성 identity 를 부여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만이 몇 개의 문양을 통해 하나의 아이덴티티, 멀리 있는 타자를 가져오는 현존을 구현한다. 손바닥은 나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지표 index 가 되는 것이다. 대상과 의미를 분리하는 이러한 지능은 의미를 함축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해가며, 이것은 단순한 자국을 도상 icon 으로 또한 상징 symbol 으로 그리고 지표 index 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 신체에서 메시지를 격리하고 주부와 술부 구조를 갖는 인간의 언어적 구조를 갖춘 인식은 또한 인간의 예술행위를 추동하는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에서 메시지를 격리하고 주부와 술부 구조를 갖는

인간의 언어적 구조를 갖춘 인식은

인간의 예술행위를 추동하는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신화의 세계란 이러한 능력이 서서히 자리잡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사회화 규모가 확장되며 만들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 풀러 토리의 도식은 이러한 신화적 세계가 자라나는 사회화 과정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던져야 할 돌에 염원을 담아 사냥을 했던 사람들은 어떠한 계기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인류 최초의 농경 정착지들은 기본적으로 야생 곡물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또한 강의 범람으로 자연스럽게 다져지는 농경지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이며, 수메르와 아카드가 일어난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끝자락이다.

 

농경과 관련된 오늘날의 지식은 거의 만 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누적된 것이다. 이러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최초의 농경인들은 요행을 바랄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언제나 장소를 옮겨다니는 수렵채집 문화에서 조차 어느 순간 풍족한 식량은 물론 환경의 질서를 위해 제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착지 사람들은 이러한 의식이 급속도로 퍼졌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정착 문명인 고대 근동 일대에서 ‘강’은 심판자의 역할을 갖는 신이었다. 메소포타미아는 물론 이집트 또한 강의 범람에 의해 정착민들의 식량이 해결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인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지구 전체의 온도와 해류의 흐름,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링이 가능해진 오늘날이라면 어떠한 요인들이 농사에 영향을 주는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세계에서 농사의 성공은 결국 자연환경이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신들이 유지시켜주는 자연질서의 안정이 생존에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하늘, 땅, 강과 바다, 비와 바람 이 모든 것은 신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사회 공동체가 커지면서 국가화를 이루는 시점이 되면 신들의 계보가 강화되는 쪽으로 변해간다. 각각의 신들에게는 상징, 기능, 지위 혹은 역할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세상의 역학(力學, dynamics)을 통해 이해하는 틀을 가지고 있다면 고대인들에게 관측기반은 곧 신의 역할이며 힘이었던 것이다. 추상화의 심도가 깊어지며 정치제도와 같은 신들의 계보가 만들어진다. 공동체의 거대화, 도시 국가화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신화적 서사는 곧 정치기구의 실현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치와 종교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고대 문명에서 자연과 초자연은 분리되지 않으며 신권은 왕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 따라서 신화적 서사란 오늘날의 권리문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법’의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널리 받아들이는 바빌로니아 제1왕조 시대의 왕 ‘함무라비’도 자신의 아버지가 바빌론의 주신인 ‘마르둑’이라 주장한다. 자기 행위 혹은 권리 혹은 권력의 당위성을 위해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주장했던 것은 고대 근동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신화적 서사의 등장은 인류 공동체의 규모가 거대해지고,

점차 당위성의 입증을 위한 분쟁이 잦아졌음을 의미한다는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문헌자료의 분량이 늘어나는 것도 관계가 있지만 국가화가 진행될수록 계보라는 것은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경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정착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수메르’의 경우 왕을 언급할 때 왕의 진짜 부모를 언급하지 않는다. “왕의 신성과 관련된 진술이 찬미가 속에서 종종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배자의 아버지를 언급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우르 제 3왕조에 속한 왕들의 경우 아버지는 루갈반다(신격화된 영웅)이고, 어머니는 여신 닌순이다. 그 후의 왕들의 경우에는 보통 아버지는 엔릴이고, 어머니는 그의 아내 닌릴이라고 일컬어졌다.”(새뮤얼 크레이머)

 

사실 ‘왕권’이라는 것은 그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 시대적으로 수메르 왕조에서 4천년이나 지난 아시아 대륙 반대편에 있는 우리 한반도의 조선왕조에서도 <용비어천가>와 같은 문헌이 등장한다. 근거가 없는 권력에 절대적인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장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로마 기독교를 받아들인 유럽의 왕국들은 기독교적 논리로 왕권의 당위성을 내세웠다. 종교적 장치가 없으면 업적과 서사가 매우 중요했으나 역시 최종적인 당위성은 신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세레모니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경우는 다소 특이한데, 이 경우 인간 인식 속에 있는 시간이 지고신의 역할을 한다. 즉, 역사를 당위성으로 내세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바라보는 동아시아의 절대신(혹은 지고신)은 인간의 공통 의식과 시간의 흐름(변화의 추이)이라는 불가항력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연속체다. 동아시아의 국가화는 고대근동과 비교할 때 시대적으로 훨씬 늦는데,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지고신에 관한 관점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인 경향을 보인다.

 

심지어 이것은 오늘날에도 전혀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신과의 관계를 내세운 신화적 장치가 무력화된 오늘날의 정치는 분쟁이 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찌보면 문제의 매우 큰 요인이다. 다수결에 의한 절차가 의사결정에 매우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정당성은 ‘민심’이라고 하는 다수의 생각에 근거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복잡한 관계로 얽힐 뿐만 아니라 해석하는 방법도 자기 정당화에 집중된다. 또한 다수결에 의해 결정하는 실질적인 절차를 벗어나 대표자로 표현되는 상징성을 놓고 볼 때 선출된 대표자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그 권위라는 것이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실상은 다양한 도덕적 가치와 실리적 이유를 내세우지만 그 또한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매우 크다. 또한 시대적 가치로 내세우는 것들 조차도 자세히 보면 그 근거는 미약할 수 밖에 없다. 정말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현재 지구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인간들에게 너무 많은 결정권이 주어졌다. 생태계 전반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포유류 체질량 biomass 의 36%나 차지하는 단일종이 하나의 행성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인권이라는 것은 인간들의 사회적 규약에서 유효할 뿐, ‘객관화’해보면 그 근거가 없다.

과거에는 '신관'이 했던 역할을

이제는 ‘기록물’과 그에 대한 관점 그리고 해석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쟁의 결과로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월드와이드웹(WWW)에는

‘증거’라는 꼬리표를 달고 자기 주장을 충족시키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다보니 고대의 것에 수많은 개조가 가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신화적 장치는 강력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이런 신화적 장치들이 상당히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관련된 서사를 강화하고, 유리한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특정한 관점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신관'이 했던 역할을 이제는 ‘기록물’과 그에 대한 관점 그리고 해석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쟁의 결과로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월드와이드웹(WWW)에는 ‘증거’라는 꼬리표를 달고 자기 주장을 충족시키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결국 5천년이나 지나 수많은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인류의 정치란 신화적 장치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인류 문명사 전반의 신화적 장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으면 문명과 사회의식이라는 것은 그다지 변한 것이 많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생물종의 역사이기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사실 문제의 요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우리의 뇌기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신화적 서사는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진다 #1
​고대근동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경우 수메르와 아카드 시대가 지나고 바빌론이 자리를 잡을 무렵이 되면 '마르둑'이라는 신의 이름이 명확하게 등장한다. 마르둑은 바빌론의 주신(主神)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함무라비’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를 마르둑이라 자랑했다. 이 마르둑의 권위는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에스라'를 불러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허가해준 '키루스 2세'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키루스 헌장 속에서도 등장한다. 바빌로니아의 마르둑은 앗시리아의 표현 양식과 아리안 문화와 결합된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에 의해 밀려난다. 아케메네스 제국 시대가 되면 '다리우스'가 자신의 왕권과 그 당위성을 주장할 때 아후라-마즈다의 권위를 내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키루스 1세는 엘람 문화를, 캄비세스 1세는 바빌론 문화를 중심으로 통치 이념을 삼았다. 바빌론 문화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면 당연히 ‘마르둑 Marduk’을 국가의 주신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는 키루스 2세의 키루스 헌장(Manshūre Kūrosh)에서도 발견된다. 키루스 헌장은 키루스 2세의 종교적 관용과 다민족 문화에 대한 포용을 정책 방향으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당시까지도 바빌론의 주신 ‘마르둑’이 언급된다.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카데쉬 전투시기 즈음에 세워진 국가 이스라엘은 이러한 강대국 분쟁 속에 자리한 소국이었다. 이스라엘의 지위는 최전성기에 솔로몬이 친-가나안 정책을 통해 바알 신앙을 대거 받아들여야 했던 점, 이스라엘 성전 재건 사건이 키루스 헌장에 등장하지 않는 점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강대국들의 입장에서는 값비싼 파피루스나 파치문트에 몇 글자 적기도 아까울 정도로 기록할 가치가 없었던 국가였던 셈이다.

첫째날부터 안식일까지 단지 '말 한마디들로' 만들어지는

우주만물은 곧 '고대 근동세계의 강대국이 섬기는 모든 신들은

야훼의 피조물'이라고 외치는 급진적인 독립선언문이었던 셈이다.

셈어족 문명의 왕들과 북방에서 이주해 온 아리안계 이주민들은 점차 강성해졌다. 이집트, 히타이트는 물론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 불리우는 지역의 다양한 국가들에서는 자신들의 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들의 계보를 주장했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7신들의 계보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로마식 요일명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은 7개의 날을 이용해 <창세기>라는 강력한 문헌을 남겼는데, <창세기> 1장의 핵심은 바로 이 7신들의 계보를 무시하고 야훼에게 헌신한다는 선언에 있다. 첫째날부터 안식일까지 단지 '말 한마디들로' 만들어지는 우주만물은 곧 '고대 근동세계의 강대국이 섬기는 모든 신들은 야훼의 피조물'이라고 외치는 급진적인 독립선언문이었던 셈이다.

 

이스라엘 문헌에서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수식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모세오경이나 신명기역사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특정한 공간으로 수식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실상 지고신의 거점이 하늘이라는 관점은 수메르에서부터 전해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다. '안', '아누'와 같은 지고신들은 땅의 통치는 다른 신들에게 넘겨주고 자신들은 하늘로 올라가 지고신의 자리에 앉았다는 서사로 표현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수식은 전형적인 아케메네스 제국 문물의 영향이다. 이것을 부풀려 이스라엘 문헌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은 것처럼 바라보는 관점은 고대근동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약이라 할 수 있겠다.

 

구약성경의 일신교 관점은 <창세기> 1장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다신교적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극적으로 뒤엎는 내러티브로 시작한다. 창세기가 이집트의 <헤르모폴리스>, 아카드의 <에누마 엘리쉬>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계에서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주변 제국들의 절대신들을 즉, ‘하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것은 창세기 1장이 갖는 매우 중요한 의미다. 문제는 <에스라> 같은 문서에 오면 창세기에서 애써 그려낸 ‘단순한 피조물’이라는 하늘이 하나님이 계시는 공간으로 탈바꿈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고레스’의 입에서 시작되지만 말이다.

신화적 서사는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진다 #2
인도-아리안 종교의 분열

'아후라-마즈다' 즉, 조로아스터교가 아케메네스 제국의 지고신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사상의 근간에 <아베스타>라는 경전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베스타>는 인도-아리안들의 경전 <리그베다>의 사촌격이다. 아케메네스 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페르시아'는 북방 아리안 이주자들의 국가였다. '이란'의 어원적 의미에는 '아리안들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다.

 

인도-이란어는 기원전 1500년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고 인도어가 북시리아의 미탄니 문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공통의 인도-이란어는 신타시타 시기 즉, 기원전 2100~1800년 경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원시 고 인도어는 기원전 1800~1600년 무렵 이란어에서 갈라져 독자적인 언어로 자리잡는 것으로 본다. <리그베다>와 <아베스타>는 모두 공통 부모어인 인도-이런아 정체성의 본질이 언어적인 동시에 의례적인 것이며, 종종적이 아님을 보여준다(데이비드 앤서니).

 

불, 제식, 찬가가 이들 문화의 공통점인데 아케메네스의 경우 제국화와 왕정 중심의 정치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이러한 의례적 모습이 역사 기록의 주류가 아니게 된 반면, 왕정파와 사제파로 갈라져있던 인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화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다양한 신분제 구조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원전 850년경에는 ‘파사’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유목민이었던 사람들이 세운 국가가 등장한다. 구약성경 안에도 이들 유목민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호림, 메데인들을 비롯, 바사(페르시아)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시기 즉, 기원전 850년경은 오늘날의 이란 지역 즉, 아케메네스 사람들과 인도로 넘어간 사람들 사이에서도 문화적 갈라짐이 크게 발생하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원전 850~600년 사이에 발생하는

이란조어 Proto-Iranian 속 발음변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H > S

아르케메네스 쪽에서는 영토 동쪽 끝 지역을 'Hindush'라고 불렀다. 이 -sh 로 발음되는 접미사는 아르케메네스 제국에서 지역명을 붙일 때 자주 사용되었다고 본다. 이 말은 인더스 강을 가리키는 중요한 단서인데, 인도로 넘어간 사람들은 동일한 지역을 ‘Sindhu'라고 불렀다.

 

카스트 제도가 브라만 사제의 권위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착되는 지역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왕이 신탁을 받는 구조를 도입하게 된다면 브라만 계급은 엄청나게 위협을 받게 된다. 나 또한 최근까지 당시 인도 상황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아수라’가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을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다리우스 1세 같은 아케메네스 통치자가 아후라-마즈다를 최고신으로 모시고, 인도로 넘어간 인도아리안들은 그에 대한 반발을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 뿐이었다. 당시 이란조어에 등장하는 발음 변화(H > S) 외에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어려웠다.

 

그러나 제프리 새뮤얼 Geoffrey Samuel 의 저서를 통해 당시 중앙 인도-갠지스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즉, 브라만 - 반브라만 정치기구들의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이럴 때 브라만 사제계급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20세기 중반 소위 ‘구루 Guru’들이 횡령이나 성추행 같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2,5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베다 즉, 제식을 위해 준비된 말인 산스크리트어는 사제 계급이 전유하고 있었다. 경전은 문자기록을 하지 않았고, 초창기 베다는 문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미 전승된 ‘구전 문헌’들이다. 문헌을 통해 연구해보면, 인도아리안들의 강력한 신인 ‘인드라’ 또한 원래 아수라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수라는 ‘군주’ 같은 의미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것이 어느 순간 신과 인간 즉, 신과 다른 존재의 혼혈로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케메네스의 다리우스가 ‘아후라’ 마즈다의 권위를 통해 자신을 절대적인 통치자로 세우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중앙 인도-갠지스 지역의 브라만들은 ‘아수라’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신빙성있는 결론 도출이 아닐까 싶다.

 

아후라 마즈다(Ahura-Mazda)와 ‘지혜의 왕’ 통치 모델이

중앙 갠지스 지역에서 득세할 수 없도록

브라만 사제들은 ‘아수라(Asura … H > S)’를 악신으로 삼는 서사를 심는다

키루스 2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려보내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리우스 1세는 키루스 2세가 약속한 이스라엘 성전 재건과 관련한 재정적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다리우스가 마르둑이 아닌 아후라 마즈다를 내세운 통치를 편 것은 인도아대륙에 위치한 정치세력들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아후라 마즈다(Ahura-Mazda)와 ‘지혜의 왕’ 통치 모델이 중앙 갠지스 지역에서 득세할 수 없도록 브라만 사제들은 ‘아수라(Asura … H > S)’를 악신으로 삼는 서사를 심는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문물의 창구역할을 했던 인도 아대륙의 북부지역 즉,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역은 훗날 최초의 불상이 조각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통로들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또한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불교가 전해지는 길이 된다.

 

이렇듯, 일견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수메르, 아카드,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오늘날의 인도, 파키스탄 지역과 수용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우리 한반도는 물론 바다 건너 일본열도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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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 카자흐스탄 접경에 위치한 아르카임 유적:

<리그베다> 제식 흔적이 남아있는 인도-아리안 문화의 원류로 여겨지는 신타시타 문화 유적이다

신화적 서사는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진다 #3
차크라(चक्र, cakra)의 기원

차크라의 기원은 우랄 산맥 남부 ‘신타슈타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차크라(Sanskrit: चक्र, IAST: cakra)의 어원은 기원전 천 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기원전 2천 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더 정확한 뿌리를 알 수 있다. 차크라는 오늘날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말이다. 이 단어의 시작 그러니까 차크라의 기원은 우랄 산맥 남부 ‘신타슈타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러시아에 있는 아르카임 유적이 당시 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이것은 초기 인도-아리안 문화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리그베다의 제식과 유사한 제식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이 지역은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에게 ‘아리안’의 어원이 어원이 되는 말은 ‘노예’라는 의미와 연관된다. 잦은 전투전술의 발전을 불러왔고 고속 주행이 가능한 전차가 개발되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당시 무기는 ‘투창’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로 이 말이 끄는 고속 주행 이륜 전차바퀴에서 ‘차크라’라는 말이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가 남쪽으로 이주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은 물론, 시리아 지역에 미타니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 정착해 지배세력으로 부상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에 자리한 이란의 언어가 특이하게 셈어족이 아닌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북방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들의 자손들이었다. 그러나 이란에 정착되는 조로아스터교에는 그 이전 이 지역에서 발원한 문명인 아시리아나 바빌로니아 문화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이란과 오늘날의 파키스탄 지역을 지나 인도 아대륙까지 들어간다. 리그베다의 전승자들은 인도 북부에 국가’들’을 건국해나갔고 언어 또한 다양하게 분화했다. 인도 아대륙으로 들어간 이들은 이러한 문화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문화를 이어간다. 이란 지역 문화의 수용으로, 왕의 위대성, 상업과 농업, 주화중심의 화폐제도까지 받아들여지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인도-아리안 사제 계급의 이란지역 문화에 대한 적개심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수라’라는 표현이다.

 

고속주행 전차는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그 위력을 상실한다. 다양한 전술이 개발되고, 고속전차는 더 이상 전술 우위를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수 없게 된다. 인도 지역에서도 아쇼카 대왕 시대를 지날 때 즈음이면 이미 전차의 바퀴 ‘차크라’는 신화적으로 묘사된다. 힘과 압제의 수단은 전차의 위력이 전장에서 잊혀질 무렵이 되면 신비화 된다.

 

힘에 대한 고대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이 이후에 차크라의 신비화를 더 부추겼다. 이것은 ‘에너지’에 대한 몰이해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는 질량이고, 질량은 에너지다. 중력과 가속력은 등가원리로 설명된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에너지에 관해 엔트로피를 통한 간결한 설명을 하기도 한다.

차크라는 인도-이란조어의 ✽čekro- 에서 온 말이며, 이 말은 ‘바퀴’를 의미한다.

 

전차(Ṛta(ऋत) - chariot)

 

고대 이집트, 히타이트, 메소포타미아 여러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고대 세계의 강대국이라면 반드시 소유한 병기가 있었다.

바로 전차(Ṛta(ऋत) - chariot)다.

 

“서기전 2100 ~1800년경 우랄-토볼 초원에는 신타시타 유형의 벽을 둘러친 거주지가 20개 이상 세워졌다. 이들의 인상적인 요새화는 필수 자원이 있는 겨울 주거지로 사람과 가축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그곳을 지키기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방어벽과 망루 또한 필요했다. 습격이 고질적이었음에 틀림없다. 격화된 싸움은 전술적 혁신을 촉진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가벼운 전차의 발명이었다.”

(데이비드 앤서니, 2007)

 

헬싱키 대학의 인도학과 남아시아 연구 명예 교수 아스코 파폴라 또한 신타시타(신타슈타) 문화의 사람들의 이주가 리그베다를 만든 사람들과 매우 관계가 깊다고 본다.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말이 끄는 마차가 처음 나타난” 이주민들의 문화를 이곳으로 특정한다. 데이비드 앤서니 또한 “신타시타 장례 희생을 자세히 살펴보니 <리그베다>의 장례 의식과 놀라 만큼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언급한다.

 

"신타시타는 우랄 산맥 동남쪽에 집중되는 20개 이상의 요새화 한 거주지 중 하나인데, 즈다 노비치(G. B. Zdanovich)가 발굴한 아르카임 거주지는 침식으로 손상되지 않았으며, 이 거주지의 50~60개 구조물 중 27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비드 앤서니, 2007).

 

 

어원 연구를 통해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인도-이란 조어와 피노-우그리아어의 어원 비교를 통해 드러났다. 아리아인을 의미하는 단어는 선 사미어(Pre-Saami)에서 “남쪽 사람”을 의미하는 어근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우랄 남쪽에 아리아인들의 조상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인어, 페름어 지파에서는 같은 어근이 ‘노예’를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이는 인도-이란 공통조어 사용자들 즉, 아리아인들의 조상들과 피노-우그리아어 사용자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보여준다(데이비드 앤서니).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이곳에서 발굴되는 수많은 금속 생산 시설들과 요새화 한 마을의 구조들을 보며 많은 의문을 던진다. 또한 이 의문은 훗날 <리그베다>와 <아베스타>를 만든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타시타 문화의 흔적들은 리그베다는 물론 아베스타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우리는 두 문헌이 사실상 같은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타시타 문화의 유적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말을 희생 제식에 많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훗날 우파니샤드 등에 ‘마제(馬祭, 말 희생제)’와 같은 내용으로 이어지는 맥락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타시타 문화는 인류가 만든 최초의 전차 문화라는 견해가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대근동의 문화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여겨졌던 이륜전차의 등장은 그 연대가 신타시타 문화에서 조금 더 이르고, 교류나 거리 등의 관계를 고려할 때 초원 즉, 신타시타 문화에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차의 영향을 흡수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앤서니는 BC 2000년 이전인 신타시타, 포타포프카 유형 무덤 등에서 바퀴살 있는 바퀴가 찍은 자국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고속 주행을 위한 ‘수레’는 고대근동에서 BC 2700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BC 1800년 이전에는 ‘전차’가 발견되지 않는다. 즉, 전쟁을 위한 전차는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져 전투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데이비드 앤서니의 주장이다. 이렇게 전차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고대 근동으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기원전 1500년 경에는 시리아 북부 미타니 왕국의 전차전술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고, 중국에서 전차전술이 발견되는 것은 약 천 년이 지난 주나라 시대로 보고 있다.

 

아슈윈스(Aśvins)

 

‘이중신성’ 즉, ‘전차팀’인 아슈윈스는 관련된 제식에서 이들이 유럽과 연결되는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이후 그리스 신화에서도 차용되는 용어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어 등에서 발견되는 “말을 타는 신의 아들들”과 연관된다(아스코 파폴라). 이러한 이중신성은 이중왕권과 같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스코 파폴라는 아리안 이주자들이 중앙아시아 BMAC 지역에서 마주해야 했던 다양한 정치적, 실리적 합의도출과 같은 과정이 아슈윈스와 같은 서사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다.

아슈윈스는 리그베다에서도 묘사되는 신격화 된 ‘전차팀’을 말한다. 인드라와 같이 유명한 신의 이름은 페도로보 안드로보인(Fëdorovo Andronovan)들로부터 기원하는 문화에서 수용된 것으로 본다. 이들의 주신이 인드라였고, 이 이름은 우랄어 문화에서 하늘과 천둥의 신을 부르는 이름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진다(아스코 파폴라).

아스코 파폴라는 ‘아그니호뜨라’ 즉, 인도-아리안들의 가장 일반적인 제식(yajnã)가 아슈윈스에게 공물을 바치는 의식의 초기 변형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제식은 일몰과 일출에 불과 태양을 향해 바치는 제식이다. 아베스타에서는 미트라(Mithra)와 아수라(Asura)에게 바치는 제식이 동일하게 여겨진다. 어원적으로 보면 아수라(Asura)는 우랄어에서 유입된 초기 인도-아리아어에 포함되는 ‘외래어’다. 이는 ‘지배자’를 의미했고, asera- 에서 온 것으로 본다.

어원적으로 보면 아수라(Asura)는 우랄어에서 유입된

초기 인도-아리아어에 포함되는 ‘외래어’다.

이는 ‘지배자’를 의미했고, asera- 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들 전차수들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며 중앙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이란 지역은 물론 인도 북부까지 진입해 들어간다. 이들의 지배 영향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주신이 바빌론에서 비롯된 마르둑에서 아후라 마즈다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인도-아리안들은 전쟁과 이주를 하던 시기 힘의 상징이었던 '인드라'를 찾았지만, 인도 아대륙 북부에 정착하는 시기가 되면 인드라가 아닌 브라흐마, 비슈누 그리고 시바에게 절대자의 권한을 돌린다. 이러한 신들에 대한 사고방식이 변한다는 것은 정치제도에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베다의 흔적이 처음 발견되는 곳은 인도가 아니라 현재의 시리아 지역이다. 이곳에는 BC 1500경 미타니 왕국이 자리했던 곳으로 미타니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지역의 왕국 중 하나였다. 유목민 뿌리를 둔 이들은 이곳 외에도 고대 근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국가를 세워나간다. BC 850년 경에는 스스로를 ‘파사’라고 부르는 이들이 바빌로니아 지역에 국가를 세웠고, 바빌로니아 문화를 점차 밀어내고 ‘아후라 마즈다’를 섬기는 문화가 정착된다. 사실 베다의 방식으로 접근하자면 다신교적 접근이 맞는 것이나 이러한 방식은 제국의 이해와는 좀 맞지 않는다. 바빌로니아의 주신이었던 ‘마르둑’의 기능들은 ‘아후라 마즈다’에게로 옮겨갔고,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하는 힘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화의 수용과 재해석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된다.

바빌로니아의 주신이었던 ‘마르둑’의 기능들은 ‘아후라 마즈다’에게로 옮겨갔고,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하는 힘들은 조로아스터교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문화의 수용과 재해석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시 인도

제프리 새뮤얼 Geoffrey Samuel 은 고대 인도의 대표적 문헌들인 <마하바라타>, <라마야나>는 각각 ‘달’로 상징되는 왕국과 ‘태양’으로 상징되는 왕국에 연관된다고 보고 있다. ‘달’로 상징되는 쿠루-판찰라는 16대국 지역을 말한다. 제프리 새뮤얼은 <마하바라타>가 이곳의 문화와 연관된 대표성을 갖는 문헌으로 보고 있으며, 상징하는 천체는 '달'이라고 보는 것이다. 야즈냐와 같은 불의 제식은 일련의 실천 사상들로 대체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정착과 왕국의 시대가 되면서 상업과 농업이 정착되고, 주화를 사용하는 화폐제도가 도입된다.

 

그는 또한 <라마야나>는 ‘태양’으로 상징되는 중앙 갠지스 지역과 관계된다고 보고 있으며 이것이 불교와 자이니즘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본다. 실질적인 야즈냐 제식 자체보다 어떠한 실천 윤리들이 발전한다는 점에서 양쪽은 동일하다. 중국에 ‘송’이 건국될 때 유교윤리와 자연질서를 연결짓는 철학적 노력을 했던 것처럼, 인도에 정착한 유목민들이 정착 국가를 만들 때는 그들이 가져온 사실상 ‘제식 메뉴얼’인 <베다>라는 경전의 내용을 실천 윤리와 우주적 질서를 연결해 활용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륜전차의 바퀴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나?

아쇼카 대왕 시대를 전후로 ‘차크라’

즉, 전차의 바퀴는 이미 신화화 되었다.

인도의 국가 휘장, 요가의 용어, 불교를 통해 전해진 전륜성왕(轉輪聖王 - chakravarti, चक्रवर्तिन्) 등 이 이륜전차 바퀴의 신화는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현재 인도의 국가 휘장은 24개의 살이 있는 전차바퀴로 이것을 아쇼카의 바퀴(Ashoka Chakra)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고전문헌 <도덕경>에서도 “三十輻共一轂”과 같은 문장이 나오는데, 이는 30개의 살로 펼쳐지는 중국 고대의 전차바퀴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처럼 고대인들에게 전차바퀴 제조 기술은 경이로운 것이었으며, 전차가 가져온 전쟁에서의 우위는 그러한 경이감을 더해주었다.

 

‘왕국시대’ 즉, 국가의 시대란 매우 즉물적이고 현실적이던 상황에서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하는 측면이 많아진다. 전륜성왕(轉輪聖王 - chakravarti, चक्रवर्तिन्)이라는 표현도 ‘아쇼카 대왕’과 함께 연결되는데, 1세기 경의 조각들에는 아쇼카 대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이 전차바퀴와 함께 묘사되는 모습이 등장한다. 즉, 아쇼카 대왕 시대를 전후로 ‘차크라’ 즉, 전차의 바퀴는 이미 신화화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술의 발전과 함께 차크라는 점점 더 신화화 된다. 로마 군대가 서방세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힘은 이미 전차의 우위가 뒤집어진 시대다. 전차전은 전술의 일부는 되었지만 더 이상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은 될 수 없었다. 기마술이 일반화되고, 전술은 다양해졌다. 아주 옛날에는 말을 따라 움직이면 다른 가축의 먹이가 되는 식물들을 함께 찾을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국가의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의미도 효율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선정착민들에게 이륜전차의 바퀴 ‘차크라’는 정복자들의 힘의 상징이었으며, 지배자들의 상징이었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인도아대륙에서도 마찬가지었다. 힘과 차크라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된 것은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볼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시대는 변했고, 전차술은 낡은 전술이 되었으며, 그렇게 아리안들의 이륜전차는 힘을 잃는다. 그러나 힘의 상징이었던 이륜전차의 위용은 남아 <마하바라타>와 같은 문헌은 물론, 다양한 유형으로 전해진다.

 

신화적 서사를 통해 차크라는 그렇게 신비화된다.

 

 

에너지에 대한 오해

 

**** 인도의 실재론은 “정합적인 인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응해서

무엇인가가 반드시 외계에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

(가츠라 쇼류, 고시마 기요타카)

때문에 이들은 어떠한 활력이나 힘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사실 인도-유럽어의 사고방식에서는 그리 드문 것이 아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도 실상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과거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이 '우리의 세상은 신들의 꿈이 아닐까?'라고 상상한 것처럼, 오늘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은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에너지'라는 개념도 그들의 사고방식에 구겨 넣는 실수를 범했다.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

(카를로 로벨리)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에너지를 매우 단순하게 기술한다.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라고 말이다. 그는 "낮은 엔트로피가 없으면 에너지는 균일한 열로 약해지고, 세상은 열평형 상태에서 잠들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분도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사물로 보는 것은 에너지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다. 질량에 의해 공간이 휘어지면 중력이라는 힘의 형태로 인식된다. 가속도/ 중력은 등가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에너지란 다른 차원, 다른 우주에서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이 공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에 대한 정의와 특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편리하게 언어만 끌어다 쓰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날 인도 신비주의 신봉자들이 말하는

'차크라(Sanskrit: चक्र, IAST: cakra)’는 역사언어학적 무지와

물리학과 에너지 개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 신화의 세계가 말해주는 것들

나는 우리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과 더불어 그렇게 받아들여 만들어지는 ‘서사’가 어떻게 생각보다 넓은 범위와 경로를 통해 오늘 우리와 관계하고 있는지를 배워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우리는 오히려 근거가 매우 미약한 종교적 주장이나 철학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행위를 통해 너무나 오랜 세월 의미 없이 한 곳을 맴돈 것은 아니었을까?

 

반대로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명확하게 알아가는 흔적들은 우리 몸의 역사 그러니까 생물학적 역사의 이해가 깊어갈수록, 하늘과 땅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저 밖 우주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분명해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우리 인류는 여전히 손에 잡히는 이 세계를 부정하고 더 상위의 혹은 더 본질적인 세계가 있다는 생각과 그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고대에는 세계를 본질의 그림자로 보았다면, 이제는 더 상위 존재들이 만들어 놓은 정교한 시뮬레이션처럼 여기는 것이 한 예다.

​𝐈​𝐈𝐈

"Ontologically, traditional images signify phenomena whereas technical images signify concepts."

- Vilém Flusser

(존재론적 측면에서 전통적인 그림은 현상을 의미하지만 기술적 영상은 개념을 의미한다)

극단의 극단적 분리

인간은 명제적 소통을 시작하며 세상 그 자체와 점차 멀어졌다. 우리의 손은 손 그 자체가 아닌 나무의 열매를 가리키고, 다양한 신비주의적 상징이 되기도 하였으며,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음성을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해졌을 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더 이상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되었다. ‘명제’의 성립을 위해서는 표현에 사용되는 모든 것에 의미가 주어진다.

우리의 손은 손 그 자체가 아닌 나무의 열매를 가리키고,

다양한 신비주의적 상징이 되기도 하였으며,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리는 동굴벽화와 신상와 영웅들의 조각, 각종 회화를 거쳐 상징과 개념 자체를 이미지화 하는 시대로 나아갔다. 19세기 중반, 현대적 의미의 거울과 사진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물론 세상이 생생하게 반영된 상(image)을 보고 또한 기록하는 시대를 맞이한다. 일견 ‘진보’를 표방하는 분리에서 분리로의 이행은 점차 우리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세상으로부터 더 멀어지도록 만든다.

인간이 예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째서 예술이 인간을 정의하는 활동이 되는가?

그것은 사실과 개념, 현상과 해석을 분리하는 것이

인간 지능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를 다른 종(species)들과 확연히 구분해주는 특징이다.

 

나는 오늘날의 사진이 크게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며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다. 전자의 경우 코드나 지표의 경향은 약해지지만 후자의 경우 이것이 매우 강해진다. 때문에 이후의 이야기는 거의 후자의 경우에 집중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웹 상에서 널리 소통되는 사진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의 산물이다. 자기표현이라 할 수 있는 셀피(selfie)를 비롯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의 표현 등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사진 속에서도 다양한 사진적 코드들이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소통그룹, 네트워크 별로 자신들이 원하는 미적 가치에 근거한 자신의 사진을 적극적으로 유통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갸름한 턱, 군살 없는 몸, 큰 눈과 같은 것이 있다. 또한 음식 사진 중심의 콘텐츠 생산은 오늘날 우리가 과연 문명사회에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

 

불가항력적인 굶주림이 상당히 사라진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많은 음식 사진의 유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먹는다는 것은 자신을 보존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필연적으로 배변이라는 결과를 낳는데, 이러한 것은 인간 공동체에서 시각화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간이 유기물이 부패하는 냄새나 배설물의 냄새에 거부감을 강하게 갖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생존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누적적 문화를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 비위생적 환경이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여전히 생명유지의 본능과 관련해 ‘먹는다’는 행위가 강화되는 경향도 보여주는데, 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날 유통되는 ‘음식’ 관련 콘텐츠가 가장 큰 증거라고 여겨진다. 맛이 있다는 것은 많이 먹는 것을 유도하는 현상이다.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 가량이지만 열량 소비는 20%에 이른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문화에서 ‘단맛’이 선호되는 경향과 이러한 신체조건에는 상관관계가 깊을 것이다. 뇌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진은 시각코드들이 각각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갸름한 턱과 큰 눈 그리고 군살없는 몸매가 현재 우리 사회의 미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처럼, 이것은 사회성에 부합하려는 행위이며 거기에 맞춘 시각코드의 강조인 셈이다.

 

사진은 이렇게 있는 사실로부터 개념을 도출한다. 이것은 의사소통 행위의 근간을 이루는데, 사진에 오면 이러한 ‘격리’ 행위는 점차 극단화 되어간다. 예를들어, 시선을 잡는 사진들의 경향은 대부분이 어느 정도 이상의 생소함을 가지고 있음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언어를 그 도구로 하는 문학에서도 거의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 즉, 개념을 표현하는 사진은 언어를 이용하는 문학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두 가지는 매우 다른 매체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개념’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두 분야는 매우 밀접한 예술이다. 때문에 문학의 ‘낯설게 하기’와 사진의 피사체 격리는 그 근간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우리가 사실과 개념을 분리하는 기본적인 언어 활동을 이용해 분리된 것을 한 번 혹은 그 이상으로 더 분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사진예술에서 매우 주요한 표현이 되고, 문학에서 매우 주요한 방법이 된다.

 

나는 사진이 갖는 이러한 특징을 통해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구성했음을 밝혀야 할 듯 싶다. 사실 각 작품별로 표제어 혹은 키워드(keyword)가 될 수 있는 개념이나 표현이 매우 두드러진다. 때문에 나는 이번 작품들은 매우 쉬운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쉽게 사용하는 말이 그 어원을 조사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이제 알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이 나의 작품들을 어렵게 보이도록 만드는 요인인데, 실상은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것이므로 이 작품들은 어렵게 치부될 종류의 것들은 아닌 셈이다. 많은 현대미술 작품들이 중심 개념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복합적, 복층적인 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아 오히려 매우 복잡한 해석의 과정을 겪더라도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작품들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이해하면 매우 쉽게 풀린다.

사진을 하기 위하여

사진과 회화 사이의 경계는 이미 시작부터 모호한 지점이 많았다. 19세기 사진가 구스타브 레일란더(Oscar Gustave Rejlander)의 작품들은 르네상스적 양식을 사진으로 구현해내기 위한 복잡한 인화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 합성사진이다. ‘예술사진’이란 초창기부터 애초에 합성기법을 시도하며 형성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를 광학적 기술을 통해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사고방식은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이후에 정착된 것이며, 이후 F/64 그룹과 같이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진가들에 의해 정착되는 방식이다.

 

디지털 장비에 의한 사진이 주류가 되고, 회화(painting)조차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요즘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미지로 수용되는 결정적 순간이 사람의 해석에 의한 것이냐 광학기술에 의한 것이냐를 통해 그 모호한 경계를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진가들이 ‘회화’처럼 보이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초창기 예술사진가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사진가들 가운데에도 우리 전통 회화와 같은 느낌의 표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 경우가 종종 있다. 롤랑 바르트는 물론 존 버거와 같은 사람들이 잘 설명한대로, 그림은 세부사항 하나하나가 그리는 사람의 판단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 사진은 상(image)의 구현은 기술에 근거하며, 상에 맺힌 사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만들어지는 것이 매우 단순하게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광학기술에 의한 시각예술의 구현은 다양한 수식과 기술개념들의 집합체다. 그리는 순간에 시각화 요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어도 구현 자체는 매우 복잡한 개념 즉, 사회성의 산물인 것이다.

플라톤 다면체(Platonic Solid)는 이러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표현에 올렸다. 디지털 파일이 사물이 되면, 그 사물을 다시 이미지센서를 통해 디지털 사진 즉, 파일로 만든다. 그렇게 디지털 사진파일은 다시 피그먼트 프린팅 과정을 거쳐 사물성을 갖추는 프로세스다. 

 

지가 베르토프 Dziga Vertov 의 “나는 기계 눈이다. 나는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계다”라는 선언은 영상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명한 말이다. 수면(the surface), 지평선(Horizon 1 & 2)에서는 우리가 늘상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광학기계에 의한 시각화를 통해 일상경험 속의 '본다'는 것과 광학적으로 본다는 것의 차이를 담는다. 

그리고 전시의 주제작품 세 점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한 점이 공통된다.

일본의 학자 가츠라 쇼류는 불교의 희론 戱論 을 ‘언어적 다원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런 식으로 업과 번뇌가 개념적 사유에서 일어난다는 현대적 표현을 유도한다. 나의 작품 활동의 근간이 되는 생각의 한 축이 바로 이러한 개념적 사유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역사적 맥락을 통해 오늘날 종교니 수행이니 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더 정확히는 ‘오용되는’ 개념의 원뜻을 풀어 신비화의 덧칠을 벗겨내는 것이다. 그러나 영상적, 그러니까 사진에서의 접근은 바로 지가 베르토프가 선언했던 표현과 바라본다는 인간적 행위의 공존을 의미한다.

사진을 하기 위하여

사진과 회화 사이의 경계는 이미 시작부터 모호한 지점이 많았다. 19세기 사진가 구스타브 레일란더(Oscar Gustave Rejlander)의 작품들은 르네상스적 양식을 사진으로 구현해내기 위한 복잡한 인화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 합성사진이다. ‘예술사진’이란 초창기부터 애초에 합성기법을 시도하며 형성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를 광학적 기술을 통해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사고방식은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이후에 정착된 것이며, 이후 F/64 그룹과 같이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진가들에 의해 정착되는 방식이다.

 

디지털 장비에 의한 사진이 주류가 되고, 회화(painting)조차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요즘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미지로 수용되는 결정적 순간이 사람의 해석에 의한 것이냐 광학기술에 의한 것이냐를 통해 그 모호한 경계를 찾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진가들이 ‘회화’처럼 보이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초창기 예술사진가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사진가들 가운데에도 우리 전통 회화와 같은 느낌의 표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 경우가 종종 있다. 롤랑 바르트는 물론 존 버거와 같은 사람들이 잘 설명한대로, 그림은 세부사항 하나하나가 그리는 사람의 판단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 사진은 상(image)의 구현은 기술에 근거하며, 상에 맺힌 사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만들어지는 것이 매우 단순하게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광학기술에 의한 시각예술의 구현은 다양한 수식과 기술개념들의 집합체다. 그리는 순간에 시각화 요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어도 구현 자체는 매우 복잡한 개념 즉, 사회성의 산물인 것이다.

플라톤 다면체(Platonic Solid)는 이러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표현에 올렸다. 디지털 파일이 사물이 되면, 그 사물을 다시 이미지센서를 통해 디지털 사진 즉, 파일로 만든다. 그렇게 디지털 사진파일은 다시 피그먼트 프린팅 과정을 거쳐 사물성을 갖추는 프로세스다. 

 

지가 베르토프 Dziga Vertov 의 “나는 기계 눈이다. 나는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계다”라는 선언은 영상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명한 말이다. 수면(the surface), 지평선(Horizon 1 & 2)에서는 우리가 늘상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광학기계에 의한 시각화를 통해 일상경험 속의 '본다'는 것과 광학적으로 본다는 것의 차이를 담는다. 

그리고 전시의 주제작품 세 점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한 점이 공통된다.

일본의 학자 가츠라 쇼류는 불교의 희론 戱論 을 ‘언어적 다원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런 식으로 업과 번뇌가 개념적 사유에서 일어난다는 현대적 표현을 유도한다. 나의 작품 활동의 근간이 되는 생각의 한 축이 바로 이러한 개념적 사유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역사적 맥락을 통해 오늘날 종교니 수행이니 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더 정확히는 ‘오용되는’ 개념의 원뜻을 풀어 신비화의 덧칠을 벗겨내는 것이다. 그러나 영상적, 그러니까 사진에서의 접근은 바로 지가 베르토프가 선언했던 표현과 바라본다는 인간적 행위의 공존을 의미한다.

플라톤 다면체(Platonic Solid)

원래는 2019년에 전시한 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의 일부다. 다면체 탐구는 3D 프린터로 조형한 조형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업은 <찬도그야 우파니샤드>의 내용들을 중심으로 노트를 적어 나가며 작업했는데, 여기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란 바로 모든 것은 하나이며, 하나에서 모든 것이 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되지 않아 이 생각이 매력적이기는 하나 적절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1) 이는 흙덩어리 하나를 통해서 흙으로 된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2) 변형은 언어에 의해서 야기되는 이름이다.

(3) 바로 흙이란 것이 실재다.

 

KHANDOGYA UPANISHAD,

SIXTH PRAPATHAKA, FIRST KHANDA

 

사진연작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는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인 3D 프린팅과 디지털 사진을 통해 이러한 실재(the truth)와 변형(difference)에 관해 고민한다. '변형'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엄연한 현상계 속의 사실이며, 실재는 변형을 통해 자신의 다채로운 모습을 관철시킨다.  이것은 처음부터 인도-유럽어라는 언어적 기틀을 기반으로 고대 그리스와 고대 인도 북방 정착민들의 철학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레꼬-로만 문화 주류에 대한 반발감이 한몫 했을 것인데, 실상 구조적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것은 신비주의로, 그리스의 것은 철학과 학문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다면체 탐구>를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현실의 조건은 한정성에 대한 수용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가상(여기서는 디지털 시뮬레이션)이나 현실(소위 말하는 아날로그)이나 기본적으로 전자(electron)의 활동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작업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STL 파일이라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3D 프린팅을 위한 파일이 3D 프린터라는 기기를 통해서 ‘사물화’되며, 그렇게 사물화된 대상물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다시 ‘디지털 파일’로 수용되었다가, 전시장에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 다시 ‘피그먼트 프린팅’이라는 과정을 거쳐 액자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데이터 기록은 SSD 혹은 플래시 드라이브와 같은 매체를 주로 사용하는 오늘날에는 거의 전자(electron)의 활동을 기본으로 on/ off 신호를 만드는데 이것이 디지털 정보를 존재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라면, 사물도 마찬가지로 아원자(sub-atomic) 입자들의 활동과 그렇게 형성되는 원자(atom)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면, 디지털 시뮬레이션이나 우리가 오감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나 아원자 입자(sub-atomic particles)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어차피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경계는 정보의 양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감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해서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고 한들 우리에게 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심오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Screen Shot 2021-04-11 at 22.11.19.png

수면(the Surface) 그리고 지평선(Horizon 1&2)

이 세 작품은 2019년 인천이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해에 열린 사진전에 초청된 작품 가운데 일부다. 촬영은 2018년 초겨울에 진행되었는데, 이렇게 보면 작업 자체는 <다면체 탐구>보다 빠르다. 그러나 이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을 방향이 없어서 촬영만 해두고 그냥 둔 상태로 1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2019년 이화여대 리더십 개발원, 헨리-루스 재단이 주최하는 ELIS의 일환으로 <다면체 탐구>를 진행하고 나서 약 3개월 만에 ‘2019 인천동아시아문화도시 사진영상페스티벌’ 대표작가전에 전시할 작품을 구상해야 했는데, 이때 <다면체 탐구>의 주제로 잡았던 ‘모든 것이 하나이며, 하나는 모든 것이 된다’는 주제를 뒤집는다. 그때 왜 이 주제가 언뜻 심오해 보이지만 실상은 엉터리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이 하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된다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 어렴풋이 이해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일자 그때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빅뱅’이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초기 우주의 ‘상태’다. 우리의 시간인식 방법과 그 측정방식에 근거해서 볼 때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대폭발’이라는 말로 기술할 수 밖에 없지만, 바로 급팽창이란 먼 옛날 우주 전반의 상태였지 어떠한 특정 사건을 지칭한다고 말하면 심각한 왜곡이 된다는 것이다.

자연의 실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OO처럼 보인다’는 것이지

‘OO이다’가 아니다.

그러니까 자연의 실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OO처럼 보인다’는 것이지 ‘OO이다’가 아니다. 내가 이 문제를 모두 푼다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에 집중해보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태양계 항성인 ‘태양’과 우리의 감각기관, 특별히 ‘눈’에 관한 것으로 정리된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눈은 시신경 앞으로 수많은 혈관이 지나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구상 동물들이 코가 위에 있고 입이 아래에 있는 것과 이유가 비슷하다. 지구상 생물의 근간이 바다에 있기 때문에 생물들은 ‘물’이라는 환경을 기본으로 두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태양 복사의 특징이 우리가 ‘가시광선’이라고 부르는 영역에 최고점(peak)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태양 에너지의 가장 강한 영역과 반응하는 것이 지구상 생명체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존 방식인 것이다. 실상은 여기에 지구상 생명체 대부분의 존재의 근간이 있다. 빛, 이산화탄소, 당을 기본으로 광합성을 하여 산소분자를 만드는 과정이 이 파장대에서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 나아가면 식물이 녹색인 이유도 이렇게 설명이 가능해지는데, 태양빛 가운데 에너지 효율이 높은 두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효율이 가장 낮은 녹색을 띄는 파장을 반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을 근거로 살펴보면, 현재 우리 만큼 복잡한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이러한 요소들을 기본으로 만들어진다. 태양빛이 산소분자를 뿜어내는 광합성에 적합한지, 해당 행성과의 거리는 적합한지, 신기하게도 살짝 기울어진 자전축에 의해 일어나는 안정적인 온도 유지는 가능한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매우 크게 반영하여 우리에게 가장 밀접한 것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본다’는 행위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각기관’에 내재되어 온 것이다.

태양빛이 산소분자를 뿜어내는 광합성에 적합한지,

해당 행성과의 거리는 적합한지,

신기하게도 살짝 기울어진 자전축에 의해 일어나는

안정적인 온도 유지는 가능한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

 

내가 볼 때 우리 자신은 어떠한 현재진행형의 사태다. 이것이 내가 어떠한 관심을 가졌던 지금까지의 관심들을 큰 폭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였다. <우파니샤드>는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아트만이 보는 것’이라고 접근하며, 불교의 초기 승단에서도 ‘현재’라는 분립된 시간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순간성’ 즉, ‘찰나’를 도입했다. 우리의 언어적 인식이 기능과 기관을 분리해서 생각하도록 만들고, 시간을 세분화하여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언어적 인식과 개념화의 틀이 ‘인류’라는 종의 생물변화 과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하고 그것이 ‘진리’를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한 방향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해의 문제들을 ‘지평선’으로 시각화했다. 우리가 행성의 곡률로 인해 지평선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공간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지평선에 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평선이 발생하는 원인을 이해해도 지평선에 닿을 수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현실과 한계의 수용이라는 상징성을 담았다. 바로 그 이해가 지평선의 신비를 더욱 강화함은 물론, 그 신비감이 사라지는 순간도 아름다움이 되어 수용될 수 있다는 이해로 변화해 나가며 우리 자신의 한계가 실상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로 변해 갈 때 고요하고 차분한 수용의 가능성 또한 열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를 떠올렸다.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

전시의 타이틀이다. 본래는 지평선과 함께 걸렸던 6점을 포함한 8점의 연작의 ‘부제 subtitle’였다. 당시 연작의 주제가 앞서서 적어본 우리의 ‘현재 상태’까지의 말 그대로 40억여년의 세월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나는 창세기 1장의 문장을 가져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를 제목으로 붙이고, 부제를 <응시>로 했던 것이다. 의사소통에 실수가 있었는지, 전시를 주최한 2019 인천동아시아 사진미디어 페스티벌 운영위원회에서는 <응시>를 제목으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를 부제로 적었다. 당시 ‘응시’는 gazing 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말 그대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느낌도 있었던 셈인데, 2020년에 들어오며 이것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하나는 사진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에 대한 고민이었다. 흔히 말하는 ‘순간’의 미학이다. 사실 사진이 짧은 ‘순간’을 잡아낼 수 있게 된 것은 에르마녹스(Ermanox)와 라이카(Leica)의 공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 인물 사진 속 인물들이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까닭도 노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처음 사진이란 ‘순간포착’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상황은 많이 바뀌었지만 순간이 아닌 시간을 담는 것이 사진의 기본적인 특징이라 한다면, 나는 지금의 장비들을 이용해 그러한 작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지평선> 두 작품은 각각 4분 노출로 촬영된 사진들이다. 흔히 말하는 ‘장노출 long exposure’ 사진인데, 소위 이 장노출이라는 것도 기준에 따라 표현이 다른 것이다. 요즘 소위 ‘풀프레임 full frame’이라는 표현이 많이 퍼져있는데, 이 또한 35mm 필름을 기준으로 했을 때를 말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진 포맷에는 4x5도 있고, 8x10도 있다. 말 그대로 만들기 나름이다. 따라서 ‘풀 프레임’이라는 표현은 매우 상대적인 표현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있어서는 35mm 필름 포맷을 말한다. 이렇듯, ‘용어 jargon’들 조차 사회성의 산물이다. 기술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사진계 뿐만이 아니다. 언어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등장했는데, 이러한 관점들은 내 작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경험하는 착시 현상과 고대근동 그리고 초기 불교승단의 개념을 이용해 3점의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특히 착시에 관한 문제는 작업을 하던 중에 깨닫고 실행한 경우인데, 두 노출의 배치를 고민하던 중 동일한 노출이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배치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배치를 완성해 놓고나서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는, 이러한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은 우리 뇌가 경험을 바탕으로 감각기관이 수용한 내용을 조정해버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지평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세상 혹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조금 다른 관점을 통해 ‘심도 있게’ 또한 ‘다각도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점부터가 나의 의문을 풀고, 작품을 구상해 나가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온이 모두 공하다”(照見五蘊皆空)라고 말할 때 우리가 한역이나 혹은 범본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과 고대 그리스를 알고 있어야 하듯이, 불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그베다>와 인도-유럽조어 Proto Indo-European language 화자들 특히, 스스로를 아리안이라 불렀던 이들의 이주경로 등을 알고 보아야 한다.

 

(<리그베다>와 <아베스타>) "이 두 언어의 조상인 - 문서로 남지 않은 - 부모어, 즉 공통의 인도•이란어는 서기전 1500년 훨씬 이전에 존재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이미 고 인도어가 북시리아의 미탄니 문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 <리그베다>와 <아베스타>는 모두 공통 부모어인 인도•이란어 정체성의 본질이 언어적인 동시에 의례적인 것이며, 종족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만일 어떤 개인이 올바른 신에게 올바른 형식의 전통적 찬가와 시가를 써서 올바른 방법으로 희생을 올리면 그가 바로 아리안이다.”(데이비드 앤서니(David Anthony), 2007) 그리고 이러한 찬가는 본래 제사(यज्ञ; yajña)라고 불리웠던 제식을 위한 것이었다. 리그베다에서는 야즈냐, 아베스타에서는 야스나로 발음된다. 찬가와 불을 중심으로 하는 제식이다. 이 제식을 위해 사용된 찬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리그베다>와 <아베스타>라는 경전의 원형으로, 이 찬가들은 신(神)들에게 바쳐지는 공물(貢物, homage)이었다. 특별히 <리그베다>의 경우 훗날 우파니샤드는 물론 불교, 자이나교 개념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오늘날에는 '요가'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파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무아(無我)를 이해할 때도 고대 인도인들 그러니까 북방계 아리안 이주자들의 사고방식과 이어지는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슈라마나(沙門) 운동이라는 것은 바로 아리안 이주자들의 정착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슈라마나들이 활동한 결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인 두 사상이 바로 ‘불교’와 ‘자이나교’다.

 

두 사상의 체계는 유사한 부분이 너무나 많이 일부에서는 두 사상을 혼동하는 경우까지도 생긴다. ‘베다’와 매우 다른 성격의 유형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살생(不殺生, ahiṃsā)이다. 이것의 기원에 관해 ‘베다’ 내부에서의 반성으로 볼 것인지, 불교와 자이나교의 산물로 볼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는 것이며, 또한 슈라마나들의 움직임은 ‘베다’와의 단절의 관점에서 보면 정확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문명이라는 것은 문화의 누적적 특징에서 비롯된다. 인간 외의 동물들에게서도 문화적 특징은 발견되지만 그것이 우리처럼 누적적이지 못하다는 점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우리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논함에 있어서 그러한 변화와 누적은 불가분 관계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 또한 내가 일관되게 가지고 가는 관점 중 하나다.

 

무아(無我)를 역사적 맥락에서 독립시켜 불교만의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면 오늘날 흔히 일어나는 문제처럼 매우 신비주의적이 되거나 잘 해야 선정(禪定)적 접근이 가능할 뿐이다. ‘베다’ 전통과 그들의 논리학과 전승을 바탕으로 이 무아를 바라보면 의외로 매우 잘 보이게 될 때가 있다. 이러한 전통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문제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의문만 깊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불경이 수용하는 수많은 ‘베다’의 전통과 그 이전 사상들을 통해서도 그 맥락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은 초기경전의 연구가 깊어진 오늘날에 와서 더욱 분명하게 이해되어가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금강경>의 금강(金剛)에 관한 어원 분석을 앞서서 제시했다. 이는 피노-우랄어 계통의 언어와 인도-유럽어의 교류에서 발전하였고, 인도-유럽어권 신화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공유된다는 것 또한 제시했다. 마찬가지다. <찬도그야 우파니샤드>에는 “그대가 만일 응창에 따라 깃든 신을 모르고 노래한다면 그대의 머리는 반드시 떨어질 것이다”라는 경고가 등장한다. 이와 매우 비슷한 맥락의 표현이 팔리어 불경인 <상윳타 니까야>에 등장한다. “누군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 볼 수 없으면서 ‘나는 본다’고 한다면 그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디가 니까야>에서는 “여래가 세 번이나 질문을 했는데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머리가 일곱 조각 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이렇게 ‘머리를 박살내는 전통’은 원래 야즈냐 제식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즉, 제사에 쓰일 ‘언어’를 만들어가는 ‘리시’들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리시’들이 각종 개념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의미와 당위성 같은 것들을 제대로 설명하고 방어하지 못한다면 머리를 쳐서 죽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전통이 <우파니샤드>는 물론 초기 불경에서도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아(無我)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이러한 제식 전통이 경전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안 ‘아(我, Ātman)’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는 앞서서 ‘영혼’이라는 문제를 논할 때 구약과 신약의 언어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한역을 통해서만 이 개념을 접한 한국어 화자의 접근은 그 본래 의미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아(我, Ātman)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단순한 정의를 따르기보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어떻게, 어떠한 맥락에서, 무엇을 위해 설명되고 사용되었는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이러한 접근을 단순화 시키기 위해서 ‘본다’는 행위에 집중해 본 것이다.

 

이를테면 <케냐 우파니샤드>에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눈들이 본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는 <우파니샤드> 전반에 나오는, 또한 고대 인도 논리학의 주류를 이루는 방식의 근간이기도 하다. 즉, ‘본다’는 것은 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여금 보도록 하는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곧 현상과 본질을 나누어서 설명하는 방식의 전형인데, 나는 오늘날 인류가 이룬 지식의 누적을 통해 이러한 사고방식이 되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즉, 우리가 본다는 행위의 기본적인 근간은 눈이나 혹은 눈의 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며, 우리 시각기관이 이러한 기능을 갖추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을 통한 발생과정과 조정의 결과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태양 에너지의 파장은 ‘당’ 성분과 이산화탄소를 합성하는 에너지를 빛을 통해 취하고 그것을 통해 산소분자를 배출하는 지구상 생명체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후 산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발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이 파장의 특징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기관이 발달하게 되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진 ‘눈’으로 이어진다. 눈은 시신경 앞으로 혈관이 지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뇌는 기본적으로 시신경 앞에 있는 혈관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안구의 운동을 꾸준히 해야하며, 뇌는 이것을 고려해서 상을 받아들인다. 시신경은 정보를 1/10정도로 줄여서 전달하고, 뇌는 이것을 1/3000 정도만 골라서 수용한다. ‘눈’을 형성하기 위한, ‘보기 위한’ 어떠한 근본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매우 ‘비과학적인 믿음’인 것이다. 즉, 아(我)라는 것은 실존한다기 보다는 언어적 인식에 의한 ‘착시’ 현상이며 그저 사람들의 바람이었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베다’나 ‘자이나교’가 아닌 ‘불교’에 관심을 두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고타마 싯달타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적 관측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에 언어적 인식 구조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만가지 생각과 인식의 불완전성

나는 고대 근동, 범위로는 이집트와 히타이트, 레바논과 이스라엘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문명들의 역사들은 인도는 물론 우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을 앞서서 제시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언어 속에 이렇듯 장구한 세월이 묻어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마음, 우리 인식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시각화해야 할까?

나는 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와

고대 근동 수비학에서 모티프(motif)를 얻은 셈이다.

 

오만가지 생각이란 찰나(刹那)들의 연속된 연결에서 비롯된다. 사실 초기경전을 살펴 볼 때 현상들을 존재론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존재론적 본질을 확정하려는 그때까지 불교의 노력을 사실상 부정해버리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비달마 학자들은 어떠한 형이상학적 시도를 시작했고 상좌부 불교는 이원론적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근본적인 실체 개념, 순간성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고 어떠한 연속체를 바라보는 처음의 관점을 잃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서서 제시했지만 이것은 인간의 언어적 인식이 갖는, 말하자면 일종의 고질병이다. 더군다나 인도-유럽어족 문명에서 이것을 극복하기란 너무나 쉽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나는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데, 인도-유럽어족 문명에서 인도-유럽어족 언어인 ‘마가다어’(추정)를 모어로 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것을 극복할 사상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전승과정, 정리하자면 마가다어로 말해진 언어는 팔리어로 전승되었고, 인도의 쿠샨왕조 시대가 되면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어 전승된다. 나는 이 과정을 주도해야 했던 승단에 의해 당연히 개념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싯달타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비판 한 가지가 바로 가르침을 체계화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빈드 찬드라 판데’의 연구에 따르면 “붓다는 자신의 설법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관습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며 “베다 방식의 진언을 금지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지역의 고유한 언어로 자신의 가르침이 자율적으로 퍼지는 것을 원했으며, 학문적 언어로 고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과 이어진다. ‘아소카 왕’의 경우 이러한 경향을 잘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러한 방식을 따랐으나 이보다 후대인 쿠샨 왕조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쿠샨 왕조는 박트리아의 그리스 문화를 대거 수용한 문명이었고, 그리스 문화적 영향이 처음 간다라 지역에서 불상을 조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고타마 싯달타 즉, 붓다가 금지한 “베다 방식의 진언”이란 챤다스(chandas)를 의미한다. 이것은 <베다>의 운율학이다.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베다>는 본래 기록물이 존재하는 문헌이 아니라 암송구전되는 문헌이었다는 점이다. 이 문화가 발현한 것으로 보이는 ‘신타시타 문화’ 지역인 오늘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접경 지역 이를테면 ‘아르카임’ 같은 지역에는 <리그베다> 제식의 원형으로 보이는 제식의 흔적을 발굴할 수 있다고 한다.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시대적 간극과 문자가 없다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간직하고 머나먼 거리를 이주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사제 즉, 브라흐만들의 특원 의식의 뿌리가 되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결국 ‘붓다’의 바람이라는 것은 자신의 가르침이 어떠한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의 바람이 생생하던 시기에는 그의 관용적 태도로 인해 다양한 학파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이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 Madhyamaka Kārikā)>이 등장하기 전까지 인도-유러피안 특유의 개념 증대는 엄청나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나의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오만가지 생각’의 시간인 11분 7초는 일종의 해석학적 오류의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표현에 이용한 것이다. 바로 이 과정 전반이 우리 인식의 불완전성을 표현하는 총체적 과정인 셈이다.

불완전성과 불완전성

마침내 고대근동 수비학에 근거한 66을 가져와 작품의 틀을 완성하면 이 전시의 작품들이 마무리 된다. 고대근동 문명이란 인류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문명 지역들을 일컫는다. 우리가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현상과 본질의 이분법은 계속해서 제시해 온 것처럼 언어적 인식에 의한 분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인도-유럽어족 문명의 전형적인 문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나 인도-아리안 문명에서는 흔히 등장하는 이러한 불연속적 분할은 셈어족 문명인 고대근동에서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다.

‘야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는 자연과 초자연이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

우주의 인과 자체를 야훼의 권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계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경우 우주론을 그려 나갈 때 그것들을 기능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점이었다. 즉, 나타나는 것의 ‘본질’ 영역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현상의 인과는 자연법칙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권리에서 비롯된다는 사고방식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이것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논하며 자연/초자연의 이분법적 설명을 하는 것에 대한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의 비판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신(神)’이 가리키는 ‘야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는 자연과 초자연이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 우주의 인과 자체를 야훼의 권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계다.

 

기본적으로 고대 근동인들에게 '세계'는 신들의 활동이었다. 고대 수메르인들과 이집트인들은 정교한 달력을 만들어 냈고, 태음력과 같은 계산법을 통해 1년을 계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나타남의 근간은 신들의 활동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이러한 천체는 물론 날짜들에도 신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7 & 12: 수메르인들에게 7은 기묘한 숫자였고,

기원전 26세기경부터는 7의 신비화가 반영된 문헌들이 발견된다.

7은 고대 수메르 시대에서부터 상징적인 숫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매우 신비로운 숫자였다. 고대 수메르는 60진법을 사용했던 문명으로, 60은 12개의 숫자를 인수로 갖는다. 재미있게도 1, 2, 3, 4, 5, 6까지 연속되다가 10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수메르 시대부터 7을 신비로운 숫자로 여긴 탓인지 이러한 접근 방법은 다양한 고대근동 문헌에 등장하며, 창세기에서는 6일째까지는 창조를 7일이 되면 휴식이 등장한다. 이집트의 수비학에서 7은 완벽함 혹은 어떠한 주기의 완성을 의미했고 시대가 흐르며 7은 고대 근동 문명 전반에서 점차 신성과 완성을 상징하는 숫자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이러한 시기가 되면 7도시의 7주신을 모시는 것 같은 상징적 행위가 등장한다. 오늘날의 요일 체계가 바로 이러한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며, 현재 사용되는 달력의 요일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로마신들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수비문학적 전통에서 6을 불완전수로 사용하는 용례가 많이 등장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첫 표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6개의 유대인 정결의식에 사용되는 항아리’가 등장한다. 상징적으로 이해해보면, 물로 씻는 유대인 정결의식의 불완전성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성이 대신하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6개의 항아리는 물로 가득차고 그 물은 최고급 와인이 되어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66을 불완전수의 상징으로 작품에 적용했다.

이것을 인도 문명에서 동아시아로 전해진

‘찰나’와 ‘오만가지 생각’을 감싸는 형식으로 표현하여

인간의 마음, 인간의 인식이 갖는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시 작품을 맺는다.

결론: 전시를 시작하며

오늘날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것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시대다. 나는 사회 속의 다양한 분쟁들 가운데 떠올렸던 것이 하나 있다면, 입장이나 태도, 지향점 등의 문제를 떠나 사람들이 주장하는 방식에는 한결 같이 내가 이 글을 통해 제기한 문제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본다면 현대 인류도 여전히 신화적 서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 과학기술은 믿을 수 있는가?

  • 과학 지식이 누적될 수록 우리의 감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히 되어가는데 어떻게 관측을 믿을 수 있는가?

  • 그렇다면 각종 과학측정 장비들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오류의 누적의 결과물은 아닐까?

  • 그렇다면 왜 그토록 잘 작동하며, 때로는 감관에 의한 관측과 잘 맞아 떨어지는가?

 

나는 장황하게 펼쳐 둔 나의 생각들을 데이터 - 사물 - 데이터와 같은 순환구조적 작업으로 표현하기도, 다소 평이한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때로는 다소 극단적인 촬영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매체 또한 보기에 따라 한계가 매우 극명한 매체다. 드라마틱한 풍경은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 합성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되고, 자신의 얼굴과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광학기술의 결과물을 보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어떠한 얼굴을 만들기에 바쁘다. 사진의 몇 가지 특징 때문에 오히려 기억에 왜곡을 가져오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면 사진이 가야 할 방향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들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혹은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도 실상은 할 수 없다. 마치 지평선이라는 공간의 문제 속에서 그곳에 닿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류인 것처럼 어떠한 발견과 시도는 끝끝내 오류로 그칠지도 모른다. 만일 극도로 기술이 발달한 문명이 되어 공간을 왜곡하는 기술을 통해 지구의 곡률에서 지평선이 펼쳐지는 나로부터 약 5km 떨어진 지점에 손을 댈 수 있다고 한다면 이미 그것은 지평선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특정한 지점일 뿐이다.

 

나는 이 지평선의 문제를 오히려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나의 눈이 땅에 닿을 때 거기에 지평선이 있다.

지평선이란 관찰자의 눈높이와 관찰자가 위치한 행성의 곡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 이후의 시대란 진화인류학의 연구의 성과가 우리의 상황은 물론,

불교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의 감관의 공(空)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불교적 관점이란 바로 이러한 이해와 인식의 틀을 불교적 관점에서 빌어왔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여러 날 고민한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2021년 7월 12일

​사진작가 방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