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hang, Youngmoon

국가와 친환경, 공존이 가능한 생각들일까?

현재의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국가와 문명의 역사와 혼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국가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와 동일시 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그러나 국가는 공동체나 농경이 발달한 이후에도 수 천 년 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국가의 등장이후 인류의 삶의 질은 눈에 띄게 떨어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사의 관점은 인류가 '발전을 거듭해' 정착하고, 부락과 도시를 일구고 국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관점에서 씌였다.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해야 하는 어떠한 서사에서도 자기부정을 목적으로 기록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전말이란 결국 국가의 입장에서 씌여진 기술이다. 국가 중심의 사관(the nation's view of history)인 셈이다.



기록의 등장과 용도


문자는 왜 만들어졌을까? 근본적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의 용도와 발전 경로는 의외로 쉽게 알 수 있다. 문자는 처음에 인간의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문자들이 인간의 음성언어를 옮기는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의아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우리 한글이야말로 인간의 음성언어를 옮기는데 가장 탁월한 문자이다. 한글이 반포된 것은 1446년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집트의 신성문자나 수메르의 쐐기문자와 비교하면 5천 년 정도는 차이가 난다. 이쯤되면 봉화(signal fire) 기술과 스마트폰을 비교하는 셈이다. 그러나 요점은 이러한데, 이렇게 후대에 만들어지는 문자들은 음성 기록에 탁월하고 그것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출토되는 설형문자(cuneiform)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몇 가지가 있다.

수메르의 통치 방식, 통치자들과 성전 성직자들의 표기법, 노동력 파악 그리고 곡물의 생산을 늘리기 위한 노력 등이다. 문자 기록은 음성을 기록하고 문장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세와 인력의 관리를 위한 것들이었다. 그것의 발전 과정에서 서사를 기록했고, 그것은 대개가 국가의 통치이념에 관한 것이며, 다양한 고대의 성문법이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죄악시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인류 초기 국가는 풍족한 지역의 탈취로 생겨났다


농경의 문제는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농경이란 삻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요에서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이동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구가 충분히 늘어나면 먹을 것이 줄어들고, 농지에 대한 권한을 다루는 것만으로 사람들에 대한 지배가 용이해진다. 문명화 과정 속에는 우리가 길들이는 작물과 가축의 리듬에 맞추는 삶이 포함된다. 농사를 짓는 시기들, 즉 절기에 따른 의례들은 다양해지고 강력해졌다.

농경사회와 이렇게 발생한 국가 이전의 계획 경제라는 것은 시기 적절하게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철에 따라 이동하는 짐승들을 사냥하고, 야생 작물들을 채집하는 생활이었다. 길목을 다루고, 물길에서 기다리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생활은 계획과 보상의 지연을 충분히 내포하지만, 반면 삶의 리듬이 아주 세부적으로 작물이나 가축에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곡물 중심으로 식단이 단순해지고, 가축을 중심으로 길들인 고기를 얻는 것으로 생활은 완전히 바뀐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에도 대부분 인간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으며, 삶의 질이라는 것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우리가 자원과 식량의 낭비 그리고 환경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은 불과 몇 십 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 상기해보자.



국가는 태생부터 환경을 파괴해 자멸하게 되어 있다


국가 유지의 핵심이 무엇일까? 바로 인구다. 만일 어느 지역에 십 여 명 정도를 모아서 독립국가를 선언한다면 소위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수는 있어도, 제대로 된 국가의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국가는 수많은 인력을 바탕으로 규모 경제, 군사력, 인프라, 자원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의견을 낼 수 없다. 국제사회란 기본적으로 무정부 상태다.

따라서 국가는 그러한 자기보존을 위해서 순리에 맞지 않는 행위를 지난 수 천 년 동안 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인구이동에 대한 통제다. 농지와 목축지를 통해 노동력의 이동을 통제했다. 노예제도의 일반화를 통해서 시민들의 처우를 개선했다. 즉, 밖에서 사람들을 끌고 들어온 것이다. 이를테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현재 관점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라 전체의 국민들을 모조리 끌고 가는 발상 같은 것이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라, 당시 국가 정착지를 연결해 확장하고, 인력 확충을 위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매우 일반적으로 일어나던 일이었다. 그렇게 국가 영토의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인 것이다. 이집트의 경우 인근 지역과 해상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방식을 선택했다. 나일강 삼각주의 풍족한 범람원을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중점이 있었던 이집트의 입장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나 이집트 양측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었다.


예일대학의 제임스 스콧 James C. Scott 이 정리하고 있는 초기 국가의 환경 파괴들을 한 번 보자.

그는 초기 국가들이 자행한 자멸적 생태살해 ecocide 의 문제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숲의 파괴 deforestation 이고, 다른 하나는 염류화 salinization 이다.



숲의 파괴 deforestation


첫 번째는 벌목에서 비롯된다.

국가라고 해봐야 몇 만 명이 사는 곳에서 벌목이 큰 문제가 될까? 심각한 문제가 된다.

오히려 벌목과 강 지류의 관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문제는 훨씬 김각했다.


초기 국가가 조금씩 발전하게 되면 성전건축이나 성벽건축을 위해서 목재가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특별히 성전(É.GAL (𒂍𒃲,"palace", literally "big house")) 건축은 국가의 주신(major god)과 통치의 정당성이 곧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수메르 이후로 신의 계보들을 계속해서 이어 자신들의 국가 통치가 정당하다는 점을 주장하는데 활용했을 것은 뻔하다.


최근의 탐사기술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놀라운 것은 우르크 지역 등은 당시 해안도시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쿠웨이트, 이라크 지역은 페르시아만 조수에 의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지역이였다. 이 지대는 현재보다 10m 이상 낮았을 것이다. 인류의 초기 정착지가 이곳에 형성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해안가를 통한 풍부한 해안 자원 - 오늘날의 아부다비 Abu Dhabi 같은 지역도 석유산업 이전에는 어업을 중심으로 하던 곳이었다 - 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통해 오랜 세월 쌓인 영양가 높은 땅으로부터 다양한 식물을 얻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에덴동산과 같은 지역이었던 셈이다.


초기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회가 이러한 강의 축복으로 시작되었다면,

문명의 규모가 커지고 국가가 형성되며 제국화와 성전과 성벽 건축에 몰입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우선 운송의 용이성과 노동력 절감을 위해서는 벌목을 할 때 강에서 가까운 지점을 중심으로 하게 된다. 그 옛날 레바논 향백나무를 어떻게 우루크까지 옮겼을까? 기원전 3천년 이후로 벌목으로 인해 유프라테스강 상류지역의 삼림이 파괴된다. 물류 편의를 위해서는 당연히 강 상류로 장비만 들고 이동해서 벌목을 하고 무거운 나무들을 대량으로 옮기는 것은 강을 통해 옮기는 것이 좋다. 따라서 벌목은 도시가 위치한 강 지역보다 훨씬 상류쪽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산림이 파괴되면서 강의 유속에 변화가 생긴다. 침전물과 토사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긴다. 수 만 년에 걸쳐 일어나야 식물에 풍부한 영양을 줄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인데, 급작스럽게 변하며 토양이 망가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염류화 salinization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농토를 위한 관개수로와 함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염류화 문제이다. 현재도 페르시아만 인근 지역, 국가에서 생수를 구매해보면 물의 염도(salinity)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우디아라바아의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는 '담수화' 사업 (turn salt water into fresh water)이다. 농산물을 위한 프로젝트다. 이 지역의 지하수는 염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반복된 농업으로 땅의 양분이 줄어들고 염분이 포함된 물이 유입되면 거둘 수 있는 작물은 매우 한정적으로 변하며, 그 마저도 거둘 수 있는 양이 매우 줄어들게 된다. 로버트 아담스(Robert McCormick Adams)에 의하면 기원전 2,400년경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생태적 몰락 원인은 토양의 염분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기보존 욕망의 삐뚤어진 환상


지배논리와 정당성을 위한 서사의 창출은 족장들의 시대, 정착과 토지 문제 그리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점점 강화되었다. 이것이 규모가 전례 없이 커지고, 극단화 되는 경향은 국가의 출현과 함께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주신들의 계보를 내세워 통치 이념을 정당화 했고, 자신들의 계보를 통해 왕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이것을 강화하기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쌓은 것은 물론 자연에서 채집 가능한 어류, 작물, 각종 채집 가능한 기름과 향료에 등급을 매겼으며, 노동의 표준안을 만들어 냈다.


중국 진나라의 경우 여성이 출산하면 여성과 가족의 세금을 줄여주었다. 오늘날과 다르지 않은 출산 장려 정책이 이미 2,200여년 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피시, 진나라는 15년 밖에 가지못한다.


우리는 당시 상황에 대한 조사의 결과가 많아질수록,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서사들과 국가 기록의 실체, 심지어는 오늘날까지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종교와 종교 전쟁의 원인들을 뿌리부터 살펴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오늘날 인류 분쟁 원인이며, 가장 심각한 사태로 치닫는 생각들이 결국에는 국가의 유지와 그를 위한 이념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상은 허무할 뿐이다.


정말 가치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를 향해서 가야할까?


그러한 고민들을 담아보았던 작품에 관한 단상들이다.


The Circumference of The Circle:

I AM EVERYTHING EVERYTHING IS WHO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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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ANG Youngmoon Photography, Incheon,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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