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hang, Youngmoon

[다면체탐구] 핵심으로 핵심으로

어떠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가능한한 많이 담아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심이다. 그렇지만 당연한 것조차도 잘못하면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 뇌는 신진대사의 20% 가량을 차지하고 주된 에너지원은 포도당이다. 포도당 공급이 원활하려면 혈당치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저혈당과 고혈당은 모두 기능정지와 캐러맬화라는 악영향을 미친다. 요는 이것이다. 뇌가 높은 열량을 사용하고, 주된 에너지로 당을 이용한다고 해서 과도하게 당을 섭취하는 방법을 선택하면 결국 뇌 기능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다면체 탐구 Exploring Polyhedron 시리즈를 만들었을 때 담아내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거나 그 범위가 넓은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자 간단한 소개자료를 만들어 공유하였으나 이에 대한 코멘트를 듣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풀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의견의 수용이 가능했다.


처음의 구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은 이러했다.

  1. 디지털 이미지와 인간이 갖는 주체 상실의 공포

  2. 인간이 관여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자연의 보편 원리들이 디지털 파일로 저장 가능한 시대의 문제

  3. AI, 로봇이 창의의 영역까지 들어왔을 때 인간의 존재 의미

시간이 지나면서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협의가 진행되면서 그러한 생각들이 확인 되었다. 현상의 코드화, 디지털 파일의 사물화, 물질의 프로그래밍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이것이 결론이었다.


글을 시작하며 적어갔듯이,

적절히 소진할 수 있는 양보다 과도한 에너지가 공급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나는 소위 #제_4차_산업혁명 같은 키워드를 버리기로 했다. 재미있게도, 그것이 작업을 시작하게 만든 키워드였는데 작품을 걸기 위해서는 그것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연작과 제 4차 산업혁명과의 관계는 모티프였기 때문에 그 관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품의 설명에서 형식적이고, 드러난 표현이 사라질 뿐이다. 이제 제 4차 산업혁명은 연작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작품을 드러냈다(빼버렸다).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 2019년 5월 4일 변경안>


이 과정을 통해 결론낸(도출한) 연작의 전체적인 방향과 주제는 '사실과 개념의 경계는 어디인가?'로 바뀌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사진의 정체성을 논할 때면 항상 거론되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개념이 사실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 '신들의 세상'이 개념의 사실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것 같다. 우리가 번개가 치는 원리를 알지 못했을 때 그것은 제우스 Zeus 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인간은 번개를 만들어내는 장비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된다. 한편 신에 대한 관념과 믿음을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로 치부한다면 모르겠지만, #믿음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보다 실질적인 것은 없다. 운명론자에게 운명은 항상 맞는다고 하지 않던가?


옛날, 神 GOD(s) (들) 으로 추상된 개념이 모두에게 현실이 되었던 것을 상기해 볼 때, 기술 임계점의 돌파와 거기에서 개념과 사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중심에 있는 읜본주의적 주체를 상실할 가능성에 대한 문화적 공포"(Sarah Kember)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르네상스를 지나며 신으로부터 가져온 인간중심의 세계관에 가해지는 위협인 것이다. 이제 인간 뿐만 아니라 기계도 사고할 수 있으며, 우리는 워쇼스키 The Wachowskis 의 작품 <매트릭스 Matrix>가 보여주는 것처럼 가상현실 속에 있다는 염려를 갖게 된다. 다시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더 강한 존재로 인하여 생태계의 정점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자신의 역량에 의심을 품고 두려움을 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사라 켐버의 표현을 계속해서 곱씹어보니, 어쩌면 켐버의 표현은 굉장히 순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우리는 지구상 생태계 정점에 있는 생물이고 인간을 잡아먹는 천적이 나타날까봐 계속해서 두려워 할 뿐인 영장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21세기가 되어서도 AI에 의한, 인간에 대한 지배, 외계인의 침공, 고질라 Godzilla 와 같은 괴수의 강림을 계속해서 상상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과 개념의 경계에 대한 고민은 이처럼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플라톤 다면체 Platonic Solids 를 #3D프린터 를 이용해 만들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 과정을 진행하면서,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 Whitehead 의 잘못 놓여진 구체성의 오류 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 를 중심이 되는 생각으로 상정했다. 사실의 세계 너머 본질의 세계가 있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기호, 상징, 개념을 이용한 지적 탐구의 세계로 향하는 초석을 닦았다. 그렇다면 조금더 극적으로 관점을 돌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경험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양에 있다.


우리가 눈앞의 달걀을 '진짜'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에서 비롯된 정보에 모두 부합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달걀'이다. 흔히 하게되는 상상처럼 우리의 뇌에 전기자극을 주어 '진짜 달걀'이 있다는 정보를 주입한다면 그것은 뇌에 직접 전달되는 전기자극만 존재하게 되므로 소위 '현실'에서 말하는 시공간 점유 즉, 뇌 밖의 정보의 양이 압도적으로 줄어든다. '질량'이라는 형태로 시공간을 점유해야 즉, 원자를 비롯한 물리적 세계를 프로그래밍하는 정교함과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진짜 달걀'이라는 사태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그 충분한 정보를 통해 '진짜 달걀'과 동일한 달걀을 '제작'한다면 어떤가? 그것은 '진짜 달걀'이 아닐까?

아니, 반대로 원자 단위의 복제와 #3D프린팅 기술이 가능해져서 원자구조까지 같은 달걀들을 양산한다면, 오히려 지금까지 접했던 달걀들보다 더 일관된 상태의 달걀을 얻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결여'가 현실을 결정하는 것인가? 원자 단위에서부터 동일한 달걀들이라면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고 느끼게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에 비추어 본다면 사진적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즉, 그것이 '진짜 사진'이 되기 위해서는 화학인화에서 수반되는 물질과 정보의 열화가 있어야 한다는 상황이 이해된다. 인간이 받아들이는 현실감은 정보의 완벽한 충족은 아닌 것이다. 이는 마치,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현실과 가상의 세계의 경계도 모호한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때문에 수정한 연작을 이렇게 정리하려고 한다.

  • 달걀 An Egg: 사물의 인과에 대한 부분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로 수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 그리고 현실성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사실은 의외로 매우 빈약한 믿음을 토대로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 Karma: 사건의 인과에 대한 부분은 개념 즉, 지식을 통해 사실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수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는 제사 Yajna 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하는 고대 아리안들의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개념의 집합체 즉, 과학기술은 이것을 가능케하고 있다.

  • Platonic Solids: 플라톤 다면체는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즉, 지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움직이려는 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은 기호, 상징, 개념과 같은 것들이며 이를 통칭하여 '#언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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