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hang, Youngmoon

다문화 사회 multicultural society

다문화 사회 multicultural society 란 무엇을 말할까? 오늘날의 사회 문제를 정의하기 위한 '다문화'가 아닌 진정 문화적 의미에서의 다문화를 고민해본다면 우리 사회는 현대화와 이주자들이 흔하게 사회 속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다문화 사회였다. 이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 풀어보자면 이렇다. 어떠한 민족적 순수성 혹은 인종적 순수성, 단일민족 등을 내세우는 것은 특정한 의도와 특정한 이득을 취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히틀러와 아리안 Hitler & Aryan

아리안 aryan 의 뜻을 그 원어에서 찾아보면 손님 대접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정치적 주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히틀러는 아리안 혈통과 그 순수성을 자신의 주장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한 것일 뿐, 그것이 사실에 근거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레코로만 Greco-Roman 문화에 대한 열등감, 금융 분야를 장악하고 뒤흔드는 유대인들 그리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끝없는 불만을 표출하는 독일의 국민들을 향해 그들의 분노가 향할 방향과 그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해 악용되어 오늘날 서구의 일부 학자들은 이 아리안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가 되었다.


단일 문화, 민족주의적 순수성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편견을 자극한다. 고대로부터 순수성과 완전함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지성 속에 열병처럼 퍼지고 또한 파고들었다. 더군다나 사람이 감정적이 되면 대뇌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한다. 게다가 해마의 생리적 특성을 비롯 논리가 감정과 편견을 정당화 하기 위한 도구가 될 가능성은 인간 두뇌의 특징 속에 너무나 강하게 담겨 있다.


던져야 할 질문들

사람들이 사는 어느 사회나 편견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은 그 질이 상당히 좋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다. 국가, 인종 등에 대해서 굉장히 비좁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소위 말하는 '문화적 수준' 자체가 정체된 세대가 여전히 이 사회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극도로 낮은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문해력 수준이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자세히 보면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대한 수용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나는 이러한 부분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어 반가사유상의 복제품을 구입해 분홍색으로 덧칠했다. 불상은 여러 방면에서 우리 사회와 역사의 다문화성과 우리가 가진 편견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불상은 매우 반불교(anti-buddhism)적이다.

붓다의 삶 가운데 마지막을 기록한 경전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The Mahāyāna Mahāparinirvāṇa Sūtra)이라는 경전이다. 다른 것을 떠나 '대반열반'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윤회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일평생 평화를 추구한 위대한 인물이 가고자 했던 길이다. 때문에 초기 불교 미술에서는 붓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으며, 그의 형상을 남기지 않았다. 붓다의 모습으로 '생각되는 모습'이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간다라 지방의 마케도니아 총독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것으로 그 뿌리는 헬레니즘이다. 붓다가 도달하고자 했던 대반열반을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불교라면 여전히 불교는 그의 모습을 형상으로 그려내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중적 종교를 향한 움직임은 결국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을 만들었고, 그 대상을 향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불상은 매우 반불교적인 상징물이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와서 오늘날까지 불교는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나 언어 속에는 엄청나게 녹어들어 있다. 영어권 화자가 자신의 종교와는 관계 없이 "Holy shit!", "Oh, my God!", "Jesus Christ!" 라고 외치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 속에는 불교 기술을 위한 수많은 단어와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전승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2) 불교 수용의 과정에서 녹아 든 인도와 중국의 문화

사람이 죽으면 49제를 지내고, 사당의 위패를 주기적으로 밀어내는 문화는 단순히 혼과 백에 대한 우리의 관념 때문만은 아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쁘레따'라고 하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고, 이 존재가 사후 세계에서 여러 세대를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주면 '스바르바하'라는 곳 즉, 흔히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쁘레따'는 수용 과정에서 아귀(餓鬼)라고 번역되었는데, 사실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사후세계보다 이승이 더 익숙한 존재들을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은 단순히 유교 문화만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인도의 사후 세계와 관련된 제식 즉, '야즈냐'와 관련된 전통과 유교의 혼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경의 출세하지 못한 무관이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묶어 동아시아의 강력한 사상 체계로 만들게 된 것은 보급의 방법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술들이 있었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제후들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제후들의 정치와 정책에 반영하도록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불교를 수용한 '당', 유교로 회귀하는 '송'으로 이어지고 불교와 유교를 두루거친 문화의 형성 속에는 인도와 중국 문화의 혼합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고전 이야기들은 그 원형이 인도에서 전래 된 것들이 많이 있다. 불상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인도의 사상 체계와 유럽의 미술 그리고 중국화와 한국화 과정을 모두 경험한 결과물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는 당연히 혼합과 선택을 다양하게 경험했을 수 밖에 없다. <라마야나>는 <서유기>에 다양한 소재를 전했다. #진리 , #여정 , #보호 , #충성 , #원숭이 등이 다양하게 공유된다. 인드라와 브리뜨라의 이야기는 용을 무찌르는 용사를 그리는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다. '순수성'이란 한순간 인류가 빠졌던 대단히 큰 착각이었을 뿐이다.

BHANG Youngmoon Photography, Incheon,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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