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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가브리엘 <예술의 힘> 그리고 창발적 유물론에 관한 단상

“이 작품에서 적어도 세 가지 요소, 곧 청동, 청동의 모양, 표현된 아이디어가 있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이 중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해 예술 작품은 청동과 청동의 모양, 표현된 아이디어를 서로 묶어 주는 콤포지션에 있다.” <예술의 힘> 중, 마르쿠스 가브리엘 (저)/ 김남시 (역)


2023년 1월 방영문 개인전 중 @ 갤러리 CISO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예술의 힘>은 시사하는 바가 큰 저서로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그의 저서이다. 가브리엘은 예술이 가진 힘에 관련한 우리의 일반적인 가정에 대해 논할 뿐 아니라 예술이 세상에 관한 새로운 바라보기의 방법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책의 핵심이 되는 주제 아이디어 한 가지는 존재론적 저항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현실의 속성과 우리 지성의 한계를 향한 도전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예술이 우리의 선입견과 기존 것들에 관한 믿음을 넘어서 새로운 이해를 향한 가능성을 열어주며 또한 그것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다른 중요한 관점 하나는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의 관계에 관한 탐구에서 비롯된다. 가브리엘은 기술이 우리가 예술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해함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강화해주는 동시에, 예술적 표현의 균질화 혹은 단순한 유용성으로 예술을 평가하는 부정적 효과도 지님을 명시한다.

‘콤포지션' Composition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콤포지션' 관점과 예술과 관련한 환원주의적 관점은 예술은 자연현상을 분석하는 환원주의적 방법처럼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성분들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가브리엘이 예술은 인간의 독창적인 자기표현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로 환원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며, 오히려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고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브리엘에 따르면, 예술은 구성요소들의 총합이 아니라 색, 형태, 질감 그리고 의미들과 같은 복합적인 요소들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술의 경험이란 '전체적인 것'이며 이것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각각의 구성요소로 환원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는 전체로서의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가브리엘은 예술 이해와 관련하여 그 저변에 있는 심리학적, 생물학적 용어들을 통해 이를 설명하려는 환원주의적 관점과 관련하여 이는 예술적 표현이 갖는 복합적이고 독자적인 요소들을 놓치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예술은 결코 요소들의 집합이나 일련의 설명들로 환원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현상으로 이는 환원주의적 방식을 통해 결코 특정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주장과 창발적 유물론

창발적 유물론(emergent materialism)은 특정한 사안 혹은 의식과 같은 복합계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때 그것을 환원적으로 혹은 구성요소들의 특성을 통해 설명될 수 없다고 하는 철학적 이론이다. 대신 전체 계(系, system)의 구성요소들간의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통해 어떠한 특성이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예술을 설명하는 가브리엘의 '콤포지션'에 관한 관점은 이러한 창발적 유물론자들의 관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는 그가 예술적 경험과 관련해 이야기할 때 현상의 발생, 이를테면 구성요소간의 복합적 상호작용들에 의한 것임을 말한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가브리엘에 의하면, 예술적 경험이란 특정 요소들로 환원될 수 없으며 형태, 색, 질감, 의미와 같은 복합요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다. 이와 유사하게, 창발적 유물론자들은 의식과 같이 우리 뇌안의 무수한 뉴런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을 뉴런 각각 혹은 특정한 집합의 뉴런에 의한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환원적으로 바라보는 예술과 관련한 가브리엘의 관점은 창발적 유물론자들의 관점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창발적 유물론이 복잡계의 속성을 그것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의 특성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전체적으로 환원주의를 거부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가브리엘의 논점은 예술은 환원주의적 방법을 통해 자연현상을 그것들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로 혹은 요소들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이 이해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예술에 있어서 콤포지션에 관한 가브리엘의 관점과 창발적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마찬가지로 환원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차이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차이 하나를 꼽는다면, 창발적 유물론자들이 다양한 철학 이론들을 더 넓은 범주의 복잡계에 적용하고 있다면 가브리엘은 그의 논점을 예술의 본성과 예술적 경험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의 논점에서 보면, 예술적 경험 자체는 그것이 각각을 구성하는 부분들로 환원될 수 없다는 창발적 유물론적 논거를 갖는 것이라기 보다 형태, 색, 질감과 의미들과 같은 다양한 구성 요소들 간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창발적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과 같은 복잡계의 특정한 속성 혹은 특성들이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 각각의 특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로는 예술에 있어서 환원주의에 대한 가브리엘의 관점은 창발적 유물론의 관점보다 더 회의적이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창발적 유물론자들이 복잡계가 각 부분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환원주의 전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사실과는 달리 가브리엘이 예술이 각 부분과 구성요소들로 환원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그가 예술은 인간의 독특하고 복잡한 형태의 표현이며 이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의해 결코 온전히 수용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고 믿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관점 사이에는 분명 유사점이 존재한다. 첫째로는, 두 관점 모두 복잡계로부터 창발하는 것들 혹은 현상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들 혹은 개별요소들로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콤포지션에 관한 가브리엘의 관점은 예술적 경험은 형태, 색, 질감과 의미들과 같은 다양한 구성 요소들 간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며, 이는 개별 구성요소들로의 환원으로 이해되거나 수용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창발적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과 같은 복잡계의 특정한 속성 혹은 특성들이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 각각의 특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두 관점 모두 통일적이고, 전체론적 관점의 중요성과 복합적 현상에 대한 복잡계적 접근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현상 창발로서의 예술이라는 관점을 갖는 가브리엘은 개별요소들로의 환원이 아닌 다양한 구성요소간의 상호작용이 이뤄내는 '전체'로서의 예술이라는 관점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하게 창발적 유물론은 단순히 개별 구성요소들로 분석되는 것이 아닌 전체 시스템이라는 사고의 중요성이 그것이 특성을 이해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콤포지션이라는 가브리엘의 관점과 철학에 있어서의 창발적 유물론자들은 복잡계에서 발생하는 특성들이라는 이해와 더불어 체계적 접근의 중요성을 통해 이들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환원, 추상관념, 한계성 등과 관련한 작품:

2023년 4월 15일 - 4월 30일 인천 선광미술관 아모르파티 창립전 <판단중지> 단체전에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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