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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베다, 아베스타 닭다리 가설 - 사진연작 '응시' 작업기 영상 예고편

'인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반도, 일본열도와 '이란'의 연관성은 어떨까?


이란은 굉장히 오래된 국가다. 아르케메네스 제국(the Achaemenid Empire)의 영토와 루트는 훗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의 영토 확장 계획의 초안과도 같다. 이 영토와 루트를 통해 중앙아시아까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보는 우리 삼국시대 불상은 간다라에서 구현된 유럽 미술과의 교류사이기도 하다.


이란과 인도의 경계가 되는 지역에서 헬레니즘의 전파와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끝났다. 때문에 인도는 매우 독특한 문화로 남을 수 있었으며, 이란 지역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 변화한다. 유럽과 인도와 연결되는 언어적 뿌리의 동질성, 헬레니즘 철학의 영향 그리고 이슬람화의 길을 걸으며 이란은 수많은 시인들과 학자들을 배출했다. 오늘날 소위 '영적 스승'들이 베껴오는 명언들 가운데에는 10세기 전후 이란에서 등장한 문장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나는 언어의 형성과 수용 그리고 영향의 역사, 그것들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그에 대한 이해가 바로 오늘 우리 자신의 의식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일상언어들이 발생하고, 수용되고, 영향을 주고 받은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의 생각을 관조적으로 응시(contemplative contemplate)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 사진을 이러한 역사와 언어를 기본으로 작업하는가?


사진은 물론이고, 모든 예술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작품을 만들도록 추동(推動)하는 요인은 당위성이다. 내가 어떠한 표현을 해야겠다고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빌렘 플루서는 "존재론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그림은 현상을 의미하는 반면에 기술적인 영상은 개념을 뜻한다. 기술적 영상을 해독하는 것은 결국 그 영상으로부터 개념의 위치를 간파해 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이미지 자체를 하나의 '개념의 응축'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전의 기능은 동어반복을 통해 개별 단어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언어 속에 들어있는 어떠한 역사적 맥락을 파악한다면 그것을 통해 오늘 나의 의식과 내가 접하는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집단의 언어습관의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는 에드워드 사피어의 말처럼, 인간에게 매우 보편적인 사태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플루서의 말처럼 "기술적 영상을 해독하는 것은 결국 그 영상으로부터 개념의 위치를 간파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아수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응시 PART 2 작업기 영상에 대한 예고편)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가 등장했다. 바로 '아수라(阿修羅)'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어 Asura(असुर)를 소리나는 그대로 옮겨온 말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거친 서체로 종종 표현하며 극단적이고, 잔인한 존재를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아수라는 조로아스터교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으며, 아주 초창기 베다의 기록 속에서 등장해 변화하는 과정을 겪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인도에서 아수라에 대항하는 선신(善神)들을 부르는 말은 '데바 Deva (देव)'다. 천상의 존재라는 어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베딕에서도 조금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데바'로 묘사되는 신들 중 가장 중요한 '아그니'와 '인드라'도 아수라로 불리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좀 더 후대로 가면 자비로운 신들은 데바로 잔인한 신들은 아수라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언어 변천의 구조를 보면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어원적으로 아수라는 우랄어족으로부터 수용되어 본래 '군주'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조로아스터교, 즉 이란 고대 종교에서 '신성'을 의미하던 '아후라 Ahura(𐬀𐬵𐬎𐬭𐬀)'라는 단어와의 연관성이다.



H > S


이 발음 변화 현상은 기원전 850~600년 경에 나타난 이란조어 Proto-Iranian 속에서 등장한다. 초창기 베다의 성립 이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아르케메네스 제국은 자신들의 영토 동쪽 끝 지역을 'Hindush'라고 불렀다. 이 -sh 로 발음되는 접미사는 아르케메네스 제국에서 지역명을 붙일 때 자주 사용되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인더스 강을 'Sindhu'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표현의 변천이 훗날 '힌두교 Hindu'의 어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두 언어의 발음차이가 본래 신성(divinity)을 가리키던 '아후라'의 발음에 차이가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고유명사는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가 있다. 단순하게 이 변천을 정리해보면, 이란 지역에서 신성을 의미하는 '아후라'라는 단어가 있었고, 이 표현이 H를 S로 발음하는 산스크리트어에 가면 '아수라'로 발음이 바뀐다. 그리고 후기 베다에서는 이 '아수라'가 데바와 대적하는 잔인한 존재들로 묘사된다. 이것이 불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데, 한역으로 음사 즉, 소리만 옮겨서 아수라(阿修羅)라고 적게 된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와 한국어가 연결되다


우리 문화와 언어가 조로아스터교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흥미롭다. 소위 '동이(東夷)'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중국문명과의 대척점으로, 우위에 있는 어떤 민족적 단위로 설명하는 경향은 “발명의 선후(先後)는 전제군주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공통된 관심사"라고 하는 정예푸(鄭也夫)의 경고를 진지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20세기 초중반 전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에도 배운 것이 없을 정도로 무지한 사상일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원조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 같은 소리가 아니라 전지구적 수용사를 통해 우리의 문화들이 고대로부터 상당한 교류를 해왔던 사실을 통해 앞으로의 소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한 이후로 이 '아수라'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라는 표현은 너무나 익숙한 일상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수라'라고 해서 극단적인 상황이나 표현들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실 수라는 어원적으로 '데바'를 가리키는 말과 차이가 없었다. 같은 단어를 수용해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사용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들의 어원은 고대 이란언어와 연결된다. 그리고 고대 이란어, 베딕,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는 저 멀리 흑해-카스피해 초원에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 중 일부가 남쪽으로 이주했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 시리아 인근에 '밋탄 혹은 미타니'와 같은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오늘날 연구를 통해 이곳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해 미타니의 신들과 인도의 신들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가 있다. 이 미타니는 구약성경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즉, 언어를 통한 문화의 영향들은 레반트 지역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부족과 문화들의 흔적이 예수의 제자들이 선교를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시기에 이미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다. 불교를 통해서 말이다.



언어의 수용과 영향 그리고 변천의 역사 이해가

나의 언어 속에 있는 나의 의식의 역사를 일깨운다


나는 유구한 세월의 생물학적 데이터가 축적된 결과이다. 손가락을 들어 타이핑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 글을 적고 있다. 먼 옛날 우르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장부를 적기 위해 토판에 쐐기문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나는 플라스틱, 알루미늄, 실리콘으로 이루어진 하드웨어에서 전자(electron)을 다루는 기술에 근거해 셀 수 없이 많은 데이터들을 다루고 있다.


시간적으로 누적된 이러한 사실들을 관조적으로 응시하면 나의 의식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해진다. 언어의 수용과 영향 그리고 그 변천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내 안에 있는 나의 의식의 역사를 깨운다. 그것은 무어라 이름하기 어려운 전지구적 네트워크, 전우주적 장(field) 안에 접점으로서의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결국 예술 행위란 그러한 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정 같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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