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 의자 옆에는 1998년에 생산된 맥 프로가 놓여있다. 아니, 당시에는 파워맥 G4라고 불렀던 것 같다. 2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8년 전에 미국 비자를 두 차례 거절 당했다고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영사가 알려줬을 때 깜짝 놀랐다. 두 번이라고? 암튼, 오래 된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원터치로 케이스 커버를 열고 확장 등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당시 모토로라 파워PC 칩인가 뭔가가 들어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맥도 이후에는 인텔 프로세서로 바뀌게 된다. 자세한 부분은 구글과 맥 마니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장비 마니아는 아니다. 때문에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때 유닉스, 리눅스 등을 세팅하며 했던 고생에 질려서 맥을 선택한 내 입장에서, 컴퓨터는 사용하는 물건이지 관리하는 물건이 아니다. 때문에 자가 업그레이드나 복잡한 셋업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맥을 선택하는 이유다. 최근 출시된 치즈 강판 같다는 맥 프로를 보며 20년을 살짝 넘긴 기억이 하나 떠올라 이 글을 적기 시작했기에 본론을 적어보고자 한다.
(1) 어떤이들은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다
나는 맥 프로에 대해서 평가할 생각이 없다. 분명 다른 운영체제를 굴려봐야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 바이러스 백신으로 입구를 막고,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묘한 이질감을 주는 윈도우즈를 사용할 일은 애플이 정말 이상해지거나 망하지 않는 이상 - 정말 이상해지면 망하겠지 - 없을 것이다.
1999년 나는 어느 작은 기획사의 무급 테크니션이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해 파워 맥 G4를 발표했고, 국내 미디어 크레이터들에게도 적잖은 파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기획사의 대표는 녹음을 위한 장비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파워 맥 G4, 채널 확보가 용이한 외장 오디오 인터페이스 그리고 당시 아직 이매직 Emagic 에서 만들던 로직 오디오 플래티넘 Logic Audio Platinum 으로 구성하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대표는 고민 끝에 하드디스크가 내장된 디지털 레코더를 구매했다. 비용문제와 더불어 컴퓨터 기반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불안하다는 것이 이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대 초반, 일반 가정에 두고 컴퓨터를 굴린다고 하면 헛소리 쯤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달로 보낼 때 사용하던 IBM의 컴퓨터는 2메가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 내 주머니에는 3기가 메인메모리, 256기가 저장 공간의 아이폰 X이 들어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1,024가 아닌 1,000 단위로 생각해보면 2메가는 2백만 바이트다. 3기가는 30억 바이트다. 메모리 용량이 1,500배 차이가 나는 것인데, 당시에 상상할 수 있었을까? 물리적 크기는 1/1,500 정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주머니 안에 들어가는 기계가 나사의 슈퍼컴퓨터보다 1,500배가 큰 메모리를 갖는다는 상상이 가능했을까?
디지털 레코더 이야기로 돌아가서, 당시 디지털 레코더의 선택은 앞으로 이렇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저질러진 실수 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20년이 지나 돌아보니 확실히 그렇다. 스튜디오에서 사용되던 콘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했던 O2R 과 같은 믹서를 다룰 줄 알면 쓸 수 있는 장비가 앞으로도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0년 정도 지나자, 경우에 따라서는 외장 콘솔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고, 필수적인 장비는 컴퓨터가 차지했다. 90년대 중반이면 워크스테이션 개념이 아직도 강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컴퓨터가 이렇게 강력해 질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2017년에 등장한 아이폰 X은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는데 필요했던 슈퍼 컴퓨터보다 1,500배나 큰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50년이 되지 못해 일어난 변화다. 20년이 되지 못해 음향 스튜디오의 장비는 죄다 컴퓨터가 잡아 먹었다.
(2) 어떤이들은 '미래는 조직 사회'의 의미를 여전히 모른다
이 말은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 의 말이다.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 말이 참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때가 있다.
소위 '전문가용' 컴퓨터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전에 스쳐지나가듯, 맥은 더 이상 전문가용 컴퓨터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동영상을 본 것 같다. 그런데, 전문가용 컴퓨터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진짜 전문가 영역의 미디어 콘텐츠 작업은 개인 플레이가 아니라 조직 플레이다. 개별 예술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제작 과정은 필연적으로 조직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 프리랜서 3D 디자이너가 혼자서 영상을 만드는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한계가 깨질 날이 머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주장에는 수긍이 간다.
전문가들의 작업은 필요한 자원이나 양적 규모면에서 소위 '일반'과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전문가용 시스템이라는 것은 한 대의 무지막지한 컴퓨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대가 협업을 할 수 있도록 짜여진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한 대의 무한확장 가능한 컴퓨터를 결국 별 쓸모 없다는 이야기다. 적절히 확장할 수 있는 10대의 시스템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서버가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만일 10명의 전문가가 한 대의 무한확장 가능한 컴퓨터를 순서대로 사용한다면 그처럼 효율이 떨어지는 작업장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저 1970년대 우리나라 전자공학과 실습실을 연상케 하는 장면일 뿐이다. 따라서 '전문가용 컴퓨터'라는 무지막지한 확장성의 컴퓨터를 상상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전문가가 아님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애플 Apple 이라는 회사가 (1) 이렇게 될 것이다와 (2) 조직사회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가정하고 있다. 케빈 애쉬턴의 표현을 빌자면, 창조적인 작업은 혼자서 일을 할 때 나온다. 그렇지만 또 어떠한 아이디어를 완성하려면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앞으로 분명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지금 나의 생각은 이유있는 고집일까 아니면 변화에 무지한 꽉 막힌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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