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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un-tact 라는 생각없는 주장에 관하여 - 코로나19, 기술적 복제, 언택트

언택트 un-tact 라는 생각없는 주장


언택트의 요지는 통신기술, 기술적 복제 그리고 이것들을 뒷받침할 하드웨어의 충분한 발전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즉, 화상통신 기술 등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사람이 대면을 할 때 주고받는 정보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다. 이미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져 본래 소스와 다른 결과물을 내보내는 기술은 흔해졌다. 요즘에는 간단하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반면, 소리의 반향, 냄새, 촉각적 정보 등은 완전히 사라진다. 누군가를 만날 때 걸어오는 상대방을 보며 손을 흔든다면 바라보게 되는 것은 잘 차려입은 상의만 보는 것이 아니다. 신발, 걸음걸이, 표정 변화의 추이, 주변 환경, 상황 등 셀 수 없이 많은 정보가 오고간다. 소위 현재 기술기반의 언택트 소통은 시청각 정보에 한정된 매우 폭이 좁은 정보 교환인데, 이것이 앞으로 갈 방향성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인류는 멸망했다고 선언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통신 기술에 의한 시각정보 교환이 가능해진 것은 지난 200년간의 성취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 고린도전서 13:12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무렵에는 지금과 같이 매끈한 거울은 없었을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에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 유리 세공 기술이 기반이 되어 현대의 거울과 같은 결과로 조금씩 가게 되지만, 이러한 세공 기술은 16세기나 되어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19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거울과 유사한 상태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은 빛의 반사를 정보로 고밀도의 데이터 저장 매체를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인류가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은 이제 막 200년이 되어 갈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적 거울은 1835년 독일에서 개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인데, 니엡스가 사진인화를 성공한 것이 1826년이다. 탈포트나 다게르의 기술 등 논의가 이루어지고 다게르가 실용화한 다게레오타입이 1839년에 사진술로 인정을 받았으니 사실 현대 거울과 사진술의 개발과 실용화는 거의 동시대에 일어난 셈이다. 그 전까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요소와 마찬가지로 유리세공 기술과 같은 기술들의 발달을 통해 기술적 복제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접근이 될 것 같다. 구체적으로, 특정한 하드웨어와 기술의 발달이 있기 전까지 어떠한 구체적인 추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식혁명'과 같은 말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추상적 개념이나 논리적 정합성을 통해 어떠한 성취가 가능한 것은 특정한 부류에 한정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채 일반화시켜 버리면 오류에 빠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인류가 자신의 생김을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게 된 것이 이제 200년이 되어갈 뿐이다. 그럼 조금 달리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인류가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을까? 수 천 년 동안 수많은 학문을 발달시키며 자신을 조명해왔지만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아직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면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작자가 직접 작업한 시점에서 진본성을 획득한다고 보던 것이 과거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매우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경험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대적 거울과 사진의 개발은 거의 동시대에 일어났는데, 이는 곧 인류가 자신의 얼굴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은 200년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가 아닌 나와 동일하게 보이는image 을 생활 속에서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상을 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다 맑고 바람이 잠잠한 날 호숫가에 비친 모습을 통해 드물게 경험하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있었을까?


흔히 문제가 되는 짧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결론은 대개가 전례에 대한 정보가 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밀도 의존적 질병 density-dependent diseases'


'급성지역감염 acute community infections'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처럼, #언어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이동거리 증대와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에서 비롯된다. 이 '밀도 의존적 질병' 근본적으로 문명 civilization 의 시작과 함께한다.

도시란 바이러스 배양접시와 같은 것이다.

  1. 가금: 26가지

  2. 쥐, 생쥐: 32가지

  3. 말: 35가지

  4. 돼지: 42가지

  5. 염소 및 양: 46가지

  6. 소: 50가지

  7. 개: 60가지

인수공통감염 zoonotic-diseases 은 인류에게 매우 흔한 현상이었다.

이것은 매우 상식적인 상황이다. 원래 자연스럽게 산천을 돌아다니는 짐승들이 한 곳에 모여 살게되는 기현상이 지난 수 천 년 동안 인간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실상은 인간 또한 짐승이기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질병에 의해 사망할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빌 게이츠와 같은 사람들이 막대한 자금을 세계 곳곳에 상하수도 시설 구축에 쓰고 있는 이유도 이런 문제와 관계가 있다. 상하수도 구축 이전의 도시는 각종 감염과 전염의 온상이었다. 말 그대로 바이러스와 세균의 배양접시인 셈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염물질들을 언택트 un-tact 로 다루는 각종 설비가 등장하면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9세기 중반, 의사들이 손을 자주 씻는 것으로 출산하는 산모의 사망률이 매우 낮아진 사례도 있다. 시신을 부검하던 의사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손도 씻지 않은채로 아이를 받는 사례는 흔했다. 당연히 산모의 감염 사망률은 엄청나게 높았다. 인류가 세균과 감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19세기 중반에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뀐 시점이다. 바이러스, 세균, 거울, 카메라는 물론, 고대사에 대한 발굴과 다윈의 진화론까지 이러한 지적 성취들이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지난 200년, 아니 반 세기 정도를 제외하면 인류는 지난 수 천 년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 원인 자연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든 제도에 있었다.



문명의 결과들


국가와 도시는 인구의 증대를 요구 당한다. 고대에는 거대 도시국가들이 소도시 국가들을 침략해 사람들을 그대로 끌고가는 경우가 흔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는 성경의 내용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당시에 매우 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느 곳을 침략해봐야 실상 건질 수 있는 것은 가축과 노동력 정도였던 셈이다. 도시화와 농경사회로의 전이는 영아 사망률을 높이고 영양 상태를 악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인간처럼 굶어죽는 개체가 많았던 동물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고대 문명들은 인간과 동물들이 먹는 것들을 이분화시켜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인식시켰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특정한 상황을 벗어나면 생존률이 매우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낮은 생존률을 상쇄하기 위해서 취했던 전략은 사망률을 넘어서는 출산을 통한 것이었다. 우리가 인권을 운운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되지 않은 것은 그전까지 흔했던 다양한 인간 사망의 문제가 우리 근처에서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애초에 포스트 코로나와 언택트는 답이 아니었다



국가 구축, 농경과 목축이 만들어 놓은 결과는 지구상 포유동물의 비율을 매우 기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현재 지구상 포유류는 60%가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가축이다. 36%는 인간 자신이며, 나머지 4% 만이 야생상태에 놓여있다. 단순하게 현재 야생상태의 동물들의 개체수가 정상적인 숫자라고 할 때, 인간과 가축이 얼마나 줄어야 비율이 맞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구의 한정적인 자원은 인간의 문명처럼 인위적으로 높아진 밀도에 맞춰져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언택트의 핵심이란 인구 자체가 큰 폭으로 줄어서 길에 나갔을 때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는 쪽이 맞는 방향이다. 나는 앞으로 전세계가 고민해야 할 방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 생명을 끊어서 인구를 줄일 수는 없다. 또한 지금까지 국가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국가의 힘은 인구와 비례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국가는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출산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인구기반 국력에서 어떻게 탈피하여 경쟁우위에 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미래지향적 시각일 것이다.



언택트 시대의 예술작품? 거론 자체가 무식


제한적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어떠한 상품 혹은 서비스(product or service)의 개념 그리고 이러한 코로나 19 Covid-19 에 의한 제한 사항에 대한 예술적 고민을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의 매체를 변경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부처와 예산 배분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 행정조직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의 합의를 마치 해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판단이다. 연극을 녹화해서 보여준다면 영화와 다를 것 없고 오히려 훨씬 밋밋하고 재미없는 영상물로 전락해버린다. 치밀한 동선을 계획해서 장면마다 적합한 카메라 웤과 편집을 하여 완성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영화의 한 장르가 되어버린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연극적으로 펼쳐지는 예술 영화 한 편을 만든 셈이 된다.


발터 벤야민적 표현을 빌려와서,

스테이지 위에서 움직이는 연극배우를 보고 있는 관객은 그 아우라 aura 를 경험하게 된다. 연극은 동일한 연출과 대본으로 이루어지더라도 매번 조금씩 미묘하게 변하는 새로운 해석이 된다. 아마 가장 연극적인 영상의 송출을 기획한다면, 고정된 다양한 카메라를 녹화하여 연극의 십여편 이상을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2차원 평면과 한 방향적 시간의 사건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수많은 화면을 동시에 띄우든, 24시간 짜리 동영상을 만들든 말이다.


요는 코로나 대책과 언택트와 같은 말들이 우리가 마주한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것처럼,

온라인을 이용한 콘텐츠의 변환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예술을 동영상이라는 일관된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심각한 문제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가 가능했다. 사람들이 만든 것은 늘 사람들이 모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사진 작품을 거래할 때 거론되는 문제 한 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진예술과 사진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작업의 가장 강력한 점인 동시에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늘날 언택트, 온라인 공연과 같은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예술행위 자체보다는 복지제도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비 지원사업은 '복지'에 그 초점이 맞춰져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국비 지원을 통해 제작되는 수많은 작품들이 늘상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일 대중들을 상대로 프라이빗 섹터 private sector 에서 작품을 제공하는 경우 수익률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작가를 발굴하여 전시하는 시스템으로 가기에는 여전히 엄청나게 높은 리스크 risk 를 수반하는 것이 국내 예술의 현실이다. 미술이라면 대중들에게 익숙한 고전의 레플리카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며, 음악이라면 공연 횟수를 줄여 예산을 집중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가수를 초청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예술수준 증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예산을 편성해 예술가들의 작품을 대중들이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접점을 만든 것이 오늘날의 국비 지원에 의한 예술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든 이 시스템이다. 그러니 관점 자체가 예술이라기보다 보편복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예술작품 육성에 기여하기 위한 제도라면 예술가들이 몇 년 동안 작품을 구상하는 동안 생계 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지만, 사회 제도권 안에서 이러한 시도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다소 무리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복지에 중점에 맞춰져 있는 이러한 특성을 무시한 채 현재 상황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책'을 마치 앞으로의 방향처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정말 문제라 볼 수 있겠다.



아우라 상실의 시대,

언택트 인위적으로 폭파를 시도하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은 복제와 모방의 약사를 언급하며 간단히 복제가 이루어진 사례들과 원인, 이유 등을 기술한다. 기본적으로 작품의 복제는 (1) 예술 실기 연습을 하려는 제자들에 의해 (2) 작품을 널리 보급하려는 장인들에 의해 (3) 마지막으로는 이윤을 탐하는 제 3자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해 비해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기술적 복제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면서 관철되었다.


이는 곧 지적재산권과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논제를 던지기도 하지만,

예술작품에 한정하여 이것을 고민해본다면,

그리고 발터 벤야민이 간략하게 기술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는 항상 복제가 가능했다

  1. 고대 그리스인들의 주조와 각인

  2. 브론즈상

  3. 테라코타

  4. 동전주화

  5. 목판인쇄의 출현 - 최초의 그래픽에 대한 기술적 복제

  6. 인쇄기술

  7. 문자의 기술적 복제

  8. 문학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옴 - 1450 ~ 1500년 2천만 권 인쇄

  9. 구텐베르크 인쇄기(1440년경) 이전에는 두 달에 1권 필사가 일반적

  10. 그러나 하나의 특수한 사례일 뿐

  11. 목판, 동판, 부식동판

  12. 19세기 초 - 석판

  13. 석판인쇄와 더불어 복제기술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도달

  14. 그래픽의 양산

  15. 일상적 사건의 회화화

  16. 활판인쇄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

  17. 석판인쇄 발명의 수십 년도 되지 않아 사진이 출현

  18. 이미지 복제로부터 손의 자유를 획득


언택트를 언급하며 수많은 예술장르의 전달 방식을 획일화 할 경우 대다수의 예술이 성립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이것을 가장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단어를 하나 골라보면, 당연히 아우라 AURA 라는 표현이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기술적 형상 technical image 에서는 이러한 아우라를 획득할 가능성이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소위 '언택트'를 논함에 있어서 남는 것은 바로 아우라를 가장 극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적 복제가 그 핵심에 놓인다.


연극, 음악, 전시 등 각종 수많은 장르들은 이제 '비디오'가 되어 버린다.


오늘의 디지털 사진의 경우를 예로 생각해 볼 때-

작업된 사진은 동일한 출력 장비와 여견을 갖추고 작업하면 - 종이, 프린터의 튜닝상태, 기타 여건 등 - 계속해서 동일한 작품이 생겨난다. 이것을 오직 나와 이 생산을 주관하는 테크니션에 의해 통제된다. 이러한 합의에 대한 신뢰가 실물 사진에 대한 '산업시대적 가치'를 유지시킨다.



탈산업 post-industrial 시대의

가치평가는, 혹은 유지는

어떤 식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통해 수많은 문제들을 발견하고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인구과잉 over population 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국가가 세울 대책이라는 것은 인구 감소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감소된 인구에서 어떻게 삶의 질을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류 문명사에서 늘상 힘의 근본이 되었던 인구기반의 국가제도를 극복할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기술들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혁명'이라는 말이 현실성 없는 단순히 역사적 기술을 위한 편의적 발상인 것처럼, 제 4차 산업혁명 역시 존재하지 않는 전환점일 뿐이다. 농업국가의 보편화 이전에도 사람들은 식물을 이용해 많은 것을 했고, 목축, 이주 생활 등과 병행했다는 것이 오늘날 역사 연구가 말해주는 실상이다. 제 4차 산업혁명 역시 슬그머니 삶의 일부로 자리 잡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CERN에서 전세계 최초의 웹사이트를 런칭한 것이 1989년이며,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런칭한 것이 2007년이다. 그리고 2020년, 오늘 우리는 스마트폰을 배제한 생활의 어려움을 경험하며,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포털 검색이 아닌 동영상 사이트의 하나인 '유튜브'를 통해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분야별 격차를 다소 무시하고 유튜브 내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질을 자세히 보면, '일반사회적 열화성'이 보인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매체와 그 소비 특징에 맞추어진 콘텐츠들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주장했던 마샬 맥루한 Marshall McLuhan 의 생각과 맞아 떨어진다.


틀이 바뀌면 그 속성이 바뀐다. 바우하우스의 형태는 기능에 존속한다 Form Follows Function 이라는 접근 방식이 항상 맞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연이 그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인공물 또한 그러한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매체가 바뀌면 예술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임을 고려해야 하며 지금과 같은 문제가 다시 찾아올 경우 더 나은 방식의 프로토콜 protocol 을 갖추어야 한다는 과제를 받은 것이다. 국가 또한 앞으로 인구 기반의 국력을 탈피할 전략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받았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그렇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지만).

BHANG Youngmoon Photography, Incheon,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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