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hang, Youngmoon

영화 매트릭스: 숟가락은 없다 - 숟가락이 없다고? #3

많은 사람들이 해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생소함과 동시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 정해 둔 개념이나 혹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오인하는데서 비롯되는 과오들의 해결을 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러한 과정이 당혹감이나 불쾌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현실이란 무엇일까?

생각이 발달해 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이 현실 밖에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어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우주 전체가 #시뮬레이션 #Simulation 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 밖을 논한다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아니, 설령 이 모든 것이 가상이라고 해도 몇 가지의 조건을 충족한다면 우리에게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쓸모도 없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현실'이라고 보는 것인가?

다음의 4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험은 그것이 현실임을 입증한다.


1. 충분한 정보

2. 현재(초기) 조건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

3.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

4. 노이즈


Any experience that meets the following four conditions prove that it is indeed a reality.


1. Sufficient information

2. Impossibility of understanding the present conditions

3. The unpredictability of the future

4. Noise



나는 현실 정의, 현실 인식, 현실 이해라는 주제로 사진연작 <다면체탐구 Exploring Polyhedron>를 기획/ 구성했다. 이 노트들은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에 대한 평론이나 해설이 아니라 그 작업 과정에서 만들었던 노트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매트릭스와 숟가락을 구부리느 장면으로 3개의 게시물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 같은 주제로 3개나 게시물이 만들어졌는데 정말 끝날까? ㅎㅎ - 그 장난 중 두 장면만 짚고 끝내려고 한다. 본래는 사진연작을 구상하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노트들인데, 어쩌다보니 작품 자체보다 영화 해설 같이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숟가락은 있다 There is a spoon



영화 매트릭스의 “숟가락은 없다 There is no spoon”고 말하는 장면은 그것이 무언가 심오한 진실을 가리키는 이정표 같이 생각되어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은 그냥 엉터리 신비주의적 접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나는 워쇼스키들이 매트릭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장난을 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본 관객들’은 매트릭스의 메시지 앞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런 ‘비트는 의도들’ 가운데에 꽤나 유명한 장면인 (1) 숟가락은 없다와 더불어 (2)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까지만 짚어보려 한다.


1. 숟가락은 없다

2.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의 저서


시작했으니 '숟가락은 없다’부터 가보면,

이것은 선문답이 아니다. 계속해서 설명을 늘어놨지만, 선문답은 그 중점이 문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답이 도출하는 ‘행위'에 있다. 기본적으로 선(禪, zen)은 인간의 언어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19, 20세기 유럽 철학자들도 이러한 접근을 내놓는다. 스투디움처럼 개념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설명이 되는 요소가 있는가 하면, 풍크툼처럼 뭔가 비틀고, 벗어나고, 찌르는 것도 있는 것이다. 선(禪)의 가장 주요한 레퍼런스 중 하나인 <벽암록> 제 1칙의 결론이 무엇인가?

몰라

不識

"I don't know."


영화의 함정과도 같은 '숟가락은 없다 There is no spoon’는 마음이 있다, 본질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과 대답들을 내놓지만 사실 이것들은 전부 부족한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선 zen’이 자리 잡을 무렵에는 이미 불교의 다양한 이론들이 동아시아에 들어와 있었을 시기다. 반야심경이 부정하는 것은 색(色, rupa) 뿐만이 아니다. 이 경전은 말 그대로 인간이 가진 정신의 작용도 똑같이 ‘공(空 empty)’하다고 말한다. 숟가락은 없는데 마음은 있다고 하면 '색즉시공(色卽是空)'까지만 읽고 반야심경을 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간 것이다. 반야심경의 부정은 정신 즉, 마음의 수동적 수용, 개념적 성립, 의식적 작용 모두를 부정한다. 거기에 더 나가면 깨달음도, 삶도 없다로 향해간다.


마음에 ‘상 image’이 있으면 곧 집착이 생긴다.

마음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집착이 생긴다.

가상 밖에 현실이 진정한 현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매트릭스 속의 삶은 거짓이고 시온 Zion 의 삶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이 모든 것이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 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dependent arising)이기 때문에 공(空)하다는 사실은 세상을 거대한 환(幻, maya)으로 취급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 뿐이다. 자꾸만 무언가 심오한 것, 환상적인 것, 실존과는 층위가 다른 뭔가 영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 환(幻, maya)이다. 우리 모두가 함정에 빠진다.

마음을 다스리면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다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마음을 다스려 숟가락을 구부리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초능력으로 타인을 제압하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을 갖지 않겠다는 것을 말한다.

마음으로 숟가락을 구부린다는 영화의 이 장면이야 말로 워쇼스키들이 그런 환상에 빠져 심오한 척 하는 일부 관객들을 대놓고 비웃는 장면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는 시뮬라크르를 긍정한다

영화의 초반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디스크 등을 숨겨두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의 저서가 암시적으로 등장한다. 나는 오히려 이 장면이 ‘내가 모르는 세상을 통찰하고 있다는 착각’을 보여주는 암시라고 여겨진다. 왜일까?


"시뮬라크르란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뮬라크르는 참된 것이다."

-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中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가 우리를 속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가 있다. 군터 안더스 Günter Anders 다. 그러면 왜 영화는 초반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를 암시적으로 보여줄까? 말 그대로, 네오는 자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세상에 반항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낮에는 불성실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컴퓨터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러한 기술을 통해 친구들과 거래를 하며 살아가는 반항적인 인물의 전형 즉, 나는 이 세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때문에 나는 세상의 일부가 될 생각이 없고, 이 세상은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사는 사람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런 네오가 모피어스의 음성을 듣고 세상의 실체에 다가섰을 때 알게되는 것은 지금까지 알았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계다.

세상을 안다고 확신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정작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심지어 오라클은 네오에게 대놓고 “너는 그(the One)가 아님”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런 기대는 모피어스나 트리니티로부터 온다. 마음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도, 유일자 the One 의 상도 사라질 때 ‘매트릭스’의 본질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시온 Zion 은 공격받고, 그러한 네오의 능력 자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키텍트를 만나는 순간 그것은 더 명확해진다. 종국에 가면 기계들의 도시에서 네오는 선언한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고.


  • 붓다는 이 모든 것이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 प्रतीत्यसमुत्पाद, dependent arising)에 집착할 것 없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라고 가르쳤다.

  • 공자는 배우고, 익히고, 먼 곳에서 오는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타인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 안에 만족이 있으니 그것이 군자의 삶이라고 가르쳤다.

  •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선포하고, 가난하고 병든자들을,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고 이웃은 물론 원수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현실이다.


"Empty, without holiness."

廓然無聖

텅 비었기에 성스러울 것도 없다

Bodhidharma


BHANG Youngmoon Photography, Incheon,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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