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족한 기록 때문에 잘못 전해진 것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천재들조차 완전히 새로운 상태의 무엇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이러한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완전히 새롭고,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을 처음부터 기대한다면 아무것도 만들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과 완전히 새롭다고 떠올린 생각이 사실은 비슷한 시기 많은 사람들이 동시적으로 쏟아내는 것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닫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거부하도록, 혹은 적어도 의심하도록 무장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한 상황에 있을 때는 새로운 상황에 놓인 경우에 비해 해마 hippocampus 라고 부르는 부위의 세포가 수백 배 빠르게 흥분한다. 해마는 편도체 amygdala 라고 하는 아주 작은 공 모양의 신경계와 연결돼 있다. 해마와 편도체 간의 연결은 익숙한 대상에 호감을 느끼고 새로운 대상에는 호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이다. - Kevin Ashton
'생물'이라는 관점에서 우리 자신들 보면 당연히 새로운 것을 거부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생소한 것을 만나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먹었을 때 문제가 없는 것들을 익숙하게 주변에 두어야 했고, 미지의 것을 만나면 부상이나 죽음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그것을 멀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존재들이다. 만일 숲을 거닐다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만나 죽음을 당하거나, 다치거나 혹은 새로운 어떤 식물을 먹어보다가 중독 등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고방식이 중요할까? 모르는 것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
아마도 숲속에서 등장하는 괴물이나 도깨비, 귀신 등과 같은 이야기들은 이러한 생활이 빚어낸 산물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새로운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 시기는 얼마되지 않는다. 현생인류의 출현을 약 20만년전으로 본다면, 지난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택해 생존과 안전한 생활을 하는 것을 선택해왔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창조 행위는 마법이 아니다. 창조는 노동에서 나온다.
Creating is not magic but work." - Kevin Ashton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영감이 아니라 not inspiration 실행, 수행 execution 에 기반을 둔다. 케빈 애쉬턴은 이 점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혹은 자신이 오래 보존하고, 강조하고 싶은 정보를 얻으면 신화적으로 채색하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이나 혁신가들의 천재성에 관한 이야기도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할 점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차별화된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
마침 미국의 TV 시리즈 <Billions>에 등장하는 Bobby Axelrod (Damian Lewis)의 충고를 통해 재미있는 점검표를 만들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비즈니스 관련 매체들의 아티클에서는 자주 등장했던 인용이다.
You offer a service you didn't invent,
a formula you didn't invent,
a delivery method you didn't invent.
Nothing about what you do is patentable or a unique user experience.
You haven't identified an isolated market segment,
haven't truly branded your concept.
직접 개발해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고, 약물 개발 공식이 자신이 개발한 것이 아니며, 배송 방식에서 새로움이 없고, 특허를 낸다거나 독자적인 사용자의 경험을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만의 브랜드 컨셉이 없는 사업에 투자할 투자자는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재미있게도 예술은 작업과 작품 프로세스 전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매우 일찍부터 경험해오고 있다. 저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 Bill Gates 가 기 드보르 Guy Debord 와 그의 운동에서 분리되어 나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Situationist International 의 접근 방법에서 사업개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인터뷰는 유명하다.
예술을 제공하는 방법,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의 저변,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방법,
분야 속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고
사람들이 작품 혹은 그러한 접근 방법을 통해 독자적인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을 통해
내 작업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주제를 확정하고 있는가?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고, 생각해야 할 것들도 많다. 감정의 표현은 분명 예술 활동의 매우 중요한 에너지이지만 반대로 작가가 거기에 함몰되어 들어가면 의미가 없어질 위험에 처할수도 있다. 인도의 한 성자가 들었던 비유 속 소금 인형이 바다의 깊이를 알기 위해 바다에 녹아 들어간다면 그것은 위대한 깨달음이 될 수 있지만, 바다와 하나가 된 시점에서 자신도 사라진 셈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쉽게 작품으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예술가는 작업의 단계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도 인지할 수 없다면 그 자체로 심오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새로운 것을 거부하게 되어있고,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에 감정적으로 동요된 반응을 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문명화된 인류의 사회에서 개인을 위협하는 가장 위협적인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사회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은 사회제도에 대한 다양한 항의를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러한 시도를 조금 다른 수원에서 길러온 물을 통해 적셔보고 싶다는 고민을 해보고 있다. 사회와 제도, 사회와 공동체, 관계 등을 성립시키는 것은 독자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의사소통 능력에 기반한다. 그리고 그 의사소통 능력은 세부적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특유의 능력 그리고 언어에 기반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인간의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언어를 고민하는 것을 통하여 무언가 표현이 아닌 내부를 관통하는 작업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지난 3년 동안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나는 사진은 개념적인 의미를 가진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 자신의 생각을 사진 위에 표현하고, 사진적 방향성과 수용 그리고 재해석이라는 과정 드러내는 작업에 집중하고자 한다. 나의 생각을 사진이라는 2차원적 표면과 작업과정 전반에 투영하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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