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대부분이 놀러갔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항상 '일'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보니 해외 각지를 방문할 때 마음에 여유가 충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 3년 동안 11개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재미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의 여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알제리로의 출장이 결정되었는데(2018년 10월) 아마 알제리에서 보낸 시간과 비행기와 공항에서 보낸 시간이 비슷했을 것이다. 이것이 과장이라고 해도 그만큼 오랜 시간을 이동에 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루프트한자 Lufthansa 를 이용했는데 낭비없는 시간 분배 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돌아보면 2015년 에든버러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같은 루프트한자 항공을 이용해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에서 경유한 것은 동일했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를 머물러야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다. 매번 출장으로 다니는 입장에서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가를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반대로 그것이 객관의 시각을 열어주는지도 모르겠다는. 일을 위한 출장이던, 즐거움을 위한 여행이던, 중요한 것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에 대해 최근 몇 가지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뇌에서 이미지를 처리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에 차이를 갖게 된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고, 실험에 따라서는 0 ~ 5세 구간과 40~80세 구간의 시간 경과, 그 흐름에 대한 느낌의 속도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뇌의 이미지 처리 과정이나 그와 관계된 시간의 흐름, 그 속도에 대한 상대적 경험이 이렇게 갈라지는 것은 인간의 수명과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던 익숙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고, 더 나아가서 익숙한 것을 항상 새롭게 보는 관점을 유지한다면 삶을 더 풍요롭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이런 시간 경험에 대한 부분에서도 근거가 생긴 셈이라고 본다.
4년이 지난 경험에 대해 돌아보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인들이 문화에 대한 생각이 각별한 것도 사실이다. 영국이 #융복합 개념을 논한 것이 1960년대 중반이니 우리보다 거의 반세기 정도 빠르다. 한편으로는 오래된 문화의 흔적들이 야만적 목표의 달성을 위한 수단이기도 했으니 아이러니다.
"선악을 털고 흠 없이 지고의 동일함에 도달"한다는 말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갈라져서 다른 이름을 취하지만 사실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역사와 사회적 층위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한다. <Harry Potter>의 본고장은 내게 Ken Follett의 소설 <The Pillars of The Earth>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살려주었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구조역학이라는 과학적 사고와 도전을 하는 이야기가 몇 백 년이 넘은 돌벽들로부터 강화되는 경험?
뇌의 이미지 처리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리적으로 인간의 뇌가 익숙한 정보에 수백배 빠르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각지에서의 경험을 확장하는데 깨닫게 하는 바가 크다. 이를테면 어떠한 장소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 평가하는 과정에 있어서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편견에 의존하는가를 보면 뇌의 생리적 특징을 고민해보는 것은 나의 관점을 확장하고 조금은 '덜 무식한 인생살이'를 방지해주는 안전장치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채로운 감각으로 - 활자화 된 정보에 의한 지성 뿐만 아니라 감성을 비롯 신체 전반이 반응할 수 있는 지식 체계로 - 준비된 사람이라면, 이것이 단순히 공부에 대한 압박이 아니라 삶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길임을 알게 된다면, 분명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담고 더 폭넓은 기쁨을 느끼며 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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