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hang, Youngmoon

자유 그리고 확신


자유가 선천적이라면, 실로 대격전에서의 승리에 대한 상으로 주어지는 대신,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어야 하며, 씨앗이 싹을 틔우듯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

어떤 사람의 현재 삶의 자유로운 순간은 평화가 자연스럽게 축적된 결과가 아니라, 불화와 화해, 진보와 후퇴, 전쟁과 평화로 구성된 갈등의 역사의 한 시점이다.

우리가 황금빛의 순수한 그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은 갈망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안전하게 태어나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워질 운명과 능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는 믿음의 삶 속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 Eugene H. Peterson

늦은 밤 나는 난데없이 갈라디아서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몇 줄을 읽어나갈 무렵, 나는 사도의 강력한 분노와 선언을 발견한다. 한때 목사가 되고자 했던 나에게 갈라디아서는 매우 익숙한 책이다. 이 책은 마틴 루터 Martin Luther 가 500년 전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그 근거가 되어 준 책이기도 했다. 때문에 갈라디아서는 실질적으로 개혁교회 (개신교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지만) 를 일으킨 근거를 담고 있다. 이 서신서는 약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초대 교회 공동체들을 향해 보낸 많은 서신 중 하나이다.

I am astonished that you are so quickly deserting the one who called you in the grace of Christ and are turning to a different gospel— not that there is another gospel, but there are some who are confusing you and want to pervert the gospel of Christ. But even if we or an angel from heaven should proclaim to you a gospel contrary to what we proclaimed to you, let that one be accursed! As we have said before, so now I repeat, if anyone proclaims to you a gospel contrary to what you received, let that one be accursed!

(Gal 1:6 - 9, NRSV)

바울은 사람들의 행위 (be turning to a different gospel)로 인해 매우 분노했다(be astonished).

어원을 보면 astonish 는 고대 프랑스어와 라틴어에서 왔다. 벼락을 맞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전적으로는 '놀라다'로 surprise 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내용의 전개를 보면 사도가 점잖게 자신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주저 없이 첫 말에 넣고 있는 표현이다. 번역자들은 이 점을 염두해 두었으리라.

그들이 취한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은 무엇이었을까? 소위 '율법주의'라는 믿음이었다.

재미있게도 기독교의 이단은 이미 기독교의 발생과 함께 태어났다. 사도가 전도여행을 다닌 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여전히 살아있을 무렵이니 이제 기독교가 막 태동하고 있던 단계였다. 당시에는 이것을 '종교'라는 틀로 이해하는 것조차 없었을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은 각 공동체(community) 안으로 파고들었다. 흔히 진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늘상 있는 위험인 모양이다.

처음 인용한 글을 쓴 유진 피터슨 Eugene Peterson 목사는 같은 책(Traveling Light, 우리 말로는 <자유>라는 타이틀로 번역되었다)에서 이 '이단'에 관해 적고 있다.

  1. 이단자는 전체 진리에서 단 하나의 항목만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2. 이단은 완전한 형체 대신 단편을 선택한다.

  3. 이는 모든 실재의 유기체적 충만함에 이르는 길을 막아 버린다.

  4. 그런 선택에는 단순화가 있지만, 헤아릴 수 없는 빈곤이 있다.

  5. 이단자는 우리 삶을 축소시킴으로써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

점잖은 표현으로 '내가 몹시 놀랐다(I am astonished)'라고 표현한 사도는 이내 선언한다.

"그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let that one be accursed!)!"

일상적으로 누군가를 저주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의 점잖은 표현을 단순히 놀랐다가 아니라 매우 분노했다고 해석하게 된 까닭도 그가 곧장 저주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사도는 매우 확신에 차있다.

저주를 쏟아낸다.

나는 사도의 이러한 강직함 속에서 그리고 '자유'라는 제목으로 갈라디아서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피터슨 목사의 글을 통해서 예술에 몸담은 사람의 마음을 배운다.

예술가는 어느 순간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 있다. 선배들의 경험들을 살펴보아도 그 순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 것 같다. 때문에 종종 예술가는 자신을 혐오하는 존재가 된다. 자유는 대격전을 통해 얻어진다. 자연스럽게 축적된 결과가 아니라, 불화와 화해, 진보와 후퇴, 전쟁과 평화로 구성된 갈등의 역사를 통해 얻어진다. 마치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며 만들어진다.

창작을 위해서는 과도할 정도의 확신을 구해야 할 경우도 있다. 전체를 관망하는 폭넓은 관점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깨달음의 순간 쏟아낸 작업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라고 일갈하는 사도의 태도를 배울 필요도 있다.

그리고,

자유의 순간, 그러한 일갈은 사람들을 일깨우지만

망상의 순간, 그러한 일갈은 광인으로 취급 받을 뿐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사도바울 #유진피터슨 #자유

BHANG Youngmoon Photography, Incheon,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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