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서가 설명하듯, 이제 '사고'라는 틀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인간들은 매개물 즉, 그림이나 글자 같은 것이 없으면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더 단편적인 즉, 그림을 찢어놓은 그림인 글자에 더 집착하고 있다. 널린 광고물, 셀 수 없이 주고 받는 텍스트, 걸개, 간판, 현수막 등등.
소셜미디에서는 난독증과 몰이해가 가득하고, 설령 그것을 극복해도 대부분 인간의 논리란 자신의 편견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건 꽤나 근본적이고, 뇌의 생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몸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도중에 중단하면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사고 역시 이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앉아서 무엇인가를 천천히 보고, 듣고, 음미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내 사진이 그런 역할 중 하나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암각화>
인류에게 '의식'과 '사고'라는 것이 생기면서 추상물들이 만들어진다. 먼 옛날에는 바위나 동굴벽에 그림을 그려 남겼고, 흙으로 된 땅에도 수많은 그림들이 그려지고 또 사라지지 않았을까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추상화의 단계가 한 단계 더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글자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한때는 글을 쓰고, 읽고 또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던 시대가 있었다.
오늘날, 소위 '기술적 영상'이라 불리우는 사진은 거기에서 추상화가 더 심화되어 각종 수학기호, 기술용어들에 의해 탄생된다. 그림에서 글자로, 글자가 기술 technology 을 그리고 그것이 다시 영상을 만들어 내는 시대이다. 기계공학적 용어에서부터 그것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수학기호들. 이것이 광학기술을 그리고 사진에 들어가는 다양하고 세밀한 기술들을 기술하는 언어로 사용된다. 이러한 수학기호들, 기술용어들, 도면과 그에 따른 사양서 등은 그 분야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동영상 - 사진 읽어주는 남자>
금태섭 TV
인류의 문명이 추상화의 단계를 높여갈 때마다 정보를 더 농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많은 견해가 있지만 동굴벽화는 기록물 이외에도 일종의 교육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를테면 그림으로 사냥해야 할 동물을 그려 어떤 동물을 잡아야 하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집단이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을 가르친 교육자료라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사냥감의 급소 위치를 기억했고 소의 뿔을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때문에 집단 구성원의 희생을 줄이고 더 효과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례에 대한 그림을 남겨 그 형식을 가르치고 중요한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추상화의 단계가 올라가며 현실적인 이득과 정치적 운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문자 기록물이 생겨나면서는 더 구체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폭넓은 교류가 가능해졌고, 숫자를 이용한 상거래 등이 빠른 속도로 발달했을 것이다. 먼 곳에 살고 있는 다른 인류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차이점이 곧 나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이들은 무역을 시작했다. 즉, 내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곳으로 가져가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계산해 나의 이득으로 만든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고등수학은 25세기를 거치며 세상의 복잡한 원리들을 몇 개의 기호로 적어낼 수 있기까지 발달했다. 니앱스와 다게레오의 손을 통해 나타난 사진술은 이러한 축약기술의 결과물들이다. 그러한 '기술적 영상', '기술적 복제'는 두 세기 가량 흐르며 디지털이라는 방식을 일반화시켰다. 이제 우리는 장치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인류역사상 전례없이 복잡한 기계를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농축적 전달의 허와 실
여기 금태섭 의원은 걸개에 쓰여진 글자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간다. 신체적 특징을 통해 그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그는 인류가 선택한 빠른 교류의 방법을 선택했다. 즉, 문자를 사용한 것이다. 플루서 Vilém Flusser 는 이런 문자를 "현실을 찢어 놓은 그림"이라고 말한다.
글자로 된 사인 sign 들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독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인 sign 들의 디자인 design 은 사람과 사람들 그리고 그 관계와 사회적 통념 등을 고민하며 만들어진다. 가능한한 높은 전달 가능성 그리고 설득력을 위해서다. 메시지가 적힌 걸개, 피켓 등을 들고 있다는 것은 의외로 사람들에게 들어가기 위한 많은 고민의 결과물인 것이다.
정보 전달을 위한 2차원 평면에는 금태섭이라는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 적혀 있고 그 역할로 인해 그는 단순히 개인이 아닌 공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구성하는 일부 중에서도 일부이다. 그는 과거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검사였으며 또한 변호사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겪은 한 명의 사람이다. 때문에 서울 강서(갑) 국회의원 금태섭이라는 글자들은 그의 일부를 찢어놓은 그림이며 그 조각은 실상 매우 작은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오독'과 문장의 구조와 같은 문제들을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인간이 직면한 현실이라는 것은 그러한 소위 언어의 사회적 규약과 관계된 것보다 언어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도구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깨달은 것은 중국이 기원전 6세기경, 유럽이 19세기 후반 경이다.
언어적인 구조와 논리적인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언어가 가진 문제라 볼 수 있다. 때문에 굴리엘모 마르코니(Il marchese Guglielmo Giovanni Maria Marconi)가 "무선 통신 기술의 발명이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과는 반대로 그러한 발명 이후에 연달아 터진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에는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의 소통을 강화해주고 다양한 부분에서의 협력으로 이끌어 줄 도구로 기대받고 있지만 그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편을 갈라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사진 속 문자 전달의 모습,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정치인을 더 강렬하게 표현
<사진 읽어주는 남자>라는 영상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 장면에서 다음 작업을 구상했다. "현 위치 광고문의"라고 쓰인 저 메시지는 사진 속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금태섭 의원이 들고 있는 메시지는 "현 위치 광고문의"에 그 힘을 모조리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 속 정치인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은 아마도 정치홍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정치인이 사람들과 동떨어지고,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이 보일수록 부정적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양한 장면들이 사용된다. 농성 중인 천막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 시장을 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 반찬 한 두가지와 먹는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등 여러가지다. 그렇지만 저렇게 걸개를 들고 광고판 사이에 서있는 모습은 그러한 장면들보다 더욱더 강렬하게 그가 그곳에 있었음을 담아낸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개신교의 신학 가운데에는 '축자영감설'과 같은 이론이 있는데 내 생각에 이러한 이론은 과거 유럽이 언어의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했기에 생겨났음에 틀림이 없다. 이 사진 속에 있는 글자들은 매우 명확한 메시지다. 그리고 저 화살표들을 보고 천장에 머리를 갔다박을 사람은 없다. 2차원적 평면에 놓인 기호에 대한 굉장히 복잡한 해석을 통해 우리는 이것이 '수직상승'이 아니라 '직진'이라는 의미 '45도 우상향으로 상승'이 아니라 진행방향으로 90도 눕힌 상태에서 가리키는 방향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이처럼 기호(記號, sign)는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이며 누군가 이 기호를 들이대는 순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형식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걸개가 실상은 국밥집에서 서민 흉내를 내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어나는 반응을 서로가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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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TV의 #사진_읽어주는_남자 는 금태섭 의원실, 주식회사 이야기꾼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