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참평화 없어라 Nulla in mundo pax sincera
- Bhang, Youngmoon

- 9월 20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21일

Nulla in mundo pax sincera
(In this world there is no true peace)
"Nulla in mundo pax sincera
sine felle; pura et vera,
dulcis Jesu, est in te.
Inter poenas et tormenta
vivit anima contenta
casti amoris sola spe.
Blando colore oculos mundus decepit
at occulto vulnere corda conficit;
fugiamus ridentem, vitemus sequentem,
nam delicias ostentando arte secura
vellet ludendo superare.
Spirat anguis
inter flores et colores
explicando tegit fel.
Sed occulto factus ore
homo demens in amore
saepe lambit quasi mel." (from an anonymous Latin text)
비발디(A. Vivaldi, 1678~ 1741)의 성악곡을 통해 잘 알려진 라틴어 시 <Nulla in mundo pax sincera>는 “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탄식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 경험되는 평화가 언제나 조건적이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거짓되다는 냉혹한 진단이다. 절망과 가능성, 결핍과 열망이 교차하는 이 구조는 20세기 한국전쟁의 참혹한 역사와 그에 대한 문화적 응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1950년 9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미군은 월미도에 대규모 선제 폭격을 가했다. 군사적 요충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 땅에는 100여 가구, 6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마을은 불타올랐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군사작전의 당위성이라는 명분으로 주민들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취급되었다. 이처럼 월미도의 현대사에는 “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다 Nulla in mundo pax sincera”는 체험이 그 역사 속에 새겨져있다.
폭격 이후 월미도는 즉시 군사기지로 전환되었고, 주민들은 50년 넘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에 이어, 귀향 불가능과 역사적 망각이라는 구조적 폭력이 이어졌다. 인천상륙작전을 위대한 승리의 서사로 기념하지만, 민간인 희생과 수십 년 침묵의 강요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월미도의 주민들에게 그것은 ‘거짓된 평화, 쓰라린 인간 조건’이었다.
1997년 결성된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를 시작으로, 생존자들과 유족은 진실 규명과 기억 회복을 위해 긴 투쟁을 이어갔다.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는 마침내 월미도 사건을 ‘미군 폭격에 의한 민간인 희생’으로 공식 인정했고, 2021년에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그 비문에는 ‘미국의 폭격’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천평화축제다. 2002년 첫 ‘월미산 평화축제’로 시작된 이 축제는 군사기지가 물러난 자리에 희생자들의 기억을 심고, 전쟁의 공간을 평화의 장으로 전환하는 시도였다. 국방부와 인천시가 상륙작전 재연 행사로 ‘승리의 도시’를 기념할 때, 평화축제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생명을 기리는 대항-기념(counter-commemoration)으로 자리 잡았다. 이 축제는 공식 서사가 가려버린 ‘과정 속의 희생’을 드러내고, 슬픔의 기억을 연대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실천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Nulla in mundo pax sincera>를 떠올리게 된다. 시는 세상에 순수한 평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믿음·희망·사랑 속에서 평화를 가능케 한다고 노래한다. 월미도의 현실은 전자의 진술을 증명했지만, 인천평화축제는 후자의 비전을 향한다. 불가능했던 평화를 예술과 연대를 통해 현실의 가능성으로 바꾸어낸 것이다. 축제는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과 공동체적 희망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인천평화축제'의 의미는 명확하다.
그것은 "Nulla in mundo pax sincera"가 외치는 “평화 없음”의 세계 속에서,
예술과 문화적 실천을 통해 “가능한 평화”를 끌어내는 장치다.
월미도의 희생자들이 겪었던 절망을 부정하지 않고,
그 위에서 희망과 사랑의 연대를 세워가는 과정이다.
인천평화축제는 역사적 상처와 삶을 향한 열망이 만나는 지점에서,
평화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적 현실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다.
제 24회 인천평화축제 포스터 사진 관련 작가노트

나는 이번 평화축제와 관련한 사진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진에 표현되는 침묵과 고요함을 통해 일시적으로 정지된 역치적 공간 - temporarily suspended liminal zone - 을 담아내고자 했다.
포스터 속 사진은 교동도 북단에 위치한 망향대. 지평선처럼 늘어선 철망 뒤로는 황해남도가 보인다.
여전히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가던 9월 초반이지만, 야외 활동을 자처하며 교동, 석모, 강화를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을 했던 이유는 '2025 인천평화축제'의 의미와 연결되는 인천의 공간들을 사진에 담아보기 위해서였다. 사진 속에 뭔가 황량할 정도의 어떤 '침묵감'을 담아내려 했던 이유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때로는 다소 생소한 공간들을 담아낸 것은 '아우라' 같은 것이 아니라 '일상 공간의 낯섦'을 통해 역치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동일하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 많은 것들은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접해보면 상당히 자주 경험된다. 나는 2013년 서울시 사회혁신 프로젝트의 사진을 담당했었고, 지난 몇 년 동안은 이화여대와 유한킴벌리가 진행하는 여성활동가 프로그램의 사진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시민단체, 비영리단체들의 '냄새'를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 사회 활동가들의 세상 -- 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숨, 쉼>이라는 타이틀, 축제 구성안을 받고 진행한 작업은 일종의 '문지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호흡의 변곡점(inflection point), 즉 흡기에서 호기로, 호기에서 다시 흡기로 넘어가는 순간은 단순한 공기의 이동이 아니라 일종의 음악적 반전이다. 횡경막이 0점에 머무르는 이 순간은 섬세한 균형 지점이며, 전환의 순간이다. 수학적으로 '변곡점'이 성립하려면 곡률, 변화값이 0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 + 와 같은 부호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의미있는 은유로 쓰일 수 있다.
현실의 언어와 관습, 제도의 흐름을 일순간 멈추고, 그 멈춤 속에서 다른 층위의 감각과 사고를 불러들이고, 일상적, 직관적 단순 의미망을 정지시켜본다. 그 공백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건너가는 공간(threshold space)을 연다. 이 '멈춤'은 전환을 위한 간극이며, 이 간극이 예술을 만든다.
예술 표현 역시 이와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감각이 흔들리고 멈추며, 다시 새로운 인식으로 넘어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예술은 존재한다. 예술이란 결과물이 아니라, 흐름을 멈추고 다시 이어주는 리듬, 음악적 행위다.
예술은 호흡의 변곡점처럼 짧고 미묘한 멈춤에서 현현한다. 그것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멈춤을 통해 창발적으로 새로움과 접속되는 ‘장‘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술이 가진 근본적 힘은 결과물에 있지 않고, 바로 이 리듬과 간극, 그리고 전환의 경험을 창출하는 일종의 음악적 능력에 있다. 호흡이 우리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리듬이듯, 예술은 인간과 사회를 갱신하는 리듬이다.
2025년 9월 21일에 방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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