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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4차 산업혁명의 언어적 모순


사진적 동작은,

그것이 현상에 대해 수많은 관점으로부터 근접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 '현상학적 회의'의 동작이다.

이러한 회의의 '수학적 구조'는 장치 프로그램에 의해 미리 윤곽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회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이다.

(1) 사진사의 실천은 이데올로기 적대적이다. 이데올로기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단 하나의 관점을 고집하는 것이다. 사진사는 자신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때조차 탈이데올로기적으로 행동한다.

(2) 사진사의 실천은 하나의 프로그램에 묶여져 있다. 사진사는 비록 어떤 프로그램에 대항해서 행동한다고 믿고 있을 때조차도, 그 장치 프로그램의 내부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탈산업적 행동에 적용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 적대적이라는 의미에서 현상학적이며, 프로그래밍된 행동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측면 (가령 사진의 대량생산이라는 측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프로그래밍은 탈이데올로기적 조작이기 때문이다.

- 빌렘 플루서 Vilém Flusser

정치권에서 사진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이 '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세계 경제포럼의 회장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다보스 포럼에서 '제 4차 산업혁명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그 표현이 다소 모순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경제포럼'의 수장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그 모순을 그냥 대강 눈감고 넘어간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클라우스 슈밥 자신이야말로 이 변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황은 그가 "제 4차 산업혁명은 단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꾸고 있다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is not only changing what we do but who we are"라고 말한데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4차 산업과는 무관하게 카메라라는 장치 apparatus 에 대해 담담하게 적고 있는 빌렘 플루서 Vilém Flusser 의 말속에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한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적혀있는지도 모른다.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이것은 탈산업적 행동을 유발하는 변화이다.

20세기는 분명 대량 생산 기반의 산업화 시대였다. 기계라는 상수에 인간을 적응시켜 생산력을 극대화했던 시대다. '생산성'의 화두는 모든 조직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러나 앞으로의 문제는 좀 달라보인다.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의 직업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앞으로의 변화를 정말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앞으로의 인간의 행동은 말 그대로 현상학적 회의 phenomenological doubt 의 행동들이 될 것이다. 어떠한 생산성이나 효율을 생각하기보다는 '이것은 가능할까?'라는 것이 더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매트릭스 The Matrix 와 같은 영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문이 우리를 움직인다 the question that drives us'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프로그램된 장치들 속에서 우리는 현상학적 회의의 동작을 계속하게 되고, 이것은 플루서의 말처럼 우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고 있다고 믿을 때조차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든다. 인간은 작동인이며 프로그램 속에서 유희한다. 이것은 탈산업적 인간의 역할이다.

앞으로 이것은 인구구조와 더불어 사회에 던져지는 가장 큰 의문이자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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