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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압축은 복잡성 제거가 아니라, 복잡성이 발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계로 수렴하는 것

작성자 사진: Bhang, Youngmoon
Bhang, Youngmoon
8월 29일
3분 분량

미니멀리즘은 제거의 미학이 아니라 수렴의 인식론이다. 구조적 압축은 복잡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성이 발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계로 수렴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없애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남겨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구조적 압축은 그 요점이 정보의 양을 줄이는 행위라기보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관계와 조건을 추출하여 그것의 생성적 토대(generative ground)에 접근하는 과정인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감산’이 아니라 ‘수렴’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이러한 관점에서는 ‘단순함’과 ‘핵심’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것은 요소가 적은 상태라 할 수 있지만, ‘핵심’은 더 이상 제거하면 구조 자체가 붕괴하는 상태다. 따라서 미니멀리즘적 사고의 극점은 가장 적은 것을 갖는 데 있지 않고, 하나의 구조가 자신을 성립시키는 최소 조건에 도달하는 데 있다.

나는 기하학을 토대로 하는 음악을 구상해오면서 미학이나 역사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활동을 고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의 토대에는 핵심의 추출이라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정다면체를 몇 개의 선과 면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단순한 도형의 축약이 아니라, 그 형태를 성립시키는 대칭·각도·연결성·곡률이라는 관계의 압축이다. 음악에서도 하나의 화음이나 음정이 단순히 적은 음의 집합이 아니라, 그 안에 긴장과 방향성, 공간적 관계를 압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식 비판(critique of cognition)이라는 2018년 이후 일관된 나의 방향성이 연결된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모델을 압축하지만, 문제는 그 압축된 모델을 세계 자체로 착각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구조적 압축은 세계를 단순화하여 닫아버리는 것 즉, 닫힌 세계관을 세워 소통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복잡성을 발생시키는 최소 구조를 드러내면서 다시 열린 상태로 돌려놓는 압축이어야 하는 것이다.

 


본질은 가장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관계의 구조이다.

이는 내가 경계해 온 환원주의와의 결정적 구별이다. 환원주의가 전체를 구성요소의 합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구조적 압축은 오히려 구성요소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전체의 조건을 찾아가는 행위다. 즉, less things가 아니라 less assumptions, but more relations에 가까운 사고다. 현대 과학이 그토록 눈부신 성취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매우 무기력한 모습이나 폐쇄적 사고를 표출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전체는 구성요소의 합이 아니다. 구성요소 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전체’라는 관점은 일견 차이가 없어보여도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나의 ‘다양체탐구’ 역시 단순히 기하학적 복잡성을 다루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복잡한 세계를 몇 가지 근본적인 관계—연결, 거리, 곡률, 방향, 대칭, 국소성과 전체성—로 압축하면서도 그 압축이 세계를 대체하지 않도록 하는 실험이라 할 수 있게 된다.

‘축소(reduction)’와 ‘도출(derivation)’은 결과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사고의 방향은 정반대가 된다.


  • 축소는 전체에서 일부를 덜어내는 방향을 갖는다: A → A − α − β − γ

  • 구조적 재구성은 전체를 성립시키는 관계를 찾아 그것을 새로운 조건에서 다시 작동시키는 방향을 갖는다: A → 핵심 관계 R → 새로운 조건 B에서 R을 재구성


따라서 농악에서 사물놀이로의 이행을 이렇게 볼 수 있다. 농악의 공간적 행렬, 행렬(行列)·춤·연희·놀이·악기·장단·공동체적 상호작용 전체를 단순히 축소해서 사물놀이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복합적인 체계 안에서 사물(四物)이 만들어내는 리듬적·상호작용적 핵심을 추출하고, 그것을 무대라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연행 조건 속에서 재조직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하는 것은 ‘농악’이라는 이름이 포착하는 범위다.

‘농악(農樂)’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는 농민·농업의 음악이라는 의미가 전면으로 나서게 된다. 그런데 실제 전통적으로 이러한 행위들은 농업 노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을 공동체의 굿, 의례, 축제, 유희, 전문 연희패, 남사당패, 걸립, 판굿, 춤, 연극, 음악 등이 서로 얽힌 종합적인 연희 체계였음을 간과하는 표현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풍물’이나 ‘풍물굿’이라는 표현이 더 넓은 현상을 포착한다는 주장이 발생한다. 특히 ‘농악’이라는 명칭이 일제강점기에 행정적으로 정착되면서 전통 연행의 다층적인 성격을 농업이라는 한 기능으로 환원해버린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는 점은 반드시 숙지해야 할 부분이다. 1997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자료에서도 이 문제를 상당히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농악’이라는 말이 일본이 만든 명칭이라는 인식과 함께, 일반인들이 ‘풍물’보다 ‘농악’에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물놀이가 농악 일반을 대신해서 인식되는 현상까지 지적한다.

농악 → 사물놀이는 ‘많은 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 농악이라는 거대한 연행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생성 원리를 추출하여 다른 조건에서도 작동하도록 압축한 사건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핵심’이 원래부터 내부에 완성된 형태로 들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구조적 재구성은 숨겨진 본질을 발굴하는 것인 동시에, 새로운 조건 속에서 무엇이 핵심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구조적 압축(structural compression)’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구조적 도출(structural derivation)’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놀이는 농악의 축소판이라기보다, 전통적으로 이뤄지던 다양한 행위들의 구조적 핵심을 다른 매체적·공간적 조건으로 변환한 일종의 구조적 재구성(structural reconfiguration)으로 볼 수 있다.


  • 축소 reduction — 요소를 제거한다.

  • 추출 extraction — 중요한 요소를 골라낸다.

  • 압축 compression — 복잡한 구조를 더 적은 표현으로 부호화한다.

  • 구조적 도출 structural derivation — 원래의 복합적 관계에서 생성 원리를 도출한다.

  • 구조적 재구성 structural reconfiguration — 도출된 원리를 새로운 조건에서 다시 작동시킨다.


이렇게 사물놀이는 농악의 ‘미니멀 버전’이 아니라 농악의 구조적 도출을 통한 새로운 생성 체계로 다뤄지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의 정다면체 → 음악적 구조, 정오각형 → 곡률, 농악 → 사물놀이 → 인식 조건의 압축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묶어줄 가능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성을 발생시키는 관계를 도출하고, 그것을 새로운 조건에서 재구성한다.

이것이 나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상당히 강력한 문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내가 꽤 일관되게 경계해오고 있는 환원주의와 구별되는 ‘비환원적 압축(non-reductive compression)’이라는 개념까지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본다.

미니멀리즘은 원형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추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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