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기
- Bhang, Youngmoon

- 22시간 전
- 2분 분량
내가 진부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본기'에 가까운 고대 그리스로부터의 수학과 음악의 상관관계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음악사의 기원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과정이다. 먼 옛날 이집트와 바빌론에서 수학이 측량과 천문 관측 같은 실용적 목적을 위해 발전했다면,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질서의 언어로 확장하는 '유희'를 시작한다. 그 옛날 피타고라스는 음 하나가 아니라 음들 사이의 비율에서 우주의 조화를 발견했고, 플라톤은 음악을 수학·천문학과 함께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학문으로 보기도 했다. 필롤라오스의 '제한과 무한의 조화', 아르키타스의 음악과 기하학, 『티마이오스』의 우주론, 나아가 케플러의 『우주의 조화(Harmonices Mundi)』에 이르렀고, 이렇듯 음악을 우주와 인식의 문제로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토대가 되는 고전들과 고민들은 오늘날 서양철학 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의 사유에 그 영향을 미친다.
이는 내가 구현하려는 음악과도 밀접하다. 재즈의 방법론들을 통해 도미넌트 코드 위에 다양한 앨터드 텐션을 다루게 되면, 그것을 현대 수학의 '다양체(manifold)'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완전5도의 국소적 안정성, 평균율이 만들어내는 곡률, 트라이톤을 가로지르는 연결, 즉흥연주를 다양체 위를 이동하는 경로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피타고라스가 말했던 '관계의 질서'를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 작업의 시작에서 현대음악이 보여준 음계의 해체, 미분의 발견 혹은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음계들을 수용하고 그것들의 '이산적 특징'들을 수용하여, '내가 다루는 음악은 서양음악의 전통 위에서 시작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고대의 우주론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을 위한 모델과 세계 자체를 혼동하지 않는 인식 비판' 위에서, 인간이 어떻게 질서를 구성하고 경험하는지를 탐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나의 작업은 고대 그리스의 사유를 토대로 정리해 나간다는 다소 보수적인 토대를 지닌 혁신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음악은 이미 주어진 우주의 질서를 재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와 가능성의 공간을 탐색하는 인식의 실천이다.
문득 30여 년 전 'Crystal Line Sphere'라는 이름에 강하게 이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 어린 당시의 내게는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지만, 어떤 투명한 질서와 우주적 구조에 대한 이끌림이 있었다. 이제 그 직관을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현대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즉흥연주를 통해 다시 만나고자 한다. 어쩌면 어린 시절 음악에 대한 강렬한 열정 속에서 막연히 품고 있었던 질문을, 30년의 시간 거친 지금에서야 비로소 개념과 언어, 그리고 소리로 구현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의 작업은 단순히 새로운 음향을,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세계(世界, cosmos the world)는 어떤 질서로 이해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그 질서를 어떻게 예술로 경험하는가'라는 아주 오래된 질문에 대한 지금 나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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