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님스키(Nicholas Slonimsky)의 수학적 음악학과 모던 재즈의 구조적 수렴
- Bhang, Youngmoon

- 4월 19일
- 6분 분량
The Structural Convergence of Slonimsky's Mathematical Musicology and Modern Jazz Harmony
기능화성적 관점에 얽매인 목적론적 형태의 음악에 대한 20세기의 행보는 구조주의적 접근을 비롯하여, 대칭적 특징들에 근거한 반음계적 덩어리로의 변혁이라는 방향성을 갖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환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인물들은 수도 없이 많으나 그 가운데 러시아 출신의 ‘지식인’ 슬로님스키(Nicholas Slonimsky)의 1947년 저작 <음계와 선율 패턴의 어휘집(Thesaurus of Scales and Melodic Patterns)>를 살펴보는 것에는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수학적으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것을 통해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서구 조성음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서양 고전음악은 전통적인 장/단음계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슬로님스키는 그의 책 서문에서 1911년 이탈리아 음악가 도메니코 알랄레오나(Domenico Alaleona)나 1927년 알로이스 하바(Alois Haba) 등이 이미 옥타브를 균등한 간격으로 나누는(equal division) 새로운 음계를 제안했음을 언급하며, 자신의 기하학적 분할법이 이러한 클래식 전위(Avant-garde) 실험의 연장선이자 집대성임을 분명히 한다.
이렇듯 슬로님스키는 분명 동시대의 클래식 작품들로부터 그의 독자적 아이디어들을 얻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현대 재즈 연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연습 지침으로 수용되었다. 이러한 수용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은 물론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수많은 연주자들과 기타연주자 알란 홀즈워스(Allan Holdsworth)의 음악에서도 그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슬로님스키의 저작이 재즈 연주에서 혁신을 추구했던 연주자들의 탐구에서 수렴적 탐색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슬로님스키의 음열에 대한 수학적 가설과 그 탐색이 즉흥연주(improvisation)의 고도화를 위한 방법으로 수용된 지점을 살펴보면 그 저변에는 물리적이고 음향적인 원리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즈 연주자들이 슬로님스키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연습한 저변에는 도미넌트 7화음(Dominant 7th)을 다루는 방식이 현대 재즈 화성학의 핵심 원리들과 일치한다는 지점이 매우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클래식과 현대 음악 작곡을 위해 수학적으로 고안된 이 책이 왜 존 콜트레인 같은 재즈 거장들에게 건축적 도구가 될 수 있었는지, 바로 이 공통점들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1. 5음이 생략된 '마스터 코드'와 재즈의 '가이드 톤(Guide Tones)'
슬로님스키는 선율 패턴에 화성을 입히는 방법으로 '마스터 코드(Master Chords)'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는 이 코드를 "5음이 생략된 딸림 7화음(dominant-seventh chords with the fifth omitted)"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재즈 화성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가이드 톤(3음과 7음) 기반의 ‘쉘 보이싱(Shell Voicing)’과 동일하다. 재즈에서는 종종 코드의 5th 노트가 코드의 성질을 결정하는 데 불필요하다고 보고, 도미넌트 특유의 불안정한 긴장감(트라이톤)을 형성하는 3음과 7음으로 소리의 뼈대를 잡는다. 슬로님스키 역시 화성적 뼈대를 구축하기 위해 불필요한 5음을 덜어내는 수학적·구조적 직관을 보여준다. 서구 전통 화성법에서 3도와 6도를 중시하는 것, 5도와 8도의 병진행, 은복진행을 중시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다.
서구 전통 화성학에서 3도와 6도를 중시하고 5도와 8도의 병진행/은복진행을 금지하는 것은 각 성부(voice)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음향적 토대 유지와 으뜸화음(Tonic)을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teleological)인 방향성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즉, 목적지를 향한 우아한 움직임의 추구가 "어떻게 하면 여러 개의 독립된 선율(성부)들이 서로 부딪히거나 섞이지 않으면서(최소 이동의 원리 적용), V → I 이라는 필연적인 목적지(해결)를 향해 가장 경제적이고 매끄럽게 전진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전통 화성법과 대위법의 까다로운 규칙들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슬로님스키가 고안한 '마스터 코드(Master Chords)'에서 완전 5음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은 전통적 조성이라는 관점보다 기하학적이고 복조성(bitonality)적인 공간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구조적·수학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2. 마스터 코드의 이조(Transpose)와 재즈의 '트라이톤 대리 화음(Tritone Substitution)'
슬로님스키는 그의 책 <음계와 선율패턴의 어휘집 Thesaurus of Scales and Melodic Patterns> 에서 "주어진 진행의 화성화에 적합한 어떤 마스터 코드든 트라이톤(증4도) 위나 아래로 이조하여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명시한 부분은 재즈 화성학의 가장 특징적인 기법 중 하나인 '증 4도 대리 tritone substitution'과 일치한다. 앞서서 언급했듯이 ‘마스터 코드’는 기본적으로 근음(Root), 장3음(Major 3rd), 단7음(Minor 7th)으로만 구성되며 완전 5음이 의도적으로 생략된 도미넌트 7화음을 의미한다("The second type of harmonization is effected by means of Master Chords. These Master Chords are dominant-seventh chords with the fifth omitted." - Slonimsky). 재즈 연주자들은 G7과 D♭7이 핵심 뼈대인 3음과 7음(B와 F)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완벽하게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감각적으로 발견해 냈지만, 슬로님스키는 특정한 패턴에 부여된 화성이 기하학적 대칭성에 의해 트라이톤 간격으로 완벽히 치환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3. 상부 구조(Upper Structures)와 텐션의 생성
슬로님스키는 5음이 생략된 도미넌트 7th 마스터 코드가 자신이 고안한 선율 패턴들의 음재료와 결합할 때, 자연스럽게 "7화음, 9화음, 또는 온음계 화음(whole-tone chords) 형태의 화성적 구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이 또한 찰리 파커 시기부터 비밥 연주자들이 뼈대가 되는 기본 도미넌트 코드 위에 상위 확장음(9th, 11th, 13th)이나 변화 화음(altered tones)을 덧입혀 복잡한 텐션(Tension)을 만들어내던 재즈의 즉흥연주 진화 과정과 일치한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는 "Cherokee"의 코드 진행 위에서 연주하던 중 "코드의 상위 인터벌을 멜로디 라인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을 개발한다. 흔히 말하는 7도 위에 있는 음들이다. 소위 이러한 ‘상위 확장음(Upper Extensions)’을 통한 텐션의 생성과 관련한 파커의 깨달음은 곧바로 9도, 11도, 13도와 같은 위쪽 확장음들(upper extensions)과 앨터드 코드(altered chord) 구성음들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이어졌다. 즉, 반음계적 연주들이 확대되는 것이다. 비밥 이전의 스윙이 7화음 중심이었다면, 파커는 텐션음과 앨터드 노트들을 즉흥연주의 전면에 내세우며 화성의 복잡성을 극대화한 최대 공헌자 중 한 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슬로님스키의 '수렴적 발견'이 '마스터 코드'와 '상부 구조'라는 원리로 현장에서 그대로 발현된 파커의 방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4. 도미넌트-토닉 순환(V-I 진행)의 강조
슬로님스키는 4도(Diatessaron)와 5도(Diapente) 진행 패턴들이 "도미넌트-토닉 순환(Dominant-Tonic cycle)의 특징적인 화성화에 적합하다"고 덧붙인다. 끊임없이 긴장(V)을 구축하고 으뜸화음(I)으로 이완하는 재즈의 가장 기본적인 투-파이브-원(ii-V-I) 기능 화성의 해결 운동은 슬로님스키의 연산적 접근 안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슬로님스키는 특정한 장르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음의 수학적 가능성'을 토대로 연구했다. 거기서 도출된 결론들이, 재즈 음악가들이 치열한 잼 세션 속에서 직관과 귀로 쟁취해 낸 모던 재즈 화성학의 정수들(가이드 톤, 텐션, 트라이톤 대리화음)과 일치한다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콜트레인이 왜 이 책을 수평적인 멜로디 연습장 이상으로, 도미넌트 화성을 극한으로 변형하고 분할하기 위한 '절차적 엔진'으로 신뢰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며, 이러한 움직임은 콜트레인 체인지(Coltrane Change/ Coltrane Substitution)라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콜트레인은 슬로님스키가 제시한 옥타브의 기하학적 분할 중에서도 옥타브를 장3도 간격으로 3등분하는 '디톤 진행(Ditone Progression)'에 깊이 매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조성을 장3도 간격(예: B - G - E♭)으로 건너뛰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했던 것인지, 콜트레인은 슬로님스키가 4도/5도 진행에서 강조한 도미넌트-토닉(V-I) 순환의 원리를 끌어온다. 장3도 아래의 새로운 타겟 코드로 이동할 때마다, 그 코드로 향해 5도 하행(또는 4도 상행)하여 완벽하게 해결되는 '도미넌트 7th 코드'를 촘촘하게 때려 넣는 것은 슬로님스키가 찾아낸 패턴들과 재즈적 음향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두 원리가 결합하여 탄생한 결정판이 “Giant Steps”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로 하는 조성(B, G, E♭)은 슬로님스키의 '디톤 진행'을 따라 정확히 장3도씩 하행하며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각 조성으로 진입하기 직전에는 반드시 해당 조성을 향하는 도미넌트 7th 코드(D7, B♭7)를 두어 강력한 도미넌트-토닉(V-I) 해결감을 부여한다.
창작활동과 수렴 진화
클래식이나 현대음악을 위한 수학적 접근과 흑인 재즈 음악가들의 실천적 문법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이유는, 음악이라는 매체가 가진 보편적인 물리적 법칙과 인간의 인지적 본능이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한 ‘수렴적 발견(convergent discovery)’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케빈 애시턴(Kevin Ashton)의 저서 <How to Fly a Horse>에서 제시된 '수렴적 발견(convergent discovery)'이라는 개념을 짚어보자. 이는 예술적 창작 활동을 생물학의 '수렴 진화'와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창조적 활동, 창작은 신비로운 영감이 아닌 충분히 설명 가능한 절차적 단계들을 따른다는 점은 예술적 창조를 신화적 서사의 영역에서 그 신화적 껍데기를 벗기고 해체하여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준다.
A. 환경적 압력: '기능 화성학'이라는 한계 극복
20세기 초중반, 클래식 작곡가들과 흑인 재즈 연주자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에 있었지만 '목적론적이고 수평적인 전통 기능 화성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동일한 환경적(미학적) 압력에 직면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통 체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양측은 모두 새로운 생존 전략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B. 물리적·음향학적 진실로의 수렴 진화
슬로님스키는 기하학적 분할(대칭적 구조, 옥타브의 균등 분할)을 통해 비기능적인 '알고리즘'을 연역적으로 도출해 냈다. 반면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같은 재즈 거장들은 클럽 연주, 잼 세션이라는 현장에서 귀납적인 실험을 거듭했다. 이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경로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음향적 진실과 조우하며 정확히 동일한 구조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C. 인지적 조건에 따른 '최소 이동(Minimal Motion)'의 발견
수렴적 발견의 기저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적 조건이 뼈대로 작동한다. 바흐 시대의 대위법부터 현대의 네오-리만 이론(Neo-Riemannian Theory), 그리고 재즈 화성학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음악가들은 본능적으로 성부와 성부를 연결할 때 '최소 이동'과 '대칭적 구조'를 선호하는 인간의 인지적 특성을 토대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경향을 보인다. <Giant Steps>의 대칭적 분할이나 슬로님스키의 수학적 패턴 역시, 화성적 지형 위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우아한 길을 찾아내려는 인지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시턴의 관점을 빌려오면 창작 활동이란 보편적인 자연의 법칙(물리적·음향학적 진실)과 인간의 인지적 조건(최소 이동, 대칭성 선호)이라는 거대한 토대 위에서 최적의 해답을 발굴해 내는 진화론적 발견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서양 고전 화성학이라는 지배적 체계로부터의 탈주라는 공통의 과제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렴적 발견'을 통해 동일한 형태를 얻도록 만든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바그너,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와 같은 클래식/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끊임없이 긴장을 해결해야 하는 전통적인 장/단음계와 목적론적 기능 화성학(수평적 진행)에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이와 완전히 동일하게, 1940~50년대의 찰리 파커나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재즈 혁신가들 역시 복잡한 코드 체인지를 돌파해야 하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전통 서양 음악의 규칙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측 모두 기하학적 대칭성, 옥타브의 균등 분할, 혹은 완전히 다른 톤 중력(Tonal Gravity)의 세계를 대안으로 선택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클래식/현대음악을 위한 추상적인 수학적 접근과 재즈의 근간은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소리라는 우주의 물리적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동일한 정점으로 수렴한다.
생물학에서 수렴 진화가 서로 다른 종이 비슷한 환경적 제약 속에서 독립적으로 유사한 신체 구조를 진화시키는 현상인 것처럼, 애시턴은 창작 역시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에 있는 창작자들이 동일한 인지적 조건이나 물리적 법칙을 마주할 때 독립적으로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위대한 창조는 천재적 영감으로 빚어내는 마법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치열한 적응 과정이며, 서로 독립된 여정들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수렴 진화의 미학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니콜라스 슬로님스키의 연역적이고 수학적인 음악학(추상적 탐구)과 재즈 거장들의 귀납적이고 신체적인 즉흥연주 실천 사이의 구조적 수렴이다. 더군다나 슬로님스키는 스크랴빈(Scriabin), 바르토크(Bartók), 라벨(Ravel) 등 클래식 거장들이 직관적으로 뚫어놓았던 비기능적(non-functional), 대칭적 화성의 구멍들을 완벽한 기하학적·수학적 알고리즘으로 확장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 보편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연산 문법은 앞선 클래식 음악가들의 ‘직관’에서 시작되었고, 바다를 건너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라는 흑인 재즈 거장의 손에 쥐어졌을 때, 비밥의 화성적 한계를 타파하는, 음악학자 마크 해너포트(Marc Hannaford)의 개념을 빌어, 강력한 '도주(fugitive)의 무기'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인터미디어 아티스트 방영문
사진가, 음악가를 자처하며 인천에 살고 있는 인터미디어 아티스트. 생업을 위해 무대예술 사진을 촬영하고 있으며, 호기심을 동력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어를 사용하지 않고 작품 구상하는 것을 즐기고, 서로 다른 특성의 매체들을 동일한 것으로 바라보는 다양체적 관점으로 작품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그렇게 지난 15년 동안 오이로부터 햇빛을 추출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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