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한 전시 요약
- Bhang, Youngmoon

- 2월 1일
- 4분 분량
Diagrammatic Core (Symbol-Free)
다양체 탐구: 국소적 인지에서 실재의 접촉에 이르는 기하학적 서사
나는 인간 인식의 구조를 11단계의 위상적 흐름으로 재구성하여, 주체와 세계 사이의 간극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지를 표현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베른하르트 리만(Bernhard Riemann)의 다양체 이론의 기하학적 사고방식을 토대로 인터미디어 아트(intermedia art)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어린 날 사도 바울의 인식론적 통찰이 지닌 종교적 숭고함으로부터 출발했던 고민은 이렇게 내 나름의 언어로 표현되고, 다듬어지며 사진으로, 영상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1. 국소적 지각 (Local P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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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시초는 언제나 세계의 극히 미미한 단편으로부터 출발한다. 주체가 대면하는 형태의 질감이나 소리의 분절된 조각은 전역적 실재의 광대한 흐름 중 아주 좁은 영역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지각 시스템은 이 국소적인 단면을 자족적이고 완결된 세계의 전부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기하학적으로 구면의 극소 영역이 인간의 감각 규모 안에서 평면(Euclidean space)과 유사하게 인지되는 '국소적 평탄성'의 원리와 일치한다. 주체는 이러한 평탄함의 환상 속에서 세계를 안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 그것은 거대한 곡률을 망각한 채 얻어낸 잠정적인 평온에 불과하다.
2. 전역적 구조 (Global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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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국소적 지각의 이면에는 주체의 시야와 사유의 한계를 상회하는 거대한 구조가 존재한다. 우리는 세계의 전역적 실재를 즉자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전지적 관점을 갖지 못하고 있으나, 각각의 부분들이 맺고 있는 위상적 연결성과 그 파편들이 암시하는 전체의 윤곽을 통해 비가시적인 '다양체'의 존재를 추론한다.
이 전시는 완결된 전경을 제시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전역적 구조를 향해 나아가는 인식의 동력을 자극한다.
3. 확대 (Magnification)
[ ─── ] → [ ─── ] → [ ─── ]우리는 특정한 단면, 특정한 지점을 정밀하게 확대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더 명확하고 깊이 있는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기하학적 관점에서 확대는 정보의 질적 팽창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화된 국소성(localness)을 의미할 뿐이다. 디지털 매체의 픽셀을 확대할수록 곡선은 계단 모양의 직선들로 해체되며, 선명해진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그 이미지가 속해 있던 광범위한 전역적 맥락을 은폐하여 볼 수 없게 만든다. 결국 확대된 세계는 세밀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전체'에 대한 소외감을 더욱 극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4. 병치 (Juxta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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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국소적 단면과 전역적 구조가 한 장소에 병치될 때, 우리가 가졌던 인식의 불일치는 선명한 균열로 드러난다. 부분은 전체의 단순한 축소판이 아니며, 전체 또한 부분들의 기계적 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다양체 위에서 각 좌표계가 서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어긋남'은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유한한 주체에게 주어지는 이 우주가 가진 본연의 방식이다. 이러한 병치를 통해 관객은 자신의 지각이 가진 파편성을 직시하고, 부분과 전체 사이에 있는 긴장을 체험하게 된다.
5. 거리 (Distance)
●───────────────○여기까지 우리가 인지하게 된 불일치는 주체와 대상, 혹은 감각과 세계 사이에 놓인 불가피한 간극으로 나타난다. 이 '거리 distance'는 대상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관찰과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인식론적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지평선이 우리로부터 일정한 거리($d$)를 유지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선으로 인지할 수 있듯, '거리'는 존재를 존재로서 규정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각각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인식된다는 역설 혹은 실존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전시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간극을 물리적 공간의 변수로 표현하여 관객이 자신의 소외를 감각하고 인지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6. 접근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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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관찰자로서의 자리를 떠나 신체를 이동시키고 시선을 변화시키는 '접근'의 행위는 간극을 축소하려는 주체의 능동적인 의지이며 이는 행위로 표현된다. 주체의 접근은 단순한 정보의 가산(addition)이 아니라, 인식이 성립하는 배경 조건과 좌표계 자체를 재설정하려는 시도다. 시선의 높이가 내려가면 멀리서 관조하던 세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질서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접근은 정적인 인식을 동적인 사건으로 전환한다. 이 접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지평선을 향해 달려보라. 결코 가까워 질 수 없다. 그렇다면 접근이란 무엇일까?
7. 평탄화 (Flattening -- Elimination of Curvature)
( ) → ( ) → ( ) → ( )대상을 향한 접근이 극한에 다다를수록, 공간의 고유한 곡률은 점차 소거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원경에서 숭고한 곡선으로 인지되던 형태는 근거리에서 평면($ds^2$)으로 수렴하며, 복잡한 입체 구조는 단순한 면적의 접촉으로 변해간다. 이는 세계의 물리적 변형이 아니라, 인식 주체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발생하는 (기하학적) 수렴 현상이다. 이 '평탄화' 즉, '곡률의 소거' 단계에서 주체는 세계를 분석이나 이해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단순화된 실재의 표면과 마주할 준비를 한다.
8. 하강 (Des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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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직적 시선으로 세계를 부감하고 통제하려는 '상승'의 의지를 배제하고, 주체의 위치를 스스로 낮추는 '하강'의 움직임을 지향함을 이 작업의 토대로 삼는다. 직립한 인간의 교만한 고도($h$)를 포기하는 행위는 지적 통제권의 상실이 아니라, 대지의 곡률에 가장 정직하게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정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하강을 통해 우리는 얻을 수 없는 '전지'를 흉내낼 뿐인 파놉티콘식 시선에서 벗어나, 대지의 호흡과 수평을 이루는 겸허한 인식의 자리에 도달한다.
9. 접촉 (Contact)
────────●하강의 끝에서 인식은 마침내 대상에 닿는다. 관조와 설명을 전제로 하던 분석적 거리가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머리로 파악해야 할 개념적 대상이 아니라 생생하게 진동하는 '사건(Event)'으로 다가온다. 바울이 고백한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face to face)' 현상학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이 지점에서, 주체와 실재를 가로막던 희미한 거울은 깨어지고 오직 순수한 존재의 마주함만이 남는다.
10. 극한 상태 (Terminal State)
────────이 흐름의 종착지에는 어떠한 결론도, 정답도 없다. 다만 더 이상 분절하거나 나아갈 수 없는 물리적 극한의 조건만 남을 뿐이다. 이는 인식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최소 단위의 경험적 상태에 도달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에 닿을 때 우리는 자신의 유한함을 긍정하며 실재의 일부가 되어 침묵할 수 있게 된다.
11. 전체적 흐름 (Overall Flow)
본 전시는 단편적인 지식의 전달을 지양하고, 국소에서 전역으로, 거리에서 접촉으로, 그리고 설명에서 경험으로 이동하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거대한 '다양체' 자체로 제시한다. 관객은 이 정교한 도식을 지적으로 파악하려 애쓰기보다, 그 흐름의 내부를 직접 신체로 통과(passing through)함으로써 비로소 세계의 다른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 흐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은유이며, 관객의 엎드린 몸은 그 다양체 위를 흐르는 가장 정직한 좌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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