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hang, Youngmoon

블록체인 기술과 미술품 보증에 관한 단상

실상 어떠한 강제성의 부여는 사회 관계망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망의 구축은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그 특성이 변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생존과 번식 자체가 강제성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살아남아 번성하기 위해서 인류는 집단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 지능의 핵심을 차지한다. 큰 뇌의 발달은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 활동 즉, 사회적 활동이 중점에 있는 피드백 구조가 매우 중요한 원인이 된다. 오늘날 인간 지능을 이해하고자 할 때 많은 비전문가들이 놓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데카르트적 접근은 중세가 끝나는 전환기의 산물로 큰 의미를 가져다 주지만 언제까지나 유효한 방법이 아니다.


'있다는 것', 그 '주체 subject'와 '대상 object'이란 무엇일까?


중요하나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인류의 공동체들이 생존이라는 과업 달성을 어느 정도 안정시켰을 때 등장한 것은 권력구조라는 것이다. 국가화를 목전에 둔 인류 공동체들은 권력구조의 당위성을 신화라는 내러티브에서 가져왔다. 신이 있고, 그 신이 신탁을 주면 지도자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공포(公布, announce)한다. 정치 세력의 안정화는 점차 왕과 신관을 분리하게 된다. 그러나 신이 누군가를 지도자로 인정한다는 내러티브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화에 기대지 않더라도 왕의 옹립(擁立)은 신화적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문헌이다. 용비어천가의 결론은 '조선 건국은 하늘의 뜻을 받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기술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기술 자체가 시대정신을 낳고, 시대정신은 기술을 낳는다. 이러한 상호작용과 피드백의 형성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전'을 부른다.


블록체인(Blackchain) 기술은 오늘날 힘의 분립과 민주주의라는 사고방식이 없이는 형성되기 어려웠던 기술이다. 분산원장기술(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은 단일서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분산화된 네트워크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계속해서 동기화 하는 기술을 말한다. 블록체인(Blackchain) 기술은 이 분산원장 기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통제 불가능한 개별자들을 연결해서 그들이 하나의 응축된 결과물에 대한 보증인이 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는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변하지 않은 것들


인류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경험해 그것들을 사회적 틀에 반영하고 지식을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은 것들도 분명히 있다. 우리가 이러한 측면들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어떤 하나의 상황을 전적으로 배제하거나 혹은 전적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작품의 유일성이란 작품에 가장 '손쉽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화폐라는 것 또한 대개는 국가가 그 가치를 보증하고 수많은 국가의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기준이 된다. 과거 상황주의(狀況主義. Situationalism) 운동이 어떠한 '가치기준'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술작품 거래의 세계는 기존의 사회적 합의에 충실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과거에는 왕족, 귀족, 대상(大商)들이 예술작품 거래에 주요한 고객이었고, 오늘날에도 대부분은 큰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다.



저자에 관하여


케빈 애쉬턴은 그의 책 <How to Fly a Horse>에서 '저자 author'의 기원을 꽤나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사실 거의 없던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 최근 AI를 통해 사해사본 필체를 분석하여 당시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 두 명이었을 것이라는 연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사자(筆寫者)들에 대한 정보다. 대부분의 그리스/ 로마 미술이나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작업들은 그 작가를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람의 '생각'은 그것의 원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저자나 출처를 중요하게 여겼다. 때문에 동시대 그리스 각지의 조각품의 저자는 대부분 알길이 없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의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게 되는 것이다.


전으로 돌아갈수록 우리는 '저자'에 대한 관점이 오늘날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정 인물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권위와 직결되기에 오래된 생각들도 그 생각을 제시한 인물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면, 물성이 있는 대상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사적인 콘텐츠의 경우에도 그러할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길가메시>와 같은 이야기도 신니케운니니(Sîn-lēqi-unninni)와 같은 저술가가 일부 판본을 구성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반면 이야기 전체가 어떻게 기원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작품의 핵심은 바로 그 작품이 가진 '견해(見解, opinion/ viewpoint)'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정보성이 핵심이고 물성은 부차적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예술은 그것이 가장 추상적이라 할 만한 관념의 세계와 우리가 매일 접하는 현실세계 사이에 놓여진 경계선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사용 가능한 현시(顯示, manifestation)의 단계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매기게 된다. 미술작품은 대표적이며, 각종 지적 재산권들이 그러하다.



블록체인을 통한 미술작품의 유일성 보증


디지털 파일의 일반화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파일의 유일성'을 입증하는 기술들이 도입되었다. 이것을 퍼포먼스화하여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행위의 의미와 가치는 그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될 때 확립된다. 마치 비틀즈의 특정 앨범 초판 LP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이러한 가치 부여는 첫 번째로 가장 와닿는 것이 '희소성 scarcity'이며, 두 번째 가치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되는 '평가'에서 비롯된다. 희소가치가 높더라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의 가치는 저평가 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바로 사회구성원인 개개인에 대한 태도가 있을 것이다.


작품의 복제는 원천적으로 가능했다. 기술의 발전은 아마도 작품의 유일성의 범위를 점점 위협하게 될 것이다. 아주 막연한 상상으로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시공간 복제 기술'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든지 특정한 작품을 복제해서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분자 단위에서 재구축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실현된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어떤 것도 더 이상의 유일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진본성 제시를 위해서 어떠한 암호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란 무엇이고, 원본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이러한 가치들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있을 뿐, 우리의 현실세계와 우주는 그 근간에 놓인 법칙들을 통해 진본이나 원본에 대한 가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블록체인을 통한 미술작품의 유일성 보증이라는 행위는 결국 루브르 박물관이 <모나리자>를 보관하는 태도와 동일한 생각에서 나왔다. 물론 그것의 세부사항과 시대적 간극 그리고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여겨진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원본성과 진본성에 가치를 두고, 아우라와 같은 표현을 내놓으며 그것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원본성과 진본성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 즉, '나'의 유일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제 가능성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의 발전은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극적인 공격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세계 속에 놓여진 하나의 사태이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동시에 일관성을 유지하기에 매우 신비롭다.


변화하지 않는 주체와 그것에 대한 욕구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기술 암호화는 실상 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욕망에의 호소라는 점을 한 번은 짚어보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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