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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제 15대) 취임사 음성의 시각화

대개 취임사 전체를 싣게 되면 '전문 全文'이라는 표현을 쓸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아주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Visualization of President Kim Dae-jung's Inaugural speech © BHANG Youngmoon, 2021

왜? #1


정치인에 대한 지지 혹은 존경의 마음과는 별개로 나는 2020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1주기 사진전>의 작가로 섭외되었다. 작업 내용은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 사용하시던 공간에 대한 사진 기록과 재해석이었고,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물품, 동교동 사저 내에서의 공간을 촬영하여 30점을 전시하였다. 이것은 복원사진 중심의 기록물 전시가 아니라 고인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을 표현하는데 그 의미를 둔다고 생각되었다. <대통령의 서재>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당시 전시는 동교동 사저에 있는 책상을 옮겨 현장에서 전시하고, 직접 기록한 노트를 놓아두는 등의 작업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인연과 이유로 나는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그의 생생한 음성을 시각화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가로 잘 알려져 있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은 대통령 임기와 이후의 모습들이다. 격렬했던 시대, 격렬했던 정치인 김대중의 모습은 사실 관심있게 자료를 찾지 않으면 접하기 어렵다.


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경험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자료는 VCR, 네거티브 혹은 인화된 사진 앨범으로 남아 있었으며, 디지털화 된 데이터는 굉장히 조악했다. 전문 사진가들의 손에 의해 보존된 데이터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데이터들을 접할 수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나는 소위 '#아카이빙 #archiving' 작업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록자보다는 예술가로, 저장하기 보다 재해석 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영상의 특징은 기록이라는 프로세스 없이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양측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음성신호의 시각화 시도하기



'대통령 기록관의 자료를 기준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1926년 1월 6일 생으로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을 점검하는 까닭은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시기 즈음은 일제 강점기였고, 당시에는 소위 출생신고 일자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또한 일부에서는 출생신고를 조금 늦추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속설이 있었고, 그런 까닭으로 심한 경우 몇 년 씩 늦게 신고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음성신호의 시각화는 두 가지로 진행했다.


인터넷 상의 '全文'은 현장에서 발언한 내용과 동일하지 않다


하나는 녹음된 취임사 전체를 재생하는 동안 파형(wave form)을 그대로 녹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음성의 시각적 느낌을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다. 또한 연설 내용과 관련해 자막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존의 '全文'을 사용하지 않고 들리는 것을 모두 옮겨 적었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全文'은 음성 정보에 대한 정확한 기입이 아니라 연설문이다. 이는 내용은 동일하지만 세부정보에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23년이 지난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하는 바입니다'와 같은 문체, '~하여 마지 않습니다'와 같은 문체들은 교정되어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말투를 경험하기 어렵다. 때문에 모든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고, 그 가운데에는 소위 '스크립트' 다른 내용이 있고, 교정 없이 음성신호를 그대로 옮겨 적었기에 사소한 실수들도 그래도 적혀있다.



스펙트럼과 시각화


음성의 시각화는 재미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아티클의 시작부분에 있는 한 장의 이미지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 전체를 한 장의 음성 스펙트럼으로 시각화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이미지는 왼쪽이 시작, 오른쪽이 끝이 된다. 시간적으로 약 32분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이미지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요소들 또한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을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라 생각했다.



왜? #2


나는 인류가 만든 '국가'라는 사회조직에 관해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는 자기 유지를 위해 무정부적 국제질서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런 이유로 스스로를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부작용을 만든다. 전 지구상 포유류의 36%라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국가들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사실 원칙적으로 보면 현재 지구상 인구는 1/10이 아니라 1/100 정도로 줄어야 생태계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인구는 오늘 지구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생태계에 가한 위협의 결과로 바이러스가 출현해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를 빼앗고 있다. 인간을 줄이는 것이 생태계의 정상적인 반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고 이러한 책임은 인구증가를 통해 '국력'을 강화해 온 각 국가들에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낸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위기를 맞으면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과 금융위기 이후에도 안정된 사회를 이뤄낸 우리는 이 부분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늘날의 레반트, 팔레스타인 지역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쌓여 갖은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었다. 역사적 유물을 발굴해도 당시 히브리인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테면, 키루스 2세의 업적이 담긴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 평가되는 '키루스 헌장'에는 히브리인들을 이스라엘로 돌려보내 성전 재건을 허락했다는 기록이 없다. 구약성경에는 시대적 사건으로 대대적인 언급이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이는 에스라, 느헤미야의 기록이 날조라는 증거가 아니라 그들에 관해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약소국에 불과했다는 점을 떠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성경>의 권위로 인해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지 못했던 것인데, 그들은 히타이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각국의 입장에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던 소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 천 년이 흐르고, 당시 강대국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때 소수민족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기록한 <성경>은 남아 인류사에 가장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국제 정세 속에서 언제나 불안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참고점이 되는 것이다. 자부심 자체를 위해 침소봉대(針小棒大)할 것이 아니라 정확히 해야 할 것들을 통해 시대정신을 성취하고 발자취를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로 김대중 대통령을 꼽은 것은 작업을 위해 집중해서 조사하고 공부한 인물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제시한 변화의 방향들이 오늘 우리에게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결과들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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