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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윌리엄 이글스턴과 컬러사진 #1


디지털 카메라의 개념은 나사를 위한 연구를 하는 연구소 중 하나인 Jet Propulsion Laboratory의 엔지니어 유진 랠리(Eugene F. Lally)가 1961년 착안한 것이다. 텍사스의 반도체 회사 Texas Instruments의 윌리스 애드콕(Willis Adcock)은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카메라로 특허를 냈고(1972), 코닥(Eastman Kodak)의 엔지니어 스티븐 새슨(Steven Sasson)이 디지털 이미지센서를 만들어 낸 것은 1975년이다. 4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는 1억 화소의 디지털 백(Digital Back), 4천만 화소 이상의 카메라는 이제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양이다. 더군다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가 상용화 된 90년대 중반의 제품들과 비교해보면 그 성능이 월등하다. 그러한 오늘날 색(color)에 대한 예술사진적, 평론적 논의를 하는 것이 적합할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기술이 발달하는 상황에 처할수록 우리는 그 근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컬러의 구현과 표현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wski)가 평상적인 대화도 종종 재미있다(casual conversation is often interesting)고 표현한 것처럼 컬러 사진은 말 그대로 평상적인 것이 되었다. 역으로 이제는 흑백사진을 감성적인 것,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 더욱 그렇다.

바로 그 사코우스키의 글을 통해 컬러사진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컬러사진을 스튜디오 밖에서의 사진 예술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을 위한 그의 글을 통해서 말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출간하고 사코우스키가 글을 쓴 <William Eggleston's Guide>는 이글스턴의 작품 뿐만 아니라 사진 - 컬러사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자료다. 국내에는 이러한 논의를 고민해 볼 만한 자료가 거의 없다. 아직까지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사진을 보며 그냥 감탄해야 하는 현실이다. 진동선 선생님의 <사진기호학>과 같은 책들이 국내에 출간되어 색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 있다.

앞으로 쓸 글들은 바로 그 <William Eggleston's Guide>에 수록된 사코우스키의 글 일부를 번역하고 코멘트 하는 형식으로 적어 둘 생각이다.

John Szarkowski's Essay

이들 역사속의 야심찬 사진가들이 색(color)에 대한 열정이나 확신이 부족하고 그들이 다루는 사진이라는 매체로 색(color)을 다루는 것이 미숙하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실패는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흑백으로 표현한 사진들을 컬러 필름으로 작업했다고 하면 색의 문제는 집중의 결여를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초창기 사진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푸른 하늘이 얼마나 암청색으로 표현되었던, 붉은 셔츠가 얼마나 선홍빛으로 표현되었던 간에 이러한 사진에서 색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며 형상을 표현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진들은 간혹 흥미를 자아낸다. 설령 이들이 윤곽이 없고, 얼토당토 않는 표현으로 치닫더라도 흔한 일상의 대화들이 간혹 흥미로운 것처럼 말이다.

사코우스키는 이 문단에 앞서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등을 비롯한 역사적 사진가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색 color'이라는 코드를 사진에서 표현하는데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으니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진 안에서의 형상(form)에 대한 문제는 나 역시 현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문제들이다. 사실 수학적으로 점/선/면을 구분하는 것은 일견 쉽게 이해되는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문제가 사변철학이니(speculative), 추상이니(abstraction)이 하는 학문들에서 얼마나 복잡한 논의를 불러 일으키는지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반 고흐(Van Gogh)의 그림이 사람이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풍경과는 너무 다른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늘이다', '이것이 들판이다' 등과 같은 결론으로 쉽게 도달한다. 회화는 그림의 하나하나가 해석의 방법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다양한 관행과 수단은 각각이 고유한 코드로 그 역할을 나타낼 수 있다. 실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그림도 사람의 시각에는 그러한 원근이 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눈이라면 분명 바라보고 있는 특정 인물은 선명하고 나머지는 제대로 인지되지 않는 것이 더 현실적인 표현이 된다. 사진의 낮은 피사계 심도가 그러한 것과 유사하다.

사진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 서양의 철학 자체가 간혹 대상을 완전히 분립하는 존재로 치부하여 안해도 되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넘어가보자는 뜻이다 - 일전에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 과 같은 작가들이 제기했던 문제가 있다. 검은색의 톤으로는 매우 복잡한 색감을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컬러필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디지털 센서의 발달로 실상 점차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브루스 반바움 Bruce Barnbaum 의 논의를 가지고 조금 더 다양한 생각을 활용해보자. 그의 유명한 저서 <The Art of Photography>를 보면 그가 '구도의 요소 The Elements of Composition'들 이라고 나열하는 것들이 있다.

Light

Color

Contrast & Tone

Line

Form

Pattern

Balance

Movement

Positive/Negative Space

Texture

Camera Position

Focal Length

Depth of Field

Shutter Speed

Light, Color 즉 빛과 색상은 매우 근본적인 요소이기에 따로 분리했고, 아래의 4가지 카메라 위치, 촛점 거리, 피사계 심도 그리고 셔터 속도는 기술적인 문제라 따로 분리했다. 그렇다면 그가 순수하게 사진에 담기는 요소들이라고 보는 것은 8가지가 된다. 그리고 이 8가지는 모두 흑백사진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빛은 여기서 논의하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많고, 사진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기에 넘어간다.

색상의 경우에도 까르띠에-브레송이 표현하였듯이 흑백사진의 음영을 통해 얼마든지 표현된다. 뎃셍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브루스 반바움은 Color 라는 주제를 자신의 구도 챕터 안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다. 내용이 많아 별도로 다루기 위해 챕터에서 분리했다는 것이다. 뒤따르는 챕터에서 그는 색에 대해서 다룬다. 초반, 그의 견해가 드러나는 문장이 있다.

"I feel that color photographs and black-and-white photographs are essentially two different media."

- Bruce Barnbaum

그는 아예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은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컬러사진과 흑백사진은 그 관계가 복잡하고 매우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분명 우리는 면이나 선을 인식할 때 실상 색상의 차이를 통해 인식한다. 이것이 구분되지 않으면 착시와 같은 현상에 직면한다. 반바움이 주장하는 8가지 요소들에 컬러라는 거의 무한한 조합의 코드를 얹어버리면 여기부터는 기본적으로 산술적인 조합의 범위가 실셈 가능 범위를 벗어난다. 나는 결국 컬러란 표현과 맥락에 의해 이해해야 하는 요소로 받아들인다. 사코우스키의 말처럼, 얼토당토 않은 무엇인가가 된다해도 간혹 흥미로운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범주의 실패란 컬러 사진에 있어서 아름다운 색상이라는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해준다는 점이다. 이들 사진들의 명목상의 피사체는 종종 오래된 건물의 벽이나 물결치는 물에 비춰진 뱃머리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입체파를 흉내내는 이들이나 추상적 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재생산하는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는 그들의 조금 더 나은 정도의 불운한 숙명을 재확인 시켜줄 뿐이다.

나는 이 요소가 여전히 상당수의 작업들을 예술사진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ksy)의 사진들은 최고의 사진 예술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컬러라는 방법을 택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컬러는 표현의 중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 표현의 중점에 있는 것은 색이 아니라 시점이다. 스티글리츠 이후 지금까지 항상 중심이 되는 주제가 존재했던 사진의 세계 속에, 그 구심을 만들어내는 중량을 제거하고 객관적인 시점을 성취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오늘날까지도 웹 상의 사진 커뮤니티들에 등장하는 웅장한 컬러사진들은 사실 사코우스키가 여기에서 언급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사진들은 표현주의 화가들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최근 드뷔시의 피아노 곡들을 들으며 작업할 때가 많았다. 그의 작품들은 물에 반사되는 대상물들을 표현하는 작품이 많다. 사코우스키는 상당수 그런 대상물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은 진부하다고 보는 것 같다.

재미있게도 컬러사진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지속되면 그가 컬러사진 자체를 까다롭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상황이 제한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한 스튜디오 컬러 사진에 대해서 그가 내리는 결론은 단순명확하다. 문제는 컬러의 일관성이 혼돈으로 치닫는 상황, 통제가 가해지지 않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다.

제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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