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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결정적 순간의 종말 the end of the decisive moment



FRANCE. Paris. Place de l'Europe. Gare Saint Lazare. 1932.

©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I must have taken some 850 Films with my Leica, and written down all my impressions recto and verso in my notebooks (나는 라이카로 필름 팔백오십 통을 찍었다. 또 내가 느낀 인상을 수첩에 안팎으로 빽빽하게 적었다)."

- Henri Cartier-Bresson

(recto 는 홀수 페이지, verso 는 짝수 페이지라는 의미로 쓰는데 피에르 아술린의 책에 대한 정재곤 님의 번역이 '수첩 안팎' + '빽빽하게'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다)

제목은 마치 패러다임 쉬프트로 인해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의 작업은 이제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의 패러다임은 그의 손에서 시작되어 그의 손으로 끝났다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까르띠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대한 존경을 담아 올리는 글이기도 하다.

까르띠에-브레송의 작업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그가 엄청난 분량의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야 디지털로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많은 양의 사진 소스를 담는다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전혀 없다. 이를테면, 내 경우에도 해외로 작업을 가거나 오랜 기간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CF, SD 카드를 잔뜩 챙기고 추가로 작업용 SSD를 가져간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64GB SD 카드를 사용하면 1,600 ~ 2,000 장 가량의 사진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사진을 '많이 찍는다'라는 문제는 스토리지와 아주 크게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셔터를 눌러야겠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혹은 장면을 마주하는 횟수와 관계가 있다. 디지털 시대, 대용량 스토리지를 가지고 촬영을 하기 위해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정작 하루에 100장도 찍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을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운반이 상대적으로 더 여려운 필름을 낭비하는 촬영은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디지털의 경우에는 필름보다 훨씬 부담 없이 더 많은 시도가 가능하지만 필름에서는 물리적인 필름의 운반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대의 카메라가 필요하다. 디지털의 경우 한 대의 카메라, 스토리지에 많은 사진을 보관할 수 있지만 필름의 경우 중요한 순간이 이어지면 36장의 필름롤이 부족한 경우가 자주 생긴다. 필름을 갈아 끼우는 것은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시간을 소비하게 되어있다. 필름을 갈아끼우는 것보다 필름이 준비된 다른 카메라를 쓰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진을 찍는다'라는 것은 필름이나 디지털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촬영을 시도하는 순간을 발견하는 횟수가 더 결정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까르띠에-브레송과 같은 필름 시대의 작가들은 남은 필름의 여분과 교환을 생각해야 했으므로 더 낭비없는 촬영을 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다른 기록을 보면 그가 러시아 - 당시 소비에트 연방 (소련) - 1만장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한다. 3년동안 850통을 사용했다면 필름 하나를 36방 (36 exposures)으로 계산해볼 때 30,600 장을 사용한 것이 된다. 오늘날의 보도 사진에서는 훨씬 많은 촬영 소스를 얻는다. 내가 안철수 의원을 촬영한 약 4년 동안 15만장을 촬영했으니 디지털의 편리함을 생각해 볼 때 필름시대의 무게감이 새삼스럽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단순 통계로 생각해 본 까르띠에-브레송과 결정적 순간

너무나 잘 알려진대로 까르띠에-브레송의 방식은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데, 프레임 안에 역동적인 대상을 정교하게 배치하는 그의 방식은 너무나 유명하고,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같은 제목의 그의 책 <The Decisive Moment>가 1952년에 출간되었다. 그의 사망은 2004년이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돌아온 까르띠에-브레송은 1931년 마르세유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초현실주의자들(Surrealists)과 교류를 갖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라이카 카메라에 50mm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32년 마르세유에서 였다고 한다. 그는 2004년에 사망했고 그의 전기를 쓴 피에르 아술린 Pierre Assouline 은 그가 15,000 통 가량의 필름을 썼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35mm 포맷에서의 표준화각, 흑백사진, 피사체의 역동성, 사진 프레임의 정교한 분할. 54만 여회의 노출, 컨택시트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진의 형태로 완성된 것들.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 의 방식이라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설득력을 갖춘, 최소한의 완성도를 갖춘 사진이라면 나는 그 모든 경우의 수가 까르띠에-브레송의 손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선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는 '오~ 까르띠에-브레송 같다'일 것이다.

나는 까르띠에-브레송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진을 해보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까르띠에-브레송의 후세대에서 그러한 사진으로 독보적인 인물이 된다면 '제 2의 까르띠에-브레송'이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정적 순간'은 끝났다.

며칠 전 이런 대화를 하다보니 생각나서 다시 적어본다.

"인간은 '흐름'이라는 지속성 안에서 세상을 인식한다. 사진은 단절로 태어난다. 한 장이라는 단절로 자리한다.

사진은 시공간 속에서 흐름과 지속을 바탕으로 방향성과 지향성을 지닐 때 생명력이 출몰한다."

- 진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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