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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 안철수의 메시지 그리고 열화



<안철수의 메시지 그리고 열화, 2016.12.04. 국회헌정기념관, 서울>

고해상도 사진 링크: https://flic.kr/p/PNktDo

사진은 마치 웹사이트 배너처럼 보이지만 원본은 세로길이가 5800 픽셀이다. 패널로 작업할 때 세로를 40인치로 작업하면 가로는 187인치가 나온다. 27200 x 5800 픽셀로 작업된 이 사진은 크롭 crop 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티치 stitch 작업을 한 결과물이다.

포토샵의 업그레이드에 따라 이제 이런 작업은 사전 계획만 잘 세워두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컴퓨터가 알아서 마무리 한다. 과거라면 몇날을 밤을 지새야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과거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Oacar Gustav Rejlander)가 30여장의 음화를 합성하는 작업을 했던 기간과 노력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 예술이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초창기 사진가들의 당위성 주장을 위한 행위의 흔적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고 그 영향력이 강하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정도로 아주 쉽게 정리하면, 당시의 근거들의 핵심은 "손이 많이가야 예술"이라는 점에 있다. 과연 그런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의 일란성 쌍둥이가 기술적으로 손이 많이 간 작업으로 보이는가?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완전히 양분 bisection 할 수는 없겠지만 이 두 가지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사진이 예술이 되는 근거는 개념화와 그에 대한 재인식에 그 핵심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조형적 탐구, 연출과 기획을 통한 완성도 높은 사진 모두가 그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사진이 예술이 되는 근거'는 '개념'에 있다.

사진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재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진은 의미를 담아야 하며 하나의 (혹은 그 이상의) 개념이어야 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문자에 근거한 상징활동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에 결국 보이는 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을 하나하나 개념화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천적 논의일 때는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No ideas but in things." - William Carols Williams

이 말은 "의미는 없다. 오로지 사물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번역되었다(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박태희 역). 저 말을 남긴 윌리엄스의 이름은 꽤나 사진적이지 않은가? 중간에 캐롤스를 두고 윌리엄과 윌리엄스가 뒤따른다. 마치 카메라를 두고 사물이 사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문장을 인용한 퍼키스 Philip Perkis 는 그에 앞서 이런 글을 적었다.

The object-ness of what is seen. No fast jump to metaphor or symbol. No 'cultural context.' Too soon. Plenty of time for that later. First, the 'reality' of light on surface.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 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 박태희 역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이런 퍼키스의 생각이 스티글리츠의 개념화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링이라면 조금 더 쉽게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것이 '선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른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퍼키스는 이토록 상상하지 말고 인식할 것을 강조하고, 보이는 것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우선하라고 충고하지만 그의 작품 경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즉 개념화와 분석을 거쳐보면 그가 특정한 사물들에 흥미를 보인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퍼키스는 어떤 경계면, 벽, 철조망, 부서진 구조물, 비닐, 천, 시트 등에 일관된 관심을 보인다. 의식이냐 무의식이냐의 문제를 떠나 그 역시 선호하는 것이 있고 '사진화'를 하기 위한 대상물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의 x 축 - 시간의 흐름

이제 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려고 한다. 사진의 x 축은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표현이라면 파노라마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지만, 이 작업의 의도는 '나름 상당한 시간차'를 두었다는 것에 있다.

최초, 화자 (話者, the speaker) 인 안철수 전 대표가 사진의 시작점이다. 나는 그의 모습을 가장 먼저 촬영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이동했다. 거리가 먼 자리들을 자세히 보면 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에 무게를 과도하게 두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오고가는 '콘텐츠' 수용 기회를 갖지 않는다. 결국 한 조직 안에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

화자인 안철수 전 대표는 메시지 왜곡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 중 하나다. 이유는 많을 것이나 그러한 문제들은 분석가들에게 맡긴다. 나는 사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러한 상황을 사진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사진의 x 축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에 따라 메시지는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지는 시간이 흐른다고 왜곡되지는 않는다

메시지는 시간이 흐른다고 왜곡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 가까운 곳에서 직접 들어도 충분히 왜곡된다. 이것은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에 가깝다. 뇌의 해마 hippocampus 자체가 익숙한 정보에 수백배 빠르게 반응한다. 때문에 정치에서는 언어인지학적 접근이 중요한 것이고 이것을 오늘날 소위 '프레임 fram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프레임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어떠한 주장을 펼 때는 프레임에 근거한다고 맹신한다. 결국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은 되지 않는다.

메시지의 수용은 받아들이는 메시지를 중점으로 익숙한 정보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과정을 수반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상당한 왜곡이 발생한다. 배경지식의 정도와 종류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튀세르는 '징후적 독해'라는 개념을 역설했고, 장자의 고사에도 '성인이 하고자 하는 말씀은 그 글 속에 남아있지 않다'라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현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중간에 그 메시지를 차단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시지 전달이 마무리 되면 그들은 화자 즉, 안철수 전 대표와 사진을 찍는데 열중한다. 정치적 협업을 위한 과정을 생략하고 자신의 정치 행위에 열중하는 것이다. 때문에 '당 political party'에는 '조직의 목표'가 사라지고 개인들의 욕심만 남게되는 것이다. 결국 메시지의 왜곡은 시간이나 공간의 거리가 아니라 각각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의 준비'가 그 원인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진의 직접적인 메시지는

긴 x 축을 이용해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발생하며 메시지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기록하고,

메시지의 차단 즉, 현장에서 졸거나 다른 행동을 통해 현장 메시지 공유를 하지 않는 행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의 간접적이고, 징후적인 메시지는

시각화된 정보들 즉, 졸고 있다거나 시간, 공간이 멀어 발생하는 왜곡과 더불어

그것의 의식적/ 무의식적 여부를 떠나 '왜곡의 준비'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것이며, 조직은 목표를 상실하고 개인의 욕심만 남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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