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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공연사진과 2013년 <The Soundscape> 전시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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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otographers in this chapter collectively make one of the most confident declarations about how central photography has become within contemporary art practice, and how far removed it is from traditional notions of the way a photographer creates his or her work. All of photographs here evolve from a strategy or happening orchestrated by the photographers for the sole purpose of creating an image. Although making an observation - framing a moment from an unfolding sequence of events - remains part of the process for many here, the central artistic act is one of directing an event specially for the camera. This approach means that the act of artistic creation begins long before the camera is actually held in position and an image fixed, starting instead with the planning of the idea. Many of the works here share the corporeal nature of performance and body art, but the viewer does not witness the physical act directly, as one does in performance, being presented instead with a photographic image as the work of art.

The roots of such an approach lie in the conceptual art of the mid-1960s and 1970s, when photography became central to the wider dissemination and communication of artists' performances and other temporary works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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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otograph as Contemporary Art> by Charlotte Cotton

공연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좋든 싫든 나 자신에게 있어서 공연사진은 경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2013년에 시도했던 <The Soundscape>라는 전시는 특정공간을 중심으로 촬영된 공연 모습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연관된 많은 프로젝트들이 인천 중구 지역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이곳의 유서 깊은 공간들에 대해 많은 논의가 오갔고, 사진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 운영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재즈클럽 버텀라인(Bottomline)과 버텀라인에서 확장되는 공연들을 사진으로 담아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외국 사절들, 전쟁 이후에는 장교들의 사교 클럽으로 사용되었다는 '제물포 구락부'의 공간을 빌어 30점 가량의 사진을 전시했다.




샬롯 코튼의 저서 <The Photograph as contemporary art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의 첫 번째 장에는 작가의 연출 directing 에 의한 작업에 관한 소개들이 등장한다. 그러한 프로젝트들, 작품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것이 1960 ~ 1970년대 퍼포먼스와 같은 일시성의 예술을 배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진이 사용된 것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현재의 공연사진은 아마도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공연에 대한 시각적 재해석기록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소위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진은 감상자와 사용자의 특징에 따라 다시 그 목적과 가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다른 의미를 떠나서 2013년의 작업은 당시 한 공간에 상당히 집중된 공연 모습을 내 생각에 따라 배열하고, 그것을 작품의 전시라는 형식을 빌어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5년 가량이 흐른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내가 왜 공연 사진에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은 좋아하는 다른 분야에 대한 일종의 봉사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연 사진에의 집중이 꽤나 지속되고 있을 무렵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었다. 공연을 촬영하는 것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두운 극장의 뒷자리.

앉는다. 혹은 선다.

소음기를 씌운 카메라의 낮은 셔터음은

음악가들의 음악 속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카메라 아이피스에 눈을 대고 렌즈를 통해 무대를 바라본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내 주위에는 어둠이라는 막이 공간을 분리한다.

그렇게 한 장 또 한 장이 쌓여간다.

내가 공연 사진을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종종 음악과 음악 공연에 대한 글을 썼고, 또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나는 물론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것 외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엔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나의 손이 닿는 것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려 줄 때가 된 것 같다는 것이 전환점의 시작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수용에 집중해왔다. 2012년부터 정치 사진을 담으며 2번의 대선, 1번의 총선, 2번의 지방선거와 수 차례의 재보궐 선거와 관련된 작업을 진행했다. 2017년 가을부터는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과 인연을 맺으며 그의 의정활동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공연사진과 정치활동 사진은 소위 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하여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 또한 매우 재미있는 활동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내가 고른 주제와 소재를 통해 내가 선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도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얼마전 차를 몰고 달리던 고속도로 위에서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일단은 'milestone'(이정표)라는 가제를 떠올리고 몇 개의 작품을 선별하려 한다. 작지만 선명한 전시를 하나 계획 중이다. milestone 이라는 단어 또한 두 개의 주요한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하나는 도로표지판과 같은 이정표라면 다른 하나는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 나는 순수하게 '사진'이라는 생각의 토대 위에 미래를 가리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담아내는 사진이 과거가 아닌 미래를 가리키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많지 않은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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