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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2022년 11월 22일, <물의 감각> 콜라보레이션 공연 전시 작품






우리가 가장 먼저 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 인간의 인식이라는 상자 속에 이 세상을 쑤셔넣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무술에서 발경(發勁)을 배울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어깨에 힘을 빼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어깨에 힘을 빼고 힘을 전달하는 동작을 하게되면 부상을 입습니다. "힘을 빼라"는 말은 힘의 분배를 적절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굴근(屈筋, flexor muscle)의 힘이 아닌 신근(伸筋, extensor muscle)의 힘을 사용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사실을 인식하라는 말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진 인식의 틀을 얼마나 '적절하게 두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물의 감각>이라는 협업을 위한 작품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바탕으로 작업하였고, 이러한 <물의 감각>적 사고방식은 이후 저의 작업에서도 크게 반영될 부분입니다. 여기에서는 이번 협업의 맥락을 통해 이야기 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오는 2023년 1월 11일부터 2월 1일까지 열리는 저의 개인전에서는 이러한 생각들을 도출하는 제 생각의 과정들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물이라는 은유


이번 <물의 감각> 협업은 저에게 다시 한 번 이 '물'이라는 은유가 갖는 의미와 그 역사적 맥락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우리에게 인도-유럽식 사고가 얼마나 뿌리깊게 스며있는가를 실감하게 되었는데, 이를 조금 더 살펴보면, 이는 인도-유럽식 사고의 수용도 있지만 개념의 누적이 인도-유럽 문명에서 흔히 발견되는 '관념적 왜곡'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4세기 중국에서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 중 일어난 '격의(格義)'입니다.


동아시아 전통 안에서 '물'이 갖는 상징은 사실 영원성이나 순환성이 아닌 '조화'입니다. 이 조화는 다시 항상성(homeostasis) 그리고 운동성(motility)으로 설명됩니다. 이는 다시 물의 항상성이란 곧 운동성을 기초로 한다는 점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4세기에 중국에서 인도-유럽 철학에서 발견되는 '절대성'과 같은 관념이 등장하는 배경을 통해 우리는 간단히 우리가 어째서 어떠한 절대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을 갖게 되는지에 관해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사상의 가장 유서깊은 논쟁은 바로 '道'를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운동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인가 혹은 명사적 정의로 본성 혹은 본질을 갖는 것으로 볼 것인가로 갈라진 논쟁입니다. 전자는 노자(老子)로 대표되는 도가(道家)이며, 후자는 공자(孔子)로 대표되는 유가(儒家)의 생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자 <도덕경>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가도는 상도가 아니다(可道, 非常道)"라는 문장은 이러한 논쟁에서 비롯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바로 당대 중국 곽점에서 출토된 초묘의 유가 계열 경전의 죽간본인 <성자명출>과 <존덕의>를 통해 확인됩니다.


이러한 맥락을 모른채 '道'를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지하학'이나 이후에 뒤따르는 '황로학'의 패러다임에서는 도가나 유가의 힘의 균형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중국이 '한나라' 통일 제국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발달하는 '경학'과 제국통치의 패러다임은 아무래도 인간의 본성과 그러한 인간을 성숙한 단계로 이끄는 가치 체계를 강조하는 유가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갑니다.


한나라의 쇠퇴기에 '황건적'이라 불리우는 농민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황건적이라 불리운 이유는 노란색을 그들의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인데 이것은 한대 이후에 형성된 소위 '오행설'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땅'을 대표하는 세력임을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즉, '황건적'의 난은 '도교의 난'인 것입니다.


위진시대에 들어서며 조조와 같은 인물은 이러한 문제를 돌아봅니다. 중국의 사상은 다시 도가와 유가의 통합을 일종의 '통일학문'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너무나 잘 알려진 '왕필'과 '곽상' 같은 학자들입니다. 왕필과 곽상의 '道' 해석은 본성 혹은 본질주의적 색채를 보이기 시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곽상'의 유명한 <독화론 獨化論>은 개체에 대한 존재론적 접근 즉, '존재의 완결성'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本質 essence'이라 하는 것은 배타성을 근거로 하며, 이것은 독자성, 존립 등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사고방식이 됩니다. 데카르트를 통해 우리에게 '확연히 보이는' 이러한 생각들은 먼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인도에서 이제 4세기에 들어서면 중국에서도 자리잡기 시작하는 생각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 유럽 지역에서는 소위 '신플라톤주의'라는 사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노자는 모든 것이 한쪽의 특징이 있으면 반대되는 특징과 함께 있어 그러한 관계 속에서 '존재함'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론적 독자성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의 운동성을 바탕에 둔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노자의 '道'란 실체가 아니라 운동성 혹은 관계성으로 설명되는 현상들에 관한 총칭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4세기가 되면 기원전 5세기 경에 시작된 노자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변하게 됩니다. 사실상 세월이 1,000년 가까이 흘렀으니 변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념적 왜곡 - 절대(絶對)


인도 사상을 번역한 용어들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극미(極微)란 색법(色法) 중 가장 작은 것을 기술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극미에는 극미를 이루는 '방분(方分)'이 있을까요? 만일 극미가 방분이 없다면 색계 즉, 인지되는 모든 대상은 허상일 것이며, 극미가 방분이 있어야 한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됩니다. 이렇게 외부세계의 존재 자체를 딜레마로 보는 경향은 인도 철학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매우 극단적인 관념론입니다.


그러나 관찰 가능한 우주에는 그 가분성(可分性)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0 즉, 관념적 無나 무한과 같은 것들이 일종의 '왜곡'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는 곧, 초월적, 정신적 대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 전반이 논리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수많은 근거를 찾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지혜입니다.


도가와 유가의 사상적 통합은 양측의 모순대립으로 인해 가능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니 4세기 중국에서 불교를 통해 사상적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 선두에는 지민도(支愍度) 그리고 지둔(支遁)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곽상은 리(理)를 초세적 절대(超世的 絶對)로 정의되는 경향을 보이며, 무극으로 향하는 길을 열면서 리(理)는 삶과 죽음, 선과 악의 대립을 해소하고, 리(理)를 통해서 우리는 유한에서 벗어난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열자'는 우주적 순환의 중심과 동일시 되는 리(理) 개념을 제시하며, 이러한 리(理)의 초월적 특징을 지리(至理)라고 부릅니다. 그에 앞서 한비자는 리(理)와 도(道)를 동일시 하는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짚어보자면, 원래 도(道)란 운동성과 관계성에서 발현되는 현상들에 관한 총칭을 의미했으며, 여기에 더해 중국의 가장 오래된 문헌에서 등장하는 리(理)는 땅을 배분하고, 그 땅에 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지혜들을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인도아리안들의 제식 행위에서 사제들의 행동을 부르던 명사를 오늘날 '선악의 업보'와 같은 말로, 고대 아리안들이 타던 전차 바퀴를 부르는 명사 '차크라'를 신비한 힘이 발현되는 지점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이 신화적 서사가 반영된 해석과 유사한 맥락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둔(支遁)과 같은 인물은 리(理)를 신리(神理) 즉, 초자연적 진리(眞理)로 이해하였고 지둔과 동시대 인물들은 불교의 법(法 dharma)을 이런 식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오히려 불교에서 말하는 법(法 dharma)은 형이상학적 관념들에 대한 철저한 해체이며 나아가 부정입니다. 지둔의 해석으로 땅을 배분하는 원리였던 리(理)는 초자연이 됩니다. 이는 이집트의 기하학이 그리스에서 이상세계의 원리로 이해된 것과 유사합니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소위 인도-유럽식 절대 관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둔'이라는 이 인물은 산스크리트어나 빠알리어를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자의적인 해석이 강할 수 밖에 없고, 불교는 그렇게 왜곡되었습니다.



"분리"라는 경향을 갖는 것이 우리 관념의 특징이다


'본질'은 배타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은 일원론이라는 관념적 왜곡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라고 선언하면 조화롭고 일체화된 세상의 질서가 보이는 듯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일자'라는 통일관념으로 실상으로부터 생각을 철저하게 격리해버리는 심각한 왜곡인 셈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관념적 왜곡이 모든 문명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지능이 가진 "분리"라는 가장 기본적인 경향 때문입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진화인류학연구소 명예소장인 '마이클 토마셀로 Michael Tomasello'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보편문법 이론을 생물의 발전과정을 통해 언어 발달의 기능적 이론을 제안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의 언어가 사물과 개념의 분리에서 발전하는 과정을 매우 세부적으로 제시합니다. 누군가 손으로 공을 묘사할 때 우리는 손이 아닌 손이 만드는 어떠한 가상적 형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누군가 손가락을 방향을 가리키면 우리는 손가락이 아닌 그 가리킨 방향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처럼, 사물이 아닌 사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다른 층위에 대한 이해가 지능 그리고 언어 발달에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는 바로 이러한 지사 즉, 손가락으로 대상을 가리킬 때 손가락과 손가락으로 표현되는 정보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리는 우리가 이 우주를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며, 에너지의 키네틱과 포텐셜을 몇 개의 기호로 표현해 비행기를 띄워 이 지구상 모든 것을 하루 안에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능력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수많은 고통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자전적 기억, 재귀적 반영, 미래예측이라는 '거리감'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사고의 특징은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서 가장 지배적인 종이 되도록 만들어 준 동시에 우리 자신을 일평생 괴롭히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질문하는 방법을 바꿀 줄 알면 다르게 보인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과 관련하여 춘추전국시대 이후 중국의 사상가들이 대상을 "무엇으로 정의하는 것"과 달리 노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음 알게됩니다. 대부분의 사상이 자신이 사용하는 용어를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과 매우 다른 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가의 사고방식은 '사단'과 같이 인간을 정의하는, 즉 자연계 다른 것들과의 배타성을 담보는 본질을 기본으로 합니다.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어떠한 것, '무엇'이 있어 우리를 세상과 분리 아니 격리시켜주는가?


"물의 감각"이란 바로 격리가 아닌 조화의 감각에서부터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동아시아 전통에서 가장 오래된 물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 上善 - 不爭

(空 suññatā)- 無諍


• 上善은 물[]과 같다.

○ 그것은 "오로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는 것 夫唯不爭, 故無尤"이다.

<空 suññatā>의 이치를 깊이 깨달은 결과는 "다툼이 없이 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해공제일(解空第一)은 무쟁삼매(無諍三昧)의 모습이다.



직하 - 황로 - 한대 경학 - 위진현학 이후에나 등장하는 지둔의 '理' 관점에서 비롯되는 붓다의 '다르마 dharma, 法' 오독의 과정을 이렇게 풀어보면, 오히려 노자 당대의 관점, 노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다르마' 오독의 가능성이 훨씬 낮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말로 '다르마 dharma'를 사용할 때 형이상학적인 어떠한 관념이 아닌 오히려 당대 인도철학이 가지고 있었던 소위 인도-유럽식 絶對에 대한 '중도적 입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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