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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s pictureBhang, Youngmoon

CGA, 4비트 컬러 - 사진의 색 정하기

빌렘 플루서 Vilém Flusser 에 따르면 흑백사진은 그것이 광학기술의 산물이며, 현실을 그대로 옮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신의 출처를 명확히 하고 있지만, 컬러 사진은 사실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더 거짓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현실이 아닌, 2차원 평면에 기록된 재해석의 산물이 현실의 색과 동일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어떠한 '기만의 행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Color Test - CGA, 2020 © BHANG Youngmoon



디지털 사진으로 넘어오게 되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디지털 사진은 단순하게 사실을 광학적으로 투사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시뮬레이션 행위가 된다. 사라 켐버는 디지털 사진에 대한 거부감이 “중심에 있는 인본주의적 주체를 상실할 가능성에 대한 문화적 공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러한 공포감은 ‘조작이 손쉬워진’ 디지털 이미지를 비롯, AI, 로봇, 유전자 조작과 같은 기술 기반 대상들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사진작업으로 구체화 시켰던 것은 2018년 가을 경이었다.

  1. 화학 인화 사진 즉, 아날로그 사진은 빛을 통해 대상을 전사하는 ‘약호code가 없는 정보경제학적 돌연변이’였다.

  2. 디지털 사진은 디지털 코드로 부터 구현되는 시뮬레이션으로, 코드 덩어리다 - 디지털 사진은 디지털 시뮬레이션이다.

  3. 대상을 그대로 전사하던 사진이 코드로 구현된다는 것은 사진의 인과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Martin Lister).

  4. 3D 프린팅 기술은 디지털 파일을 원하는 사물로 만드는 기술이다.

  5. 앞으로 모든 사물에 음식, 인간의 장기 그리고 자연이 생물을 프로그램 하듯 물질을 프로그램 하는단계에이를것대한정보를디지털파일로저장할수있는시대가될것이다.

  6. 디지털 사진에 담긴 3D프린팅 된 사물, 이것은 무엇인가?

(1) 인간이 관여할 수 없었던 자연의 보편원리가 디지털 데이터로 보관될 수 있는 시대

(2) AI와 로봇의 생산 능력이 인간의 생산 능력을 월등히 앞지르는 시대

(3) 창의와 깨달음의 영역까지 다다르는 머신의 등장이 도래할 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상의 투사 projection 에서 보관과 복제로


대상 object 을 투사 project 하던 것이 아날로그 방식의 사진이었다면, 디지털 사진은 이미지 센서에 닿는 상을 말 디지털 코드로 바꾸어 저장한다. 이것은 집적기술의 발달에서 비롯되는, 높은 밀도의 색의 조합이다. 디지털과 디지털 기반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불편함의 근원은 사라 켐버 Sarah Kember 의 지적과 같이 "주체 상실의 공포"다. 인간을 정의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매우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창의성이나 감정의 문제에 관해서는 기계와 관계 없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의 지능 또한 매우 기계적인 측면이 많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서 쾨슬러 Arthur Koestler 는 인간의 창의적 기능의 기반 중 하나로 이연연상 bisociation 을 꼽았다. 간단히 말해 두 가지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한 융합의 기능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수의 세밀한 통제가 가능해질 정도로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이 또한 불가능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감정의 문제의 경우 우리의 생물학적 기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떠한 만족감, 어떠한 불안감, 어떠한 즐거움 등 몇 가지 기본 요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우리의 생물학적 근간과 깊이 맞닿는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맛의 쾌감, 안정적인 쉼, 자기 공간의 침해로부터의 보호와 자유 등이 생명보존의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존재의 비참함을 애써 외면하고자 이러한 부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뿐이다.


기계가 감정을 배우지 않을 가능성은 꽤 높다. 그러나 기계도 기계 나름의 자기보존의 위협에 직면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인간에게 생존과 안정, 생식과 죽음을 기반으로 감정이 생겨난다면, 기계 역시 이런 유사한 생명연장과 보존, 증식에 관한 측면에 뿌리를 둔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것과 매우 이질적인 것이겠지만 그 또한 그들 나름의 감정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유일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점차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유일성이 이렇게 쉽게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때 불쾌감과 그것을 넘어서 공포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상황이다.


3D 프린팅 기술의 발달로 점차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사물이 아니라 그에 기반하는 재료와 데이터만 있으면 보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집기로 부터 시작될 것이다. 컵이나 쟁반, 간단한 도구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환경친화적 소재로 집에서 필요한 파일을 받아 직접 만들 수 있다. 점차 일반적으로 사물 그 자체에 대한 가치는 떨어진다. 말 그대로 '지적재산권'만이 가치를 갖게 되며, 이것들만이 가치가 남게 된다.


사물에 가치를 두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이것은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조금만 살펴본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인류의 경제를 몇 가지 문장과 단어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큰 틀은 기본적으로 가치의 부여와 그 평가 그리고 그것의 수용과 공유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금본위제 하에서는 화폐의 가치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다소 허무한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반대로 금을 화폐 가치 평가의 근간으로 삼았을 때 그 금이 가치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소가치라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순환논리의 함정으로 빠져들어가거나 거기서 고리가 끊어져 버리는 주장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미 탄소라는 원소를 가공해서 인공적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면 금을 만드는 것이 어려울까?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데, 왜 굳이 저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소위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무참히 짓밟으며 얻고 있는 자연산에 목을 맬까? 답은 쉽다. 가치평가의 기준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고에너지 장비를 이용해서 금을 찍어내지 않을까? 그만한 장비 개발과 에너지 사용으로 굳이 금을 만들어야 할 만큼 금의 가치가 높지 않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과거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드는 것에 그리도 집착했던 것은 금의 절대적인 가치를 믿었던 이유와 더불어 그것이 만물의 형성 원리를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감 모두에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문화다. 1달러의 가치는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이것들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네트워크에서 비롯된다. 로봇도, 인공지능도, 3D 프린팅도 결국 그것이 인간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들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CGA Color Test © BHANG Youngmoon, 2020

복잡한 고민 4비트 색상으로 풀어볼까?


고민은 너무나 복잡해진다. 인류사 전반에 대한 지식을 머리 속에 넣어 오랜 세월을 굴려봐도 변화의 추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감만 올 뿐이다. 우주에는 진리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냥 스스로 존재하고, 알아서 돌아갈 뿐이다. 인간의 의식 안에서만 진리라는 것이 가치를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를 기술하는 철학은 명확하고, 그것을 기술하는 과학의 공식들은 단순하고 아름답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재해석이며, 말 그대로 추상 abstraction 화의 산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끄럽고 아름답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재해석이 인간의 미학적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4만 년 전, 동굴의 천장과 벽면에 그림을 그려대는 행위는 그렇게 400세기를 지나며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끈 이론 같은 것들로 변해왔다.


이미지는 색상, 해상도 측면 모두에서 매우 정교해진다. 기술적으로 색상을 구현하는 것은 이미 인간이 색을 인지하는 영역을 넘어선지 오래다. 충분한 여건만 갖춰진다면 인간의 현실감각에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루서의 말대로, 정교함의 정도가 높아질 수록 그것은 더 거짓이 된다. 우리의 세상 인식의 관한 문제와 이러한 매체이론적 문제가 눈앞에 함께 놓였을 때, 그렇다면 디지털 사진도 자신의 근본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1981년 IBM이 사용화한 CGA 컬러를 이용해서 몇 장의 사진을 테스트해 보았다. 그리고 저해상도 GIF로 옵션을 바꿔가며 저장해보았다.


롤필름이나 건판의 현상과 인화가 주는 느낌과는 분명히 매우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디지털 도구들로 넘어온 많은 사진가들은 그러한 '아날로그 필름', 빈티지를 구현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CGA가 1981년에 등장했다면, 이미 이 또한 레트로 retro 다. 40년이나 지난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활용 또한 빈티지다. 그리고 복잡한 해석에 앞서 4비트 즉, 16개만 구현될 수 있는 색상 안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하는 것은 그리 시간이 걸릴 일도 아닐 듯 싶다.


그런 생각을 갖고 천천히 하나씩 조정해보며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늘상 경험하듯이, 어느 날 좋은 책을 읽거나, 방에 혼자 앉아 명상을 하거나 혹은 산에 들어가 수련을 하고 기도를 하며 순간 내리치는 깨달음과 같은 순간을 수 백 번 경험해도 현실에 투영할 때마다 좌절된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이러한 좌절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이 성자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은 넓은 바깥 세상을 쌩까고 좁아터진 자기 머리속에 갇혀서 그냥 사기꾼이나 어딘가 모자른 사람이 될 뿐이다. 어떠한 이론이 있다면 현실 세계와 섞어 봐야 한다. 다양한 요소들과 어떠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 실험해야 한다. 역사적 맥락에 투영해보고, 사람들의 반응도 보아야 한다. 결론은 이것이다.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을 반영한 실체를 자꾸만 만들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과 철학이 오래 전에 밝혀낸 사실들이다. 우리가 잠시 잊는 순간이 여전히 계속 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한 관념을 넘어서서 뭔가 실체에 다가서는 접근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유용하지도 않으며, 가능해도 사람들에게 덕이 될 것이 별로 없다. 만일 가능하다면 대개는 혼자 즐겨야 할 뿐이다.


간단한 작업을 통해서 자신과의 소통을 시작하고, 밖으로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이것이 먼 옛날 우리 인류가 동굴에 그림을 그렸던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4비트라는 색 주제를 가지고, 현실인식과 매체의 본질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다.



4비트 흑백사진 © BHANG Youngmoo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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