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凝視, Contemplative Contemplation>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는 2018년 우리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서해안의 창조설화 <망구할매> 이야기에 착안하여 시작된 사진 작업입니다. 인천 서해안 섬들의 땅을 빚고, 곳곳에 생명을 뿌리던 소박하고 키가 큰 여신의 시선을 모티프로 백령도와 대청도의 바다를 사진에 담아내는 시도로부터 시작하여 작가인 저의 내면을 향한 관조를 향해 천천히 변해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현재진행형 작업입니다. 개항도시 인천의 바다를 바깥 세계와의 접점으로 상징화하고, 수조에 담긴 물을 작가의 내면으로 상징화하여 이 세계와 이 세계를 관조하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조금씩 그려갑니다.
이번 '동인천 아트큐브' 개소기념전시에서는 사진연작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 가운데 인천의 바다를 담아낸 사진들을 전시하였습니다.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
<凝視, Contemplative Contemplation>
<凝視,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exposure no. 1, exposure no. 2> A, 100 x 150 cm
<凝視,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exposure no. 1, exposure no. 2> B, 100 x 150 cm
<凝視,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exposure no. 4 & exposure no. 6>. 100 x 150 cm
작품의 중심이 되는 다른 부제 없이 <응시>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이 세 작품은 해가 지는 시간 동안 인천 앞바다를 카메라의 셔터를 장시간 열어두는 방식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첫 두 점의 작품, 프레임 속 프레임의 색상은 동일합니다. 사람이 위치와 보색에 따라 색이나 밝기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우리의 뇌가 감각기관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감관, 인식, 의식이 모두 공(空)하다고 말합니다. 기나긴 세월, 생명의 역사와 더불어 누적된 느리지면 확실한 변화
<凝視,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exposure no. 4 & exposure no. 6>, 100 x 150 cm
생각과 마음의 불완전성 - 인간의 언어 즉, 개념화와 사태는 단순한 원인-결과의 고리로만 생각하는 선형적 인과 인식은 없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설정된 공간 속, 비율과 균형 있는 시각적 표현은 절대성과 불변의 진리를 향한 인간의 도전을 의미한다면, 작품 속에 직접 표현되지 않는 사진의 ‘노출시간’은 숫자를 통해 인간 정신의 불완전함을 담아냅니다.
개념의 확산은 마음의 괴로움으로, 절대성에 대한 추구는 허망함으로 돌아옵니다.
응시, 원경의 지평(Contemplative Contemplation - the horizon in a distant view)
<凝視, 원경의 지평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the horizon in a distant view>
<凝視, 원경의 지평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the horizon in a distant view> A, 35 x 44 inch
<凝視, 원경의 지평 Contemplative Contemplation - the horizon in a distant view> A, 35 x 44 inch
저 높은 하늘이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였을 때,
저 낮은 땅이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였을 때,
고대의 압수(Apsû)가 그들을 낳았다.
혼돈의 티아맛(Tiamat), 하늘과 땅의 어머니,
그들의 물은 하나로 뒤섞였다.
들판이 아직 자리하지 못했고, 습지도 보이지 않던 태고에.
신들조차 존재하는 것들의 신이 되기 이전,
모두가 이름을 갖지 않았기에 정해진 운명 또한 없었던 그들,
그때 하늘로부터 신들이 일어났다.
'라무(Lamu)'와 '라하무(Lahamu)'는 존재가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안샤르(Anshar)와 키샤르(Kishar)가 나타났다.
- <에누마 엘리시: 창조의 이야기를 담은 일곱개의 토판 중 첫번째> 중
고대 바빌론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시>에는 지평선과 수평선의 신 안샤르와 키샤르가 등장합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어째서 지평선에 오래된 신들의 이름을 붙였을까? 동시를 함께 하지 않는 이상 이 모든 질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상상들은 사진연작 <응시>에 새로운 작품을 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평선 horizon'을 '한계'와 연결해서 생각하곤 합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하나는 물리적인 또한 현실적인 사실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매우 개념적인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추상관념 사용의 고등함과 그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현상계는 관념계로 전적인 변환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한계인식, 곡률 그리고 수학에서 곡선을 직선으로 변화시키는 '무한'을 사용해봅니다. 원을 수많은 부채꼴로 분할하면 점차 직사각형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정의되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원과 직사각형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이 직사각형이 되려면 바로 이 부채꼴(pie-sector)들을 무한한 조각으로 미세하게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미세한 틀어짐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무한분할’을 조건으로 원은 사각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상 속에서 ‘무한’은 일어나지 않기에 극한의 상황에서 조금씩 어긋남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응시, 원경의 지평>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수면 surface
<水面 Surface of water> 106 x 74 cm, 2018 - inkjet print (printed in 2021)
우리는 무엇인가를 말할 때 종종 '깊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층과 심층은 다른 여건이 펼쳐지고 있을 뿐 그 가치에서 차이를 갖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각각은 가치평가적으로 구분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육지 생물에게는 대기와 바다가 만나는 수면
의 물결이 가장 먼저 보이는 현상이고, 바다 생물에게는 바닷물이 당면하는 현상이고, 심해 생물에게 심해가 일상입니다. 표층과 심층은 어떠한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건과 조합의 담담한 차이일 뿐입니다. 우리가 접근하는 방향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심층과 표층의 문제를 두고 어느 쪽이 더 무게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오만한 판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질녘 대청도 옥죽포 해변에 서서 노을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윤슬을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사진에 담아 낼 때, 마치 현대 회화 작품에서 보일 법한 다소 무질서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겼습니다. 소위 말하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겉껍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 표면에서 발견하는 조금은 다른 미학적 발견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해 봅니다.
<응시 1, 2, 3, 4>
다시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레이어를 겹치지 않은 각각의 장면 그대로를 만납니다.
복합적, 역동적 상호작용의 동적평형 상태에서 비롯되는 창발은 특정한 분류를 거부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편의상의 구분을 사실과 혼동하여 세상을 “경직된 상자 안에 강제로 집어 넣으려는 노력”(Thomas Kuhn)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응시>는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순환이나 그 모습의 유연함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비결정적이고 흐릿한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 그 마음의 준비를 표현합니다.
** <물의 감각> 협업 노트 **
LINK) 작가 노트 #1 - 어째서 물의 감각인가?
물[水]- 上善 - 不爭
공(空 suññatā)- 無諍
• 上善은 물[水]과 같다.
○ 그것은 "오로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는 것 夫唯不爭, 故無尤"이다.
• <空 suññatā>의 이치를 깊이 깨달은 결과는 "다툼이 없이 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해공제일(解空第一)은 무쟁삼매(無諍三昧)의 모습이다.
직하 - 황로 - 한대 경학 - 위진현학 이후에나 등장하는 지둔의 '理' 관점에서 비롯되는 붓다의 '다르마 dharma, 法' 오독의 과정을 이렇게 풀어보면, 오히려 노자 당대의 관점, 노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다르마' 오독의 가능성이 훨씬 낮았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말로 '다르마 dharma'를 사용할 때 형이상학적인 어떠한 관념이 아닌 오히려 당대 인도철학이 가지고 있었던 소위 인도-유럽식 絶對에 대한 '중도적 입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방영문 (약력)
2023 부평부천아트페어 BBAF (부평구문화재단, 부천문화재단)
2023 창작집단 아모르파티 창립전 <판단중지> (아모르파티, 선광미술관)
2023 방영문 개인전 <응시, 공의 감각> (고성평화지역아트센터 초대전)
2023 방영문 개인전 <응시, 공의 감각> (갤러리 시소 초대전)
2022 뮤직그룹 세움 <물의 감각> 콜라보레이션 @ 인천아트플랫폼 (뮤직그룹세움, 인천문화재단)
2022 인천 개항장국제사진페스티벌 인천작가 7인전 (인천중구문화재단, 인천개항장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회)
2021 중국 시상반나 국제 사진페스티벌 전시 (시상반나 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회)
2021 방영문 개인전 <응시 Contemplative Contemplation>
2021 인천 개항장국제사진영상페스티벌 예술감독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인천개항장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회)
2020 인천 개항장국제사진영상페스티벌 예술감독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인천개항장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회)
2020 김대중 대통령 서거 11주기 사진전 (개인전/ 초대, (사) 김대중 이희호 기념사업회, 김홍걸 의원실)
2019 인천 동아시아문화도시 선정기념 사진영상 페스티벌 대표작가 초대전 (인천동아시아사진영상페스티벌 운영위원회)
2019 방영문 개인전 <다면체 탐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리더십개발원)
2015 <낭만인천, 도시를 보다> 사진전 (단체/초대)
2013 <트라이볼, 재즈를 만나다> 사진전 (인천문화재단, 트라이볼, 개인/초대)
2013 방영문 개인전 <The Soundscape> (제물포구락부, 홍예문컴퍼니, 버텀라인플레이)
2013 방영문 개인전 <Mutual> (홍예문컴퍼니, 꿈꾸는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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