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져나가는 그 과장 자체가
디지털 사진에게는 일종의 '신발상자'가 되는 셈이다.
디지털 사진의 본질은 정보이고,
이것은 언어와 유사하기에
전달의 과정이 보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스타트렉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Star Trek: Into Darkness> 초반, 한 장면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의 주요한 내용과는 깊은 관계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모두 나오지는 않지만 사건의 전개를 통해 이 상황이 벌어진 까닭을 알 수 있다.
우주를 항해하던 엔터프라이즈호는 화산 활동 징후가 보이는 한 행성을 지나가게 된다. 활화산 근처에는 이제 막 그림을 통한 기록을 시작한 수준의 문명이 존재한다. 지구의 인류가 그러했듯이 자연 현상들을 보며 이 문명의 구성원들은 신에게 자연재해를 막아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인 제임스 커크 James T. Kirk 는 스타플릿 프로토콜로 인해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없기에 변장을 하고 사원에 접근해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두루마리를 훔친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커크 함장을 잡으로 달려나온다. 화산으로부터 어떻게든 그들을 멀어지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해안가 절벽에서 군의관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니 바닷속에는 엔터프라이즈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문제는 활화산의 폭발을 막기 위해 들어간 스팍 Spock을 데려올 방법이 없다. 빔 전송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엔터프라이즈호가 원시 문명에게 노출된다. 스타플릿의 가장 중요한 프로토콜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스팍이 위험에 빠지자 커크 함장은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엔터프라이즈호를 부상시킨다. 이때 원시 문명의 구성원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엔터프라이즈호를 발견한다.
정황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엔터프라이즈호를 통해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났음을 직감한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호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들에게는 강력한 신(神)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들을 버리고 바닥에 엔터프라이즈호의 모습을 묘사하며 숭배한다.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고민하는 디지털 포토그래피와 압축기술
이 글을 적는 까닭은 스타트렉 시리즈 중 한 편을 요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저 장면 때문이다. 붉은 토양의 땅에 그려지는 엔터프라이즈호를 경배하는 이들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인 장면이다. 문제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우 동영상 압축 및 전송에 따라 이 장면에서 땅에 그려진 엔터프라이즈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분명 디지털 사진에서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촬영 - 현상/인화 - 배포의 과정을 거친다. 화학인화 사진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절차는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디지털 사진은 네거티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촬영 후 발생하는 반복적인 행위들이 진짜인지 판별할 수 있는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헌데 잘 생각해보면 - 경우에 따라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비압축 파일(RAW)이 존재한다. 이 파일을 확인하여 본래 사진에 무엇이 담겼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은 정보를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환 convert 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당연히 물리적 대상이 아닌 저장매체에 저장되는 데이터의 형태로 존재한다. 새끼 손가락만한 수십 기가바이트 플래시 드라이브에 JPEG 파일은 수 천 장이 들어갈 수 있다. 화학인화 사진이 진실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미지 형성 단계에 사진가가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암실에서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하는 작가들도 대부분은 작업이 필요한 화학약품들을 직접 합성하지는 않는다. 필름 혹은 인화지에 대한 전사과정도 마찬가지다. 사실 디지털 사진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화학인화와 비교한다면 그 단계에 대한 개입은 훨씬 수월하다.
"사진의 진실성보다도 원래 작가가 의도한 사진이 어떠했는가?" 문제가 더욱 대두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디지털 사진이다. 조작의 문제만 놓고 본다면 화학인화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디지털 사진의 문제는 그것의 본질이 전사된 이미지가 아니라 코드에서 변환되는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에 있다. 이것이 훨씬 근본적이다.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의 패러다임에 전적으로 기반한 화학인화 사진이라고 해도 결국 사람의 선택이며 전과정은 사람의 의도하에 있다. 진실성 문제는 적설성 문제로 바뀌어야 할 수 밖에 없다.
빌렘 플루서 Vilém Flusser 는 선형 텍스트 세계에서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객관성'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다고 본다. 기술적 상상에서는 입장의 등가성(等價性)이 인정되고, 객관적인 입장이 기술적 상상을 통해 효력을 상실하는 순간, 진리에 대한 질문(인식론적 질문)이 새로 표현되어야 한다. 하나의 진술은 말로 된 입장들의 숫자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이 입장들을 취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입장들의 숫자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진리다. 그렇다면 진리의 기준은 '객관성'이 아니라 '간주관성'을 따른다. 진리 찾기는 더 이상 발견의 여행이 아니라, 세계와 관련해 타인들과 합의를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플루서, 미디어 현상학>, 김성재).
신발상자, 서랍 속이 아닌 정보의 전달과정이 디지털 사진 열화의 공간
과거 우리는 인화한 사진들을 상자나 서랍에 넣어 보관하기도 했다. 일부는 앨범에 정리해 보관하기도 했고, 가장 자주 보고 싶거나 가까이 두고 의미를 생각하고 싶은 사진들은 액자에 넣어 탁자에 올려두거나 벽에 걸어두었다. 물론 디지털 사진도 이러한 '하드카피'의 제작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온라인 공유와 기기간 복제가 훨씬 주요하다. 그리고 앞서 제기한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디지털 사진은 '보관'의 과정에서 열화의 문제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사물성이 화학인화 사진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라면, 디지털 사진은 이러한 사물성이 사라지고 정보성만 남는다. 때문에, 화학인화 사진은 그것을 보관하는 가운데 열화가 일어나지만(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사진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열화가 발생한다. 결국 퍼져나가는 그 과장 자체가 디지털 사진에게는 일종의 '신발상자'가 되는 셈이다. 디지털 사진의 본질은 정보이고, 이것은 언어와 유사하기에 전달의 과정이 보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만일 사진이 최초 의도한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면, 디지털 사진 또한 우리가 회화작품이나 아날로그 사진을 보관할 때 시도하는 다양한 보존의 방법처럼 그것이 열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문제가 남는다.